나는 잘 웃는 편이다. 웃을 때는 입을 벌리고 크게 웃는다. 좀 조심해야 하는 자리에서는 입을 가리기도 하지만 보통은 되는대로 웃어젖힌다. 맞은편에 앉은 사람은 내 목젖도 보게 될 것이고 사랑니ㆍ어금니 없어진 자리에 돋아난 살을 볼지도 모른다. 빵 터졌을 때는 고개가 뒤로 젖혀지도록 웃는다. 참을 수가 없다. 웃음 창고는 가슴에 있는지 머리에 있는지 간에 있는지 허파에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것이 꼭 입에 있는 것만 같다. 그러니 머리에서도 통제하기 힘들고 가슴에서 조종하기도 힘든 게 아닌가 싶다.
‘개그콘서트’나 ‘1박2일’ 같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볼 때는 혼자 히히히 웃거나 껄껄껄 웃거나 하하하 웃는다. 결혼 전엔 어머니, 아버지가 “쟈는 뭘 보고 저리 혼자 웃어쌌노?”라고 말했고 지금은 아내가 “그렇게 재미있어요?”라고 묻는다. 웃기니까 웃는 거지 별다른 대답이 있을 리 없다. 좀 심각한 대화를 하다가도 중간에 웃기다 싶은 부분에서는 나도 모르게 ‘크….’ 하며 웃는다. 그것도 조심스러울 땐 입가에, 눈가에 미소를 새겨 넣는다. ‘새겨 넣는다’가 아니라 ‘새겨진다’고 해야 할까.
그러다 보니 눈가에 주름이 많아졌다. 잔주름이 자글자글하다. 혼자 미친놈처럼 거울을 바라보며 웃음을 지어 보면 눈가에 잔주름이 엄청 잡힌다. 찍힌 사진을 확대해 보면 눈가에 상처의 흉터처럼 잗주름이 보인다. 다리미로 밀어버리면 어떨까 생각하기도 하고, 주름 잘 펴지는 화장품을 사서 발라볼까 생각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아예 성형을 해볼까 생각하기도 했다. 이마도 넓은데 주름까지 많으니 더 나이 들어 보이지 않을까, 혼자 소심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막을 재간도 없었다.
요즘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웃음은 보약이라고 하지 않던가.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으면 행복해진다고 하지 않던가. 웃으면 스트레스가 날아가지 않겠는가. 그런 웃음으로 인하여 만들어진 주름이라면 그걸 보약이라고 하든지 행복이라고 해야지 싫어할 까닭이 없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지 대여섯 해는 되었지 싶다. 생각을 바꾸고 나니 눈가 잗주름이 사랑스러워지고 자랑스러워지고 대견하기까지 했다. 좀 과장이긴 하지만 아무튼 그렇다.
생각에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눈가 주름 한 가닥에 내 생명이 한 십 분쯤 더 늘어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오늘 아침 죽을 운명으로 태어났다면 웃음으로 생긴 주름 덕분에 오늘 오후나 저녁에 죽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내가 웃으니 곁에 있던 다른 사람도 덩달아 웃게 되고 그들도 삶을 십 분쯤 더 연장하게 되지나 않았을까 하는, 과학자들이 들으면 코웃음 칠 생각도 하게 되었다. ‘웃으면 복이 와요’라는 옛적 희극 프로그램이 있었듯이 정말 복이 들어올지 누가 알겠는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영화 ‘국제시장’을 보면서도 주위 사람이 좀 성가시다 싶을 정도로 크게 웃었다. 저녁 술자리 모임에서도 조그마한 우스갯소리에 나는 지나치게 크게 웃는다. 하루나 며칠 더 지난 뒤 이런 일 저런 일을 떠올리면서 또 혼자 빙그레 웃는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주위에는 울 일도 엄청나게 많다. 물론 나는 울기도 잘한다. 아무튼 나는 웃음으로 하루 동안 노동의 수고로움을 던져버리고 어깻죽지에 얹혀 있는 삶의 고단함을 잠시 잊기도 하며 깨질 듯 아프던 머리의 스트레스를 씻어보기도 한다. 실컷 웃은 뒤엔 새로 뭔가를 해볼 용기가 생긴다. 역시 웃음만 한 보약은 없지 않나 싶다. 2015.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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