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치성 직업병을 얻은 건 <경남일보> 교열부에 근무하던 1992~1997년 사이다. 대략 20년 남짓 된 듯하다. 병 이름은 모르겠다. 이게 난치에서 불치로 넘어가고, 말기 증상까지 치달을 것이라고는 그땐 전혀 짐작 못했다. ‘난치’는 어렵지만 고칠 수 있는 병이고, ‘불치’는 아예 고치기 어려운 병이란 말이다. 이게 말기 증상을 보인다면 ‘다됐다’는 말 아닌가. 뭔고 하니, 글을 읽을 때 틀린 글자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빨간펜을 찾고 어지간하면 작가나 출판사에 연락을 하고 마는 것이다. ‘교열병’이라고 할까 ‘빨간펜병’이라고 할까 ‘맞춤법병’이라고 할까.
‘민음사’라는 출판사는 꽤 알아준다. 소설가 이문열도 모르는 사람이 없는 작가다. 이문열이 쓴 ≪황제를 위하여≫는 읽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대학생 때 읽은 이 소설을 몇 해 전 다시 사서 읽었다. 두 권짜리인데 1권은 2001년에 펴내 2010년에 25쇄를 찍었다. 2권도 비슷하다. ≪황제를 위하여≫ 두 권에서 틀린 글자 수십 개를 찾아 출판사 편집자에게 전자우편을 보냈다. 답장이 오긴 했지만 그다지 진지하게 사과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다음 쇄부터는 고쳐서 내겠다는 다짐이나 약속이 없었다. ‘깎아’를 ‘깍아’라고 했고, 성씨 ‘裵’를 ‘裴’로 썼고, ‘太傅’라고 쓸 것을 ‘太傳’으로 쓰기도 했다.
임종욱 선생님이 있다. 임 선생님이 쓴 소설 ≪1780 열하≫도 두 권짜리다. 이 책은 더 심했다. 꼼꼼하게 읽어 하나하나 지적하여 출판사 게시판에 올렸다. ‘생각의 나무’라는 출판사도 꽤 유명한 데라서 실망이 컸던 것이다. 출판사에서는 쓰다달다 말이 없었다. 그런데 임종욱 선생님이 연락을 해왔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임 선생님의 ≪이상은 왜?≫ 두 권을 교정봐 드리기도 했다. 그럴 능력은 안 되었지만, 출판되기 전의 원고를 먼저 읽는 설렘을 뿌리치기 어려웠다. 1권 뒤표지에 짤막한 서평을 싣는 영광을 누렸다.
며칠 전 다 읽은 ≪조정래의 시선≫에도 틀린 글자는 있다. 책을 읽다가 손에 잡히는 대로 연필이나 볼펜으로 표시를 해 둔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마치 나에게 주어진 사명이라도 되는 듯이, 나 아니면 아무도 이런 짓을 하지 않을 것 같은 착각에 빠져…. 큰 작가, 위대한 작가에게 편지를 한 번 보내볼까 하는 생각도 건방지게, 해본다.
아침 신문을 읽다가 틀린 글자를 발견하면 기자에게 문자를 보내준다. 아홉 시 넘을 즈음 고맙다거나 미안하다거나 하는 내용의 문자가 온다. 그런 말 들으려고 그런 게 아니다. 다음부터는 조금 조심하자는 뜻이다. 그런 뜻도 받아들였을 것이라 믿는다.
드러누워 텔레비전 오락 프로그램을 보다가, 뉴스를 보다가 자막에서 틀린 글자를 발견하면 벌떡 일어난다. 강도 낮은 욕도 한두 마디 던져 준다. 곁에서 아내와 아들이 ‘좀 심하다’ 하는 눈빛으로 쏘아본다.
대화하다가 상대방이 영 잘못된 표현을 쓰면 나도 모르게 ‘말 교정’을 한다. 애교로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눈총을 받는 경우도 많다. 이런 이야기를 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지천명을 한 해 앞두고 보니 이런 증상도 말기에 이른 것 같다. 그러면 말기 증상은 어떤가. 아침 신문을 보다가 주먹만 한 글자가 틀렸는데도 ‘오죽 바쁘고 힘들면 이런 것까지 놓쳤겠나.’ 하며 넘어간다. 텔레비전 자막이 틀리면 ‘혹시 자막 치는 친구가 비정규직이 아닐까.’ 싶어 모른 척한다. 책을 읽을 때마다 눈에 보이는 대로 틀린 글자를 표시하긴 하지만, 작가나 출판사로 편지 보내는 건 몇 해 사이에 한 번도 없다. 몸도 마음도 게을러진 탓이겠지.
무엇보다 말기 증상이라고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스스로도 자신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한글맞춤법, 표준어규정, 외래어표기법, 국어로마자표기법 같은 것을 거의 다 알고 있었는데 요즘은 통 자신이 없다. 글 몇 줄 쓰려면 ‘다음 사전’이나 ‘동아 새 국어사전’을 몇 번이나 뒤져보게 되고 그래도 자신 없는 단어는 아예 다른 말로 바꿔버린다. 띄어쓰기는 더 자신 없다. ‘한글과 컴퓨터’에서 빨갛게 밑줄이 그어지면 틀린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맞는가 보다 하며 넘어간다. 자신만만하게 엷은 웃음을 날리며 페이스북이나 블로그에 글을 올렸는데 한참 지난 뒤에 틀린 글자를 발견하고서는 스스로 얼굴을 붉히며 얼른 고치기도 한다.
이러니 1990년대에 얻은 직업병이 고질병이 되고 불치병이 되어, 이젠 말기 증상을 보이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서라, 말아라. 모든 건 제 스스로 제 생긴 대로 나고 살다 가게 내버려 둬라. 뭐 아쉽고 안타깝고 애탄다고 미주알고주알 밑줄 긋고 들춰내고 시비 걸고 하겠는가. 쓰는 사람은 쓰는 사람 뜻대로 쓰고 읽는 사람은 읽는 사람 시력대로 읽으면 되는 것을. 직업병이라고 해놓고 병 이름도 모르는데, 이를 뉘에게 말하고 뉘에게 보상하라 할 것인가. 나에게 말한다. “너나 잘하세요!” 2015.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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