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국민들이 프로야구라는 것을 바야흐로 재미있게 보기 시작했고, 따라서 야구 방망이와 장갑, 공 따위 장비를 살 수 있는 애들은 저희들끼리 모여 봉래국민학교 운동장에서 야구 비슷한 놀이를 할 즈음, 도대체 굴러다니는 공하고는 친할 재주가 없는 몇몇 놈들은 바깥으로 에돌았다. 겨울을 부르는 찬바람이 골목골목을 휘돌아다니며 옥상 빨래들을 제법 흔들어대고 제대로 닫히지 않은 대문은 귀신집 나무문처럼 기괴한 소리를 내곤 하던 어느 날, 고입 연합고사를 죽 쑨 우리는 촉석루에 놀러갔었다. 볼 것도 별로 없고 보고 싶은 것도 그다지 없던 우리는 뜀박질을 하다가 히히덕거리기도 하며 창렬사, 호국사를 뒤로 하고 나불천으로 내려갔다.
나불천 다리를 건너던 우리는 남강과 남강변 대밭과 그 근처 집들, 그리고 강 건너 망진산의 웅장한 모습을 보다가 우연히 나불천과 남강이 만나는 곳을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거기엔 뭔지 모르지만 팔딱팔딱 살아 뛰는 수십, 아니 족히 백 마리는 넘을 생명체가 있었다. 붕어라고 생각했고 어쩌면 잉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동시에 한 우리는 미끄러지듯 비탈을 타고 나불천으로 내려갔다. 홈런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리에서 보았을 때 살아 꿈틀거리던 붕어는 가까이에서 보니 허연 배를 뒤집고 누워 입을 뻐끔대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뭔가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아니, 그보다 먼저 우리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를 깨닫게 해준 건 코를 찌르는 역겨운 냄새였다. 파울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이 붕어를 얼른 잡아서 집으로 갖고 가야한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파울이면 주자가 뛰지 못한다는 규칙을 우리가 알 리 있었겠나. 노가다하고 들어올 아버지와 중앙시장에서 배추 팔다 돌아올 어머니와 동생과 모여앉아 붕어 요리를 해먹을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낡은 운동화가 나불천 뻘에 빠지는 줄도 모르는 채 붕어를 맨손으로 잡아 우선 한곳으로 모았다. 한 놈이 다리 밑 구석에서 찌그러지고 구멍난 바께쓰를 주워왔다. 미친 듯이 붕어를 주워 담다 보니 한 양동이가 넘었다. 거기 담아서는 붕어를 집까지 들고 갈 수 없었다. 중간에 아예 죽어버리지나 않을까, 못된 놈들에게 뺏기지나 않을까 하는 철 든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야, 이래갖고 안 되겠다. 각자 집에 가서 튼튼한 바께쓰 하나씩 갖고 다시 모이자.”라고 참 철 안 든 의논을 했다.
우리는 작전상 헤어졌다. 나불천에서 봉래국민학교 아래 우리 집까지는 왕복 50분은 족히 걸린다. 제 아무리 열심히 뛴다 해도 30분은 걸린다. 그런 계산을 착실히 할 정도로 생각이 있고 머리가 돌아갔으면 연합고사를 죽 쒔겠는가. 아무튼 잰걸음으로 집에 와보니 또 맞춤한 바께쓰가 있을 리 없어 골목 하나 사이에 두고 대문이 마주보고 있던 재종 형 집에 가서 숨찬 소리로 손짓 발짓 해가며 이러저러하니 바께쓰를 빌려 달라 사정하여 겨우 하나 얻어 들고는 또 숨차게 나불천까지 내달렸다. 가니, 집이 나보다 가까웠는지 버스를 탔는지 모르겠는 다른 동무 둘이 나불천 다리 위에 서 있는데 황당하다고 할까 당황스럽다고 할까 분간이 안 되는 그들 표정을 보는 순간 ‘모든 게 망했구나.’ 싶었다. 삼진아웃이었다.
우리가 손 시린 것도 잊은 채 운동화가 시궁창에 빠지는 줄도 모른 채 그러자니 당연히 바짓가랑이도 거지꼴로 더러워진 것도 모른 채, 열심히 주워 모은, 아니지, 잡아 모아 놓은 붕어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제서야 아둔한 우리들의 깜냥을 깨닫고 ‘아차!’ 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빈 바께쓰를 들고 해 넘어가는, 춥고 먼 거리를 터덜터덜 되돌아오는 것밖에 없었다. 그 물고기는 누가 가져가서 어떻게 했을까.
그때 나불천에서 팔딱팔딱 살아 뛰는 것처럼 보인 그 붕어들은, 사실은, 심하게 오염된 나불천 때문에 남강에서는 도무지 못 살겠다 싶어 물을 버리고 육지로 도망가던 족속들이었다. 그들은 명석에서부터 서장대 밑 동네까지 이르는 나불천에 버려진 온갖 생활하수, 즉 오수에 심하게 오염되어 마지막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고 있었던 것이었는데,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야 비로소 온몸에 덕지덕지 붙어 있던 하수구 냄새, 시궁창 냄새를 느끼게 된 것이었다. 그걸 먹자하고 집으로 가져갔던들 철딱서니 없고 소견머리 없기로 어찌 그 지경일 수 있느냐는 지청구를 얼마나 들었을까. 그때서야 ‘애들 야구 놀이 구경이나 할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삼진이었기에 망정이지 병살타가 될 뻔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그 고기는 정말 누가 다 가져갔을까. 가져가서 먹었을까. 정말 먹었다면, 그는 아무 탈 없이 무병장수를 누렸을까.
나불천은 1990년대 말에 복개되었다. 당초 1992년 착공하여 1996년에 완공할 예정이었으나 1998년까지 공시기간이 연장됐다는 기사가 보였는데 완공 시점은 모르겠다. 그사이 1995년 천수교가 완공되는 바람에 나불천 복개공사를 서둘러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다. 서장대 밑 남강과 합류되는 지점에 있던 다리는 개령교였고, 명석으로 빠져나가는 길 언저리, 북부파출소 옆에 있던 다리는 유현교였다. 두 다리를 잇는 길이는 1200미터이다. 우리가 물고기의 마지막 발버둥을 신기한 눈으로, 군침을 흘리며 내려다보던 그 다리가, 그러니까, 개령교였다. 2015.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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