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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석류나무 잎사귀는 몇 장이었을까

그 석류나무 잎사귀는 몇 장이었을까

by 이우기, yiwoogi 2015. 1. 13.

옥봉동 산비탈에 오도카니 앉은 우리 집엔 햇볕이 잘 들었다. 마당가 담벼락에 지름 1.5m 남짓 타원형 화단이 하나 붙어 있었다. 화단이라고 할 것도 없다. 거기엔 20년쯤 되었을 석류나무 한 그루가 버티고 서 있고, 가장자리에 상사화 같은 숙근초가 더러 자라는 정도였으니. 석류나무는 큰 그늘도 되어주지 못했고 석류를 우리에게 잘 제공해주지도 못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석류가 제법 열리긴 했지만 그다지 볼품이 없었다. 버릴 것 버리고 남은 것으로 술 됫병 정도 담글 만했다 할까.

석류는 아버지에게 많은 일거리를 주었다. 봄에 잎이 나기 시작할 때부터 초겨울 가랑잎이 다 떨어져 없어질 때까지 하루도 방치할 수 없었다. 봄에 잎이 나면 비리가 달라붙어 약을 쳐야 했다. 맑은 날 농약을 사와서 물과 적당히 섞은 뒤 바람 부는 방향을 봐가며 뿌렸다. 오뉴월 주홍색 석류꽃이 피기 시작하면 또 다른 일거리가 생긴다. 그 석류꽃이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하고 바닥으로 떨어져 버리면 볼썽사납게 된다. 우리 집 마당에 떨어지는 거야 그냥저냥 괜찮은데 담벼락 너머 길에 떨어진 건 날마다 쓸어 없애지 않으면 이웃으로부터 지탄 듣기 딱 좋다. 석류는 늦가을 다 딸 때까지 시도 때도 없이 떨어진다. 밟혀 깨진 석류의 붉은 빛깔은 정말 별로다.

추석 지나고 가을이 무르익으면 석류나무 잎이 지기 시작한다. 석류나무 잎사귀는 도대체 몇 장이고, 하루에 몇 장이 떨어지고, 그러면 다 떨어지는 데 며칠이 걸리던 것이었을까. 잎들은 제각기 떨어질 날짜와 시간이 정해져 있는 걸까, 아니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무단히 불현듯 갑자기 떨어지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게끔 많이 떨어지고 자주 떨어지고 끝도 없이 떨어진다.

대학을 마치고 신문사 입사하여 5년 동안 오후에 출근할 때다. 나는 환자처럼 마루에 앉아 아버지가 석류나무에 약을 치고 떨어진 석류꽃을 쓸고 석류나무 낙엽을 쓸고 하는 것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아버지는 도와달라거나 네가 하라거나 하는 말은 거의 하지 않았다. 나는 저 석류가 제대로 맺히면 돈이 좀 되려나, 저 석류를 술로 담그면 맛이 어떨까, 저 나뭇잎은 왜 저렇게 떨어질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쩌다 아버지 안 계시면 내가 쓸어 치우기도 했다.

찬바람 부는 늦가을이면 아버지는 신경질을 좀 냈다. “이노무 나무를 확 베어버릴끼다.” 하시거나, “아예 불을 질러버릴까.” 하시거나, 날더러 너는 뭐하는 놈인데 구경만 하노?” 하시기도 했다. 나는 싱긋이 웃으며 고마 아부지가 하이소.”라고 대꾸하곤 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일도 없고 갈 곳도 마땅찮은 아버지가 그런 일거리 하나라도 붙들고 있어야 더 오래 건강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날마다 일어나자마자 밥 먹고 출근하던 사람이 정년퇴직을 해버리면 몸도 마음도 긴장의 끈을 놓게 되어 더 빠른 속도로 노쇠해지는데, 아버지는 사시장철 석류나무 하나라도 붙들고 있으면 건강을 오래도록 지속할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좀더 추워지는 초겨울이 되면, 정말 석류나무에는 큰맘 먹고 세어볼 요량이 생길 만큼 잎 개수가 줄어 있다. 하지만 그것들은 내년 봄 새잎이 날 때까지 붙어 있을 기세다. 웬만한 바람에는 끄떡도 안한다. 그럴 즈음에 비로소 아버지는 우기야, 이리 와서 나무 좀 흔들어라!”는 지시 겸 부탁을 하신다. 나는 못 이기는 척 느릿느릿 화단에 기어올라 석류 가지를 꼭 붙들고 세차게 흔든다. 남은 잎이 하나도 없을 때까지 신나게 즐겁게 흔든다. 아버지는 멀찍이 서서 , 그라모 나무 뿔라진다!”고 소리친다. 그러시거나 말거나, 나는 하나도 남김없이 다 떨궈버린다. 아버지의 한 해 석류농사의 대미는 그렇게 끝나곤 했다. 석류 몇 알은 술병에 담겼다가 부자간에 마주앉을 때나 깊은 밤 배 아플 때 요긴하게 쓰이기도 했다. 내가 결혼하여 분가한 몇 해 뒤 화단은 파헤쳐지고 석류나무는 집 뒤 누구의 밭에 심었단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게 보낸 세월이 있다. 아버지가 석류꽃을 쓸고 나뭇잎을 쓸 때 나는 햇볕 따스한 마루에 앉아,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로 돌아가곤 했다. 석류 잎이 한창 푸르렀던 어느 날 아침 우리 네 형제는 학교를 가려고 사립을 나서던 참이었던가 보다. 이웃집 아저씨가 사진기를 새로 샀다며 아침 댓바람에 달려와 우리를 나란히 세워놓고 한 장 찍었다. 사진 속 우리는 어색함과 신기함과 고마움과 즐거움과 조바심과 기대감과 부끄러움 같은 걸 안고 있는 표정이다. 그 사진은 지금도 옥봉 본가 사진첩에 모셔져 있다. 그 석류나무와 이 석류나무는 같은 나무일까 다른 나무일까. 그 석류나무는, 우리가 진주로 이사하여 수정동, 장대동, 봉래동, 다시 장대동으로 이사 다닐 때 제 먼저 이 집으로 날아와 우리를 기다리며 자라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아버지의 노동을 지켜보았다. 행복한 추억이다. 2015. 1.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