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저녁 늦도록 마신 술로 일요일 아침까지 머리를 쥐어 잡고 있었다. 뒷골이 아팠다. 속도 더부룩하고 갑갑했다. 억지로 일어나 된장찌개를 끓였다. 돼지고기 넣고 호박, 대파, 양파, 버섯 같은 걸 대중없이 썰어 넣고, 감자를 넣으려는데 감자가 없어 고구마를 넣었다. 어찌 되든 말든. 두부는 빠지지 않는다. 달걀도 구웠다. 여덟 시쯤 아들을 깨워 마주앉아 밥을 먹었다. 아들은 달걀구이를 더 맛있게 먹더니 나중에서야 된장찌개 국물 맛을 알아보고 연신 숟가락질이었다. 대강 해도 잘 먹으니 좋았다. 그러고서 한숨 푹 잤다.
열한 시 좀 지나 깨었다. 아들도 널브러져 있다. 다정스레 불러 깨웠다. “목욕 가자.” 하니 싫다 하지 않고 일어난다. 중학생 된 뒤로 나하고 목욕하는 게 몇 번째인지. 이것저것 주섬주섬 챙겨 들고 차를 몰고 명석 지나 좀 널찍한 데로 갔다. 가는 길 부자간에 이야기는 별로 없었지만 아들이 두말하지 않고 따라 나선 게 고마웠다. “목욕 끝나면 점심시간일 테니 뭐 먹을래?” 물었다. 별 말이 없던 아들은 “‘어울림’ 식당 국수를 먹고 싶다.”고 했다.
이 집 국수 맛은 사람을 기분 좋게 한다. 양도 많다. 나는 냄비 밑에 깔린 고춧가루를 빼고는 죄다 먹고 마셨다. 배가 불렀다. 청양초도 담아주는 대로 세 개나 먹었다. 아들에게 “방학 때 읽을 책을 사주겠노라.” 하며 진주문고로 갔다. 한참 돌고 돌아 나는 ≪풍운아 채현국≫과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을 샀고 아들은 중3 때 배울 수학 문제집을 골랐다. 수필이나 소설을 고르길 바랐는데 내 생각은 살짝 빗나갔다. 그래도 아들과 서점을 방문하는 일은 그 자체로 즐거움이다.
집에 와서 잠시 책 읽으며 쉬다가 온 가족이 본가로 향했다. 큰형님과 동생이 함께 모이기로 한 날이다. 나는 본가 동네 ‘은하이용원’으로 가 머리를 깎았다. 조금만 길어지면 미친놈처럼 보이기 십상인 머리카락을 고를 때가 지난 것이었다. 운 나쁘면 두어 명, 한 시간은 족히 기다릴 텐데 손님은 아무도 없다. 냉큼 의자에 앉아 머리를 맡긴다. 두 딸과 아들 하나 키우며 머리도 빠지고 허리 수술도 하고 치아도 여럿 달아나버린 이발사 아저씨 사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잠시 행복에 겨웠다.
어머니는 아들들 온다고 대구 두 마리를 장만해 놨고, 가오리회무침을 하려고 재료들을 준비해 놓았다. 나는 수십 년 갈고 닦은 솜씨로 무채를 썰었고 가오리를 손질했다. 예전에는 이런 건 아버지 몫이었는데 요즘은 내가 좀 나서는 편이다. 혼자 양반인 양하며 뒤로 물러 앉아 있는 건 질색이다. 명절 때 돼지고기 수육 써는 것도 내가 나선다. 일 마치고 곧장 달려온 큰형은 가오리회무침까지 기다리자니 배가 고픈지 소주부터 찾는다. 또 내가 나선다. 냉장고에 있는 달걀 다섯 개로 달걀부침을 번개처럼 만들어 목부터 축이고 있자니 가오리회무침도 얼추 완성된다.
어머니는 “텔레비전에 보니 대구탕을 끓일 때 뭐 넣고 뭐 넣고 하여 육수를 잘 끓여야 한다더라.”면서 미리 육수를 장만해 두었다. 그 육수에 아내가 대구탕을 끓였는데, 내 머리와 혀가 기억하는 맛 중 최고의 맛이 나왔다. 나는 육수를 준비한 어머니와 아내를 몇 번씩 칭찬했다. 칭찬 소리는 일부러 큰 목소리로 했다. 배가 터지게 먹었다. 좋은데이는 두 병만 비웠는데 큰형과 내가 대략 한 병씩 비운 것이다. 가족끼리 모여 이렇게 먹고 놀고 보니, 일요일 하루가 참 알찼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 하나 빠지지 않게 잘 짜인 각본처럼 척척 잘 돌아간 것 같다. 일상의 자잘한 행복은 이런 게 아닌가 싶다. 당장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날 중 하루였지만 나중에, 아주 나중에 돌이켜보면 이런 소소한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될 것이다. 2015.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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