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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석류나무 잎사귀는 몇 장이었을까

일상의 자잘한 행복

by 이우기, yiwoogi 2015. 1. 12.

토요일 저녁 늦도록 마신 술로 일요일 아침까지 머리를 쥐어 잡고 있었다. 뒷골이 아팠다. 속도 더부룩하고 갑갑했다. 억지로 일어나 된장찌개를 끓였다. 돼지고기 넣고 호박, 대파, 양파, 버섯 같은 걸 대중없이 썰어 넣고, 감자를 넣으려는데 감자가 없어 고구마를 넣었다. 어찌 되든 말든. 두부는 빠지지 않는다. 달걀도 구웠다. 여덟 시쯤 아들을 깨워 마주앉아 밥을 먹었다. 아들은 달걀구이를 더 맛있게 먹더니 나중에서야 된장찌개 국물 맛을 알아보고 연신 숟가락질이었다. 대강 해도 잘 먹으니 좋았다. 그러고서 한숨 푹 잤다.

열한 시 좀 지나 깨었다. 아들도 널브러져 있다. 다정스레 불러 깨웠다. “목욕 가자.” 하니 싫다 하지 않고 일어난다. 중학생 된 뒤로 나하고 목욕하는 게 몇 번째인지. 이것저것 주섬주섬 챙겨 들고 차를 몰고 명석 지나 좀 널찍한 데로 갔다. 가는 길 부자간에 이야기는 별로 없었지만 아들이 두말하지 않고 따라 나선 게 고마웠다. “목욕 끝나면 점심시간일 테니 뭐 먹을래?” 물었다. 별 말이 없던 아들은 “‘어울림식당 국수를 먹고 싶다.”고 했다.

이 집 국수 맛은 사람을 기분 좋게 한다. 양도 많다. 나는 냄비 밑에 깔린 고춧가루를 빼고는 죄다 먹고 마셨다. 배가 불렀다. 청양초도 담아주는 대로 세 개나 먹었다. 아들에게 방학 때 읽을 책을 사주겠노라.” 하며 진주문고로 갔다. 한참 돌고 돌아 나는 풍운아 채현국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을 샀고 아들은 중3 때 배울 수학 문제집을 골랐다. 수필이나 소설을 고르길 바랐는데 내 생각은 살짝 빗나갔다. 그래도 아들과 서점을 방문하는 일은 그 자체로 즐거움이다.

집에 와서 잠시 책 읽으며 쉬다가 온 가족이 본가로 향했다. 큰형님과 동생이 함께 모이기로 한 날이다. 나는 본가 동네 은하이용원으로 가 머리를 깎았다. 조금만 길어지면 미친놈처럼 보이기 십상인 머리카락을 고를 때가 지난 것이었다. 운 나쁘면 두어 명, 한 시간은 족히 기다릴 텐데 손님은 아무도 없다. 냉큼 의자에 앉아 머리를 맡긴다. 두 딸과 아들 하나 키우며 머리도 빠지고 허리 수술도 하고 치아도 여럿 달아나버린 이발사 아저씨 사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잠시 행복에 겨웠다.

어머니는 아들들 온다고 대구 두 마리를 장만해 놨고, 가오리회무침을 하려고 재료들을 준비해 놓았다. 나는 수십 년 갈고 닦은 솜씨로 무채를 썰었고 가오리를 손질했다. 예전에는 이런 건 아버지 몫이었는데 요즘은 내가 좀 나서는 편이다. 혼자 양반인 양하며 뒤로 물러 앉아 있는 건 질색이다. 명절 때 돼지고기 수육 써는 것도 내가 나선다. 일 마치고 곧장 달려온 큰형은 가오리회무침까지 기다리자니 배가 고픈지 소주부터 찾는다. 또 내가 나선다. 냉장고에 있는 달걀 다섯 개로 달걀부침을 번개처럼 만들어 목부터 축이고 있자니 가오리회무침도 얼추 완성된다.

어머니는 텔레비전에 보니 대구탕을 끓일 때 뭐 넣고 뭐 넣고 하여 육수를 잘 끓여야 한다더라.”면서 미리 육수를 장만해 두었다. 그 육수에 아내가 대구탕을 끓였는데, 내 머리와 혀가 기억하는 맛 중 최고의 맛이 나왔다. 나는 육수를 준비한 어머니와 아내를 몇 번씩 칭찬했다. 칭찬 소리는 일부러 큰 목소리로 했다. 배가 터지게 먹었다. 좋은데이는 두 병만 비웠는데 큰형과 내가 대략 한 병씩 비운 것이다. 가족끼리 모여 이렇게 먹고 놀고 보니, 일요일 하루가 참 알찼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 하나 빠지지 않게 잘 짜인 각본처럼 척척 잘 돌아간 것 같다. 일상의 자잘한 행복은 이런 게 아닌가 싶다. 당장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날 중 하루였지만 나중에, 아주 나중에 돌이켜보면 이런 소소한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될 것이다. 2015. 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