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1월 12일 월요일 나랏님의 새해 구상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오늘 신문을 보니 보수적인 신문, 진보적인 신문 할 것 없이 죄다 비판 일색이군요. <인적쇄신 거부…국민에 ‘항명’한 대통령>(경향신문)이라는 제목도 보이고, <여론보다 ‘마이웨이’ 선택한 박대통령>(YTN)이라는 제목도 보이고, <여론과 거리 멀어…집권 3년차 ‘험로’ 예고>(국민일보)라는 제목도 보입니다. 나는 기자회견을 보지 못했습니다. 어쩌다 보니 저녁뉴스도 보지 못했습니다.
저녁에 인터넷에 올라 있는 이런저런 기사들을 훑어보니 ‘경제’는 42번 언급했는데 내용은 지난해와 판박이라고 하는군요. 2014년 새해 기자회견과 어제 한 기자회견을 나란히 한 화면에 띄워놓고 서로 비교한 뉴스도 있던데요, 정말 지금이 2014년인지 2015년인지 모를 정도이더군요. 한번 볼까요. 뉴스 자막을 옮겨 볼게요.
2014년에 “앞으로 경제혁신계획이 차질 없이 추진되면 3년 후 우리 경제의 모습은 잠재성장률 4% 수준으로 높아지고 1인당 국민소득은 4만 불 시대... 또한 고용률 70% 달성”이라고 말했는데요, 2015년엔 “이러한 계획이 차질 없이 추진되면 우리 경제는 잠재성장률 4%대, 고용률 70%, 국민소득 4만 달러로 나아가는 경제로...”라고 말씀하셨네요.
2014년에 “전국 17개 광역 시도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설치해서...”라고 했는데, 2015년에는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상반기까지 전국 17개 시도에 모두 개소하여...”라고 했네요. 보통 지난해 몇 개를 개소했고 올해 나머지를 다 개소하겠다고 말하는데, 어법이 우리와 조금 다릅니다. 다른 건 죄가 아니죠.
“친환경 에너지타운 등 온실가스를 감축하면서...”라는 올해 말씀도 “친환경 에너지타운을 만들 것입니다”라던 지난해 원고를 베낀 듯하고, “유라시아와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기를...”이라는 말씀도 “유라시아 철도를 연결해서...”라던 지난해 원고와 다를 게 없습니다. 지난해에 한다고 했다가 아직 못한 듯합니다. 얼마만큼 진행돼 왔는지 좀 알려주셨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렇게 하지는 않는군요.
지난해 “농업과 문화 등 기존산업에 과학기술과 ICT를 융합해서...”라고 말씀하신 부분은 “농촌관광, 유통,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ICT 표준모델을 개발해서 활용한다면...”이라는 말로 되살아났습니다. 말이 살아났습니다. 참 다행한 일이로군요. “경제활성화를 위해 부동산 시장을 정상화하는 것”이라는 말씀도 “소비심리를 살려내고 내수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부동산 시장이 회복되어야 합니다”라는 말로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대단한 자생력을 가진 말들입니다.
나랏님이 무슨 잘못을 했겠습니까. 써준 대로 읽었을 뿐인데요. 써준 사람은 또 무슨 잘못이 있겠는지요. 이렇게 쓰나 저렇게 쓰나 잘 받아 적고 잘 까먹는 국민들인걸요. 우리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니 아무도 탓하지 말고 누구도 원망할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수원수구(誰怨誰咎) 아닌지요.
솔직히 저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나랏님이 좋은 구상을 밝히고 엄하게 지시하셨어도 그게 우리 같은 민초들이 피부로 느낄 만큼 와 닿으려면 얼마나 많은 단계를 거치고, 얼마나 많은 세월이 필요한지 우리는 오랜 경험으로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 과정에서 어떤 좋은 아이디어는 퇴색하고 어떤 구상은 비틀어지고 어떤 계책은 팽개쳐지고 어떤 생각은 묵살당하기도 하는 세상 아닙니까. 그러고서도 그걸 다시 묻거나 다시 따지거나 하는 사람도 언론도 잘 보기 힘든 세상 아닙니까. 그러니 무엇을 기대하겠습니까. 기대하진 않았지만, 무섭긴 합니다.
2015.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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