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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석류나무 잎사귀는 몇 장이었을까

사랑에 좌절하면 죽을 수 있는가

by 이우기, yiwoogi 2015. 1. 2.

새해 초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이 생겼다. 대구에서 스물아홉 살 여성이 남자친구와 함께 자취를 감추어 경찰이 수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여성은 결혼 반대에 화가 난 남자친구가 같이 죽자고 한다.”고 어머니께 알렸다. 1230일 함께 행방이 묘연해졌는데 12일까지 못 찾고 있는 모양이다.

아마 두 사람은 서로 눈이 맞아 얼마 동안 사귀었을 것이다. 부모에게 인사를 드렸거나 아니거나 간에 둘은 결혼을 약속했을 것이다. 둘만의 사랑이 아름답게 꽃필 것을 상상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을 것이다. 젊은 남녀의 사랑은 대개 이렇게 멋지게 진행된다. 양쪽 부모 모두 자식의 연인이 첫눈에 마음에 든다면 이보다 좋은 일은 없겠지. 그럼에도 결혼식장에 입장하기까지 길은 순탄하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자식이 배우자로 선택한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이다. 어느 한쪽 부모라도 왼고개를 틀어버리면 울고불고하는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게 된다. 흔한 드라마나 연애소설은 이럴 때의 상황과 감정을 놓치지 않고 교묘하게 비틀고 꼬아서 이야기를 엮어 나간다.

남녀의 사랑은 결혼이라는 제도 앞에 서면 상상 속, 동화 속 이야기에서 냉정한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사랑은 감성적이고 느낌이며 미래지향적이지만, 결혼은 이성적이고 실물이며 현재 상황에 집착한다. 부모의 반대는 가장 큰 절벽이자 낭떠러지이다. 부모가 주도권을 쥐면 절벽이고, 부모가 냉소적이면 낭떠러지가 된다.

만일, 두 사람이 정말 사랑하여 장래까지 굳게 약속했는데 부모가 반대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선택은 많지 않다. 부모의 뜻대로 헤어지고 말든지, 끝까지 부모를 설득하든지(언제까지?), 그도 저도 아니면 둘이 도망가 살든지 해야 한다. 정말 이것마저 뜻대로 안 되면, 어떡하겠나? 세상을 등질 수밖에. 부모 자식 간의 천륜도, 사랑했던 연인과의 인연도 미련 없이 던져버리고 어디로든 갈 수밖에. 그곳이 이승일지 저승일지는 알 수 없다. 이승을 택한 사람의 스토리는 출가(出家) 또는 이민에 초점이 맞춰지고 저승을 택한 사람의 안타까운 이야기는 신문 사회면 귀퉁이에 조그맣게 실리곤 한다. 가문의 반대에 부닥쳐 상심하던 연인이 결국 죽음으로 모든 것을 마감한다는 고전적 이야기는 문학과 영화의 소재로 곧잘 인용되는데, 로미오와 줄리엣이 대표적이다.

나는, 사랑이 어떤 반대에 부닥쳤다고 하여 저승을 택함으로써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건 일단반대한다. 죽음으로써는 사랑을 이어갈 수 없고 더더구나 사랑을 완성할 수는 없는 것이다. 죽음은 모든 것을 제로로 만들고 없음으로 만들고 망각으로 만든다. 모든 것을 망각한 상태에서, 아무것도 없는 맨바닥에서 사랑이 싹틀 수는 없다. 일단 그리 생각한다.

그렇다면 부모의 뜻대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것인가.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유행가 가사처럼, 상대방의 안녕과 행복을 빌면서 눈물 흘리며 이별하고 말 것인가. 이것은 바람직한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거부할 수 없는 자신의 본성을 속이고, 함께 키워온 애틋한 감정을 부정하고, 같이 나아가고자 한 미래의 밝은 빛을 한 순간에 꺼버리는 것은 가능한가, 바람직한 선택인가. 이것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고지순한 사랑이, 그 사랑을 완성할 수 없는, 어찌할 수 없는 벽에 부닥친다면 세상을 등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함으로써 세상의 다른 모든 것과 연결되고 있다고 믿는데, 그 믿음이 무너지면 세상에 내가 속해 있을 까닭이 없어진다. 그러면 세상을 버릴 수밖에 다른 방법이 있겠나. 비련의 주인공이 되어 세상을 바장이는 수도 있고 머리를 깎는 수도 있고, 더러는 아무도 생각지 못한 방법을 골똘히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비록 가장 나쁜 결정은 반대하지만, 어찌할 수 없는 낭떠러지에선 뛰어내리는 것밖에 달리 방법이 없을 지도 모른다.

사랑에 좌절하면 죽을 수도 있어야 그걸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것 아닌가. 사랑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 게 사랑 아닌가. 사랑에 배신당하거나 사랑을 잃거나 사랑에 좌절하면, 짧아도 100일은 식음 전폐해야 하는 만큼의 슬픔과 고통이 없겠는가. 같은 말 쓰는 나라조차 싫어서 낯설고 물 선 이국으로 밀항이라도 해야 할 만큼의 충격이 없겠는가. 한 하늘 아래에서 숨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워 조용히 이승을 버려야 할 것 같은 정신적 혼란이 없겠는가. 그런 정도는 되어야 비로소 그것이 사랑이었다고 할 것 아닌가.

사랑하다가 조금만 수틀리면 헤어지고 마는 세상이다. 알콩달콩 사랑을 키워온 연인도 부모가 반대한다는 이유로, 의견이 달라진 그 무엇 때문에 쉽게 등을 돌리는 세상이다. 어제까지 죽고 못 살겠다고 맹세해 놓고도 오늘 마음이 달라지기도 한다. 냉정하고 깔끔하다. 뒤를 돌아보는 법도 별로 없다. 둘이 사랑하여 결혼하겠다고 하는데, 부모가 반대하면 그 여자(남자)와 손 꼭 잡고 무슨 일이든 결행할 수 있어야 사랑이라고 할 것이라고 보면, 요즘 세상엔 그런 사랑은 보기 어렵고, 쉽게 뜨거워지고 쉽게 식고 쉽게 끓어 넘치고 쉽게 얼어붙는 인스턴트 사랑만 쌔고 쌘 것 같다. 그래서 이라고 하는 희한한 말도 생겼는지 모르지.

부디, 대구의 젊은 남녀가, 어디에서든 무엇으로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2015년을 보내게 되길 빈다. 2015.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