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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에서 퍼나른 글 모음

고마운 사람들

by 이우기, yiwoogi 2014. 12. 8.

아침 550분 시계 소리를 듣고 반사적으로 눈을 떴다. 사위가 고요했다. 눈 뜨자마자 페이스북에 들어갔다. 이건 3년쯤 된 습관이다. 눈 이야기가 보인다. 서울도 아니고 경기도도 아니고 강원도도 아닌 경남, 진주의 눈 이야기다. 나보다 먼저 새벽을 열어젖힌 친구들의 실시간 중계가 이어지고 있었다. ‘어마 뜨거라!’ 싶었다. 창밖을 내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눈이 제법 쌓였다. 나도 사진을 찍어 올렸다. 혹시 모르고 있을 친구들을 위하여...

 

아내에게 밥을 좀 일찍 먹고 출발해야겠다고 말했다. 차에 쌓인 눈을 미리 좀 털어내기 위해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나는 주차장 마당을 쓸고 있는 사람과 마주쳤다. 어둠 속이라 잘 안 보였지만 아랫집 아저씨가 분명했다. 껑충한 키와 특유의 걸음걸이를 나는 기억하고 있다. 두 집 다 이사 온 지 10년은 넘었을 성싶다. 너나들이를 할 정도로 친하지는 않지만, 나는 그 분의 부지런함을 여러 차례 목격한 적이 있다. 인사를 나누고 나는 차를 운전하여 출근할 수 있을지 살폈다.

 

우리 집은 좀 높은 데 있다. 10미터 남짓한 내리막길을 내려가서 다시 30미터 남짓한 내리막길을 한 번 더 내려가야 한다. 롤러코스터라고 할까, 청룡열차라고 할까. 지지난해 1228일 모처럼 진주에 큰눈이 왔을 때 10미터짜리 내리막길을 내려가던 탑차가 다른 차를 살짝 들이받았는데, 그 차 주인의 허벅지가 벽과 차 사이에 끼여 큰 부상을 입은 적이 있다. 119가 출동하고 한바탕 난리가 난 적이 있다. 그런 동네에 산다.

 

아랫집 아저씨는 환경미화원이 들고 다니는 큰 빗자루로 주차장을 쓸고 비탈길을 쓸고 있었다. 아저씨는 두껍지 않은 옷을 입고 있었고, 모자에는 하얀 눈이 제법 쌓여 있었다. 나는 내 차만 살피고 다시 집으로 들어가서 밥을 먹었다. 아저씨에게 미안하여 두어 번 돌아보았지만, 출근길이 바쁘다는 핑계를 스스로 지어내고 있었다.

 

차를 두고 갈까 가져갈까 몇 번 망설이다가 차를 갖고 가기로 했다. 주차장으로 가니 아저씨는 아직도 비질을 하고 있었다.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다시 인사를 건네고 시동을 걸자 아저씨는 내 차 옆 유리에 쌓인 눈도 털어주었다. 고맙다는 말을 하긴 했지만, 많이 부끄러워졌다. 젊은 사람은, 나처럼, 대부분 늦잠을 자고 있거나 자기 차만 운전하여 가기 바쁜데, 이른 새벽부터 아파트 주민을 위하여 눈을 치우는 아저씨... 생각해 보니 지난해 눈이 제법 왔을 때도 아래층 아저씨는 눈을 치우러 나왔었다. 그런 분이다.

 

10미터짜리 내리막길을 조마조마 조심조심 내려가서 이윽고 30미터짜리 내리막길까지 갔는데, 이번에는, 잘 모르는 젊은 남자 한 명이 눈을 쓸고 있었다. 손이 시린지 입으로 호호 불면서도 그는 눈 치우는 일을 멈추지 않다가 내 차가 다가가자 비로소 한쪽으로 비켜 서 주었다. 나는 걱정했던 것보다 편하고 안전하게, 그리고 미안하고 고맙게 출근할 수 있었다. 창문을 내리고 고맙습니다!”라고 말하지 못한 게 못내 마음에 걸렸다.

 

지지난해 1228일 모처럼 진주에 큰눈이 내린 날 나도 짤달막한 빗자루를 들고 눈을 치우기 위해 나가긴 했지만, 출근 시간이 임박하다는 핑계를 대고, 잠시 후 집으로 들어오고 만 기억이 있다. 다음엔 눈이 오면 나도 꼭 작은 빗자루라도 들고 나가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할 것 같다. 오늘 하루 내가 이렇게 편안하고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건 그 두 분의 덕분인 것만 같다. 고마운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보내고 싶어진다. 고맙고 또 고맙다.

 

2014.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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