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 지 30년은 족히 넘었을 우리 아파트의 창틀은 10년 전쯤 우리가 이사 올 때부터 삐거덕거렸다. 삐거덕거리면서라도 제대로 닫히기만 하면 그나마 견딜 만했을 텐데, 숫제 사개가 맞지 않아 겨울이면 넓은 틈새로 달려 들어오는 찬바람을 막을 길 없었고, 여름에는 방충망 찢어진 곳을 귀신같이 찾아내던 모기 특공대의 침공에 속수무책이었다. 새벽일 나가는 옆집 아저씨의 낡은 트럭 엔진 소리도 여과 없이 베란다 창틀을 넘고 안방 창틀을 지나쳐 들어와 베갯머리에서 쿠릉쿠릉거렸다. 2004년 6월 이사 와서 7년 동안 그렇게 살았다. 그 동안 베란다에서 동사한 가련하고도 애처로운 난초와 산세베리아, 천리향, 게발선인장 들은 또 어쩌고...
2011년 여름이 끝나갈 무렵 창틀을 새것으로 바꾸었다. 제법 목돈이 드는데도 그렇게 용기를 낸 것은, 우리 동네 집집마다 앞을 다투어 창틀을 새로 바꾸기 시작했고, 그렇게 바뀐 하얀색 창틀을 보면 실내는 어떻든지 말든지 겉으로는 새집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 집 아래층과 위층이 아예 실내까지 리모델링한 것도 우리를 자극했다. 결정적으로, 몇 해 동안 푼푼이 모은 적금이 거의 창틀을 새로 바꿀 만해졌기 때문이었다. 오래 걸릴 줄 알았던 그 작업은 단 이틀 만에 끝났다.
가장 먼저, 조용해졌다. 새벽잠 깨우던 트럭 소리도 잦아졌고, 쉬는 날이면 마당에서 뛰어다니는 애들 웃음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밤늦게 ‘목포의 눈물’을 부르며 귀가하는 이웃 아저씨의 취한 노랫소리도 사라졌다. 아직 모기가 창궐할 때인데도 엥엥거리는 소리가 완전히 사라졌다. 이것은, 금세 알아차린 게 아니라, 어느 날, 가을이 되었는데도 모기가 아직 기승을 부린다는 뉴스를 텔레비전에서 보고서야 느낀 것이다. “그러고 보니 지난여름엔 모기 구경을 못 했네!” 그리고 그 다음해 봄에, 우리는 그냥 내버려두기만 했던 베란다의 갖가지 식물들이 아직 푸름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창틀을 새로 바꾼 것은 우리 가족의 삶의 질을 좀 높여 준 것 같았다. 과학의 힘이랄까, 기술의 마력이랄까, 돈의 요술이랄까.
오늘처럼 비오는 날이면 나는 창틀을 새로 바꾼 것을 조금 후회한다. 아득한 우주 끝에서 주먹 불끈 쥐고 이 앙다물고 출발하였을 것으로 짐작되는 빗방울이 마침내 지구의, 대한민국의, 경상남도 진주의, 우리 아파트 마당에 세워둔 자동차 지붕이나, 우리 집 창틀에 힘껏 부딪치며 제 존재를 알리는 소리를 잘 들을 수 없게 된 때문이다. 출근할 때 비가 오는지 안 오는지 얼마나 오는지 알기 위해 일부러 창문을 열어보아야 할 때, 학원 간다고 나선 아들이 “밖에 비가 많이 오네요.”라며 다시 돌아와 우산을 들고 가는 것을 볼 때, 좀 귀찮기도 하고 번거롭기도 하고, 까닭 모르게 사는 게 미안하고, 그렇다.
무엇보다, 베란다 창문과 거실 창문을 모두 닫아버리면 바깥에서 “불이야!”를 외쳐도 모르고 “도둑이야!”를 외쳐도 모르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도 은근히 생겨버린 것이다. 세상 속에서 시달리고 찌들고 주눅 들었다가 집에서만큼은 기 펴고 조용하게 쉬면서 여유를 즐기고 싶은 마음이 어찌 없겠는가마는, 그것은 어쩌면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자동차 바퀴소리가 어울려 돌아가는 세상살이와 단절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기우가 슬며시 고개를 들기도 하는 것 아닌가. 창틀은, 세상의 번잡함으로부터 나를 도피시키는 경계이기도 하지만, 그 사람 사는 세상과 내가 소리로 바람으로 빛으로 연결되게 해 주는 장치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물이 지나치게 맑으면 고기가 없다’(水至淸則無魚)고 했듯, 우리 집에도 바깥의 적당한 소음과 차가움이 창틀의 좁은 틈새를 뚫고 끊임없이 들어와야 할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2014. 10.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