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교기념일이라고 하루 쉰다. 마침 비가 온다.
7:50 중2 아들을 태워준다. 보통 땐 자전거 타고 가고 비올 땐 걸어가는 길이다. 예전엔 비오는 날이면 자주 태워주곤 했는데, 출근 시각이 8:00으로 조정되고 나서는 처음이다.
8:00 진공청소기를 돌린다. 방 세 개와 거실을 훑는 데 5분이면 충분하다. 몇 달 만에 돌리는데 흡입기 쪽 작동이 이상하다. 우선은 내버려 둔다.
9:30 치과에 간다. 아래 앞니 하나 뺀 자리 때우기 위해 본을 뜨는 날이다. 간단하고 쉬울 줄 알았는데 마취를 하더니 한참 긁고 누르고 난리다. 윗니까지 본을 뜨기 위해 휘발유 냄새 나는 죽 같은 걸 척 갖다 대는데 죽는 줄 알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이제 다음주 한번만 더 가면 이번 치료는 끝이다. 하지만 다음 이, 다음 이, 다음 이들이 신호를 보내오고 있다. 끝이 없다. 그 끝은 아마 틀니이거나 합죽이가 될 게 뻔하다. 끔찍하다.
10:30 중앙시장 ㅎ국기사에 간다. 물려받은 아들 교복 셔츠에 이름표를 달기 위해서다. 대아중은 교복판매점에서만 달 수 있다고 한다. 걸어서 갤러리아백화점 건너편까지 간다. 가면서 ㅌㅌ치과 쪽을 흘깃 바라본다. 아는 인연이 있는 곳으로 눈길이 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가니, 명찰은 ‘경남국기사’에 가야 한단다. 아까 간 ㅎ국기사 바로 맞은편인데, ㅎ국기사 아저씨는 왜 거짓말을 했을까. 잘 몰랐던 것일까. 아무튼 왔다갔다 시간을 보내고 다리운동을 좀 한다. 어제 자전거 타고 천수교~진양호를 왕복했더니 장딴지가 좀 댕긴다.
10:50 어제 산 아들 옷 길이 줄이러 유니끌로에 간다. 11:00에 문을 연단다. 문앞에 서서 길거리 구경을 한다. 보슬비 내리는 차 없는 거리는 조용하다. 평일 오전엔 여유가 넘친다. 명찰 때문에 왔다갔다 하지 않았으면 그 앞에서 더 오래 서 있을 뻔했다. 어떤 게 나은지 모르겠다.
11:20 면도기 수리하러 봉곡동 필립스 대리점에 간다. 면도날은 소모폼인데 갈아 끼면 된단다. 새것 사면 15만 원이 넘는데, 날만 갈아 끼면 5만 5000원이다. 면도한 뒤 물에 담가 한참 돌리기만 하면 된단다. 흔들지도 말고 두드리지도 말고 분해하여 칫솔질도 하지 말라고 한다. 그렇게 간단한 것을...
11:35 옥봉동 본가에 간다. 어머니는 방바닥 장판에 전기를 넣고 등을 붙여 누워 계신다. 이달 용돈 10만 원을 드린다. 벽걸이 선풍기를 해체하여 씻고 닦아 다시 조립한 뒤 보자기를 씌운다. 에어컨도 걸레로 나름대로 깨끗이 닦은 뒤 보자기를 씌운다. 걸상을 놓고도 높아서 어쩌지 못하겠단 말씀을 들은 건 지난주이다. 아는 할매 한 사람은 걸상 놓고 올라갔다가 넘어져 허리를 다쳤다는 이야기를 곁에서 하신다.
거실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모기 한 놈이 손등을 물고 간다. 가렵다. 혹시 싶어 안방에 불을 켜니 천장에 한 마리가 보인다. 파리채로 잡는다. 피가 흥건하다. 복수를 했다. 어머니는 어젯밤에도 귓가에 모기가 엥엥거려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주무셨단다. 그래서 구석구석을 살피니, 요놈의 모기놈들이 곳곳에 잠복 중이다. 예닐곱 마리를 잡았다. 오늘은 좀 편하게 주무시려나.
12:10 배가 고프다. 보통 출근하는 날이면 12:00에 밥을 먹기 때문에 배꼽시계가 정확하게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뭣 좀 먹으러 가자고 했으나 어머니는 9:00 넘어 아침 먹었다고 배가 고프지 않으시다며 요지부동이다. 나도 잇몸 마취가 풀리면서 많이 아프다. 먹는 것에 덧정이 없다. 컵라면 두 개를 끓여 밥 말아 먹는다. 아들 옷 찾으러 가야 할 시간은 14:00 이후이니 좀 쉰다. 어머니는 오이, 사과, 묵 그리고 손자 약으로 쓸 뽈똥 열매 설탕에 절인 것을 담아 주신다. 묵직하다. 본가에 갔다 오는 길은 늘 두 손이 묵직하다.
14:00 시내에서 아내를 만나 아들 옷 찾고, 진통제 하나 사고 집으로 온다. 쌀 사는 일은 차 몰고 약속 나가는 아내 몫이다. 좀 쉬었다 서점에나 가볼까, 싶다. 승진하여 다른 학교로 가는 친구에게 줄 선물로 어떤 책이 좋을까, 생각하며... 이제 좀 쉬자. 나는 이제 개교기념일이다. 하지만 잇몸은 우리하게 계속 아프다.
16:20 자전거 타고 <진주문고> 간다. <조심>과 <밤이 선생이다>를 산다. <조심>은 사무관으로 승진하여 내일 모레 부산 어느 대학으로 발령받아 가는 친구에게 줄 책이고, <밤이 선생이다>는 고종석의 책에서, 또 다른 책에서 극찬한 책이어서 샀다. 나설 때 땅이 말갰는데 좀 가다 보니 비가 조금씩 오기 시작하고, 서점에서 나올 땐 비가 더 많이 와서 서둘러 집으로 왔다. 안 그랬으면 진양호 쪽으로 페달을 밟았을 텐데, 조금 아쉽다.
17:50 장봐온 아내가 상을 차린다. 아들은 고래밥과 우유 한 잔을 먹고 학원으로 간다. 아주 오랜만에 부부가 마주 앉아 저녁을 먹는다. 별 할말이 없다. 텔레비전 보다가 이것 먹어봐라, 저것 맛있다 하다가 저녁이 끝나 버렸다. <밤이 선생이다>를 놓기 힘들다.
12:00 어떤 분의 사망 소식을 듣는다.
2014. 10.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