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의 내용과 관계없이, 주변에 널린 가벼운 존재들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본다.
한 달 열심히 쇠 깎고 등짐 져도 가족끼리 삼겹살 한 번 사 먹으러 나서기 어려운 노동자들의 습자지보다 얇은 월급봉투를 본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다문화 가족이라는 이유로,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멸시받고 천대받고 소외받고 차별받는 이들의 솜털보다 가벼운 인권과 노동권을 본다. “어린 게 뭘 알아!” 한마디에 끽소리 못하고 새벽부터 달밤까지 교실에 학원에 꼼짝없이 앉아 수학ㆍ영어 문제 풀어야 하는 청소년들의 뿌옇게 흐려진 미래에 대한 희망의 가벼움을 본다. 칠십, 팔십 평생 땅만 파먹다가 기역자로 구부러진 허리를 포개고 앉아 깻잎 한 장이라도 더 팔려고 흙 묻은 손 내미는 평거동 민속시장 구석진 자리 할머니의 나무젓가락 같은 손가락의 가늚을 본다.
나라를 팔아먹을 듯 온갖 나쁜 죄를 앞장서서 다 저질러놓고 “나는 다만 깃털일 뿐이오.”라며 발뺌하는 자칭 위정자, 자칭 회장님들의 어깨에 얹혀 있는 오리털보다 가벼운 양심의 흔적을 본다. 태산보다 무거운 책임과 하늘보다 높은 권한을 가졌으면서도 “당신들이 알아서 의논하세요.”라는 말로 모르쇠 능청떠는 자칭 나랏님으로부터 이탈한 영혼의 가엾음을 본다. 스스로 나서서 기를 써가며 아들 군대 빼돌리고 땅 투기하고 위장전입을 해놓고는 몰랐다, 기억 안 난다고 왼고개 트는 자칭 권력자들의 머릿속에 든 얇디얇아 손에 잡히지도 않는 뇌세포의 가벼움을 본다. 모든 국민의 머릿속에 하나의 이념, 하나의 역사, 하나의 사상, 하나의 미래, 하나의 믿음, 하나의 하나를 심어야만 한다고 굳게 믿고서는 교과서, 영화, 소설, 만화, 음악, 미술, 연극은 모두 사전 검열 받으라, 이리 해라, 저리 해라 따따부따 시비 거는 모든 이들의 마이너스 무한대로 달리는 역사인식과 창조성의 무존재를 본다.
어디까지 참을 수 있고, 어디에서부터 참을 수 없을까.
사랑하는데도 정말 사랑하는데도 돈을 이유로 종교를 이유로 지역을 이유로 둘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이들에 대항하여 그 높고 큰 벽을 훌쩍 뛰어넘어버리는 청춘남녀의 가벼운 몸동작 무거운 마음다짐을 본다. 갑옷 입고 투구 쓰고 몽둥이로 위협하고 닭장차로 길을 막고 오가는 길 불심검문을 해대어도 기어이 모여들어 소리 지르고 주먹 휘둘러 살아 있노라 증명해내고 마는 우리 세상 모든 나약한 자 소외된 자들을 한 덩어리로 묶어 주는 희망과 의지의 밧줄의 가볍고 질김을 본다. 인생은 교과서에 있고 미래는 교실에 있다며 으르고 협박하고 꼬드겨도 기어이 내 인생 내 삶은 내가 개척하겠다며 교과서 잠시 덮고 교실 잠시 벗어나 친구들과 마주보며 크게 웃고 어깨동무 하며 푸른 하늘 바라보고 씩씩하게 발걸음 내딛는 청년들의 가벼워서 오히려 더 무거운 미래의 꿈을 본다. 법치주의다, 빨갱이다, 종북이다 무시무시한 말로 겁을 줘도 “조 까고 있네!” 한마디로 눙치며 크게 웃어버리고 마는 우리들의 가벼운 농담의 무거운 존재를 본다.
2014.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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