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탄다”라는 말을 들었다. 주위에서도 듣고, 텔레비전에서도 들었다. 궁금했다. 왜 이런 말을 마음대로 지어내어 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20대 대학생에게 물었더니 “호기심이 있는 이성과 무언가 분위기가 무르익어 간다”는 말이라고 한다. 그걸 왜 ‘썸탄다’고 하는지 물으니 잘 모르겠고 아무튼 그렇단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자세히 나온다.
‘썸타다’는 인터넷 신조어로서 어떤 이성 친구를 사귀는 것은 아니지만 사귀려고 관계를 가져나가는 단계를 일컫는다. 서로 좋아하고, 자주 연락하고, 만나기는 하지만 사귀지는 않는 애매모호한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란다. 일종의 ‘간 보기’라고 할까. 섬싱(something)의 약자라고도 하는데 정확한 사전의 정의는 되어 있지 않다. 흔히 이야기하는 ‘사랑과 우정 사이’, ‘친구 이상 연인 미만’의 관계라고 보면 맞겠다. ‘썸남’, ‘썸녀’라는 말도 있다. 현재 바야흐로 썸타고 있는 청춘 남녀를 가리켜 썸남, 썸녀라고 한다. “나는 지금 누구누구와 썸타는 중이야.” “저 친구의 썸남은 누구누구야.” 이렇게 쓰이는 것이다. 썸타는 시기는 주로 중딩 때 온다고 한다. 세상에!
‘썸타다’라는 말이 유행하다 보니 ‘썸’이라는 제목의 노래도 나왔다. 노래가 먼저 나왔는지 모르겠다. 유행어가 만들어지고 그것을 받아 노래를 만들고 다시 더 크게 유행하고 하는 과정이 죽이 잘 맞다. ‘썸’이라는 제목의 노래는 가수 정기고와 수유가 불렀다고 한다. 라디오에서 몇 번 들었는데 가사는, 내가 보기엔 좀 유치하다. 2004년에 장윤현 영화감독이 영화 ‘썸’을 만들었다. 스릴러 영화라고 하는데, 본 기억은 없다. 이런 영화도 ‘썸타다’라는 말이 유행하는 데 도움을 주었을까.
경기일보를 보니 “동두천시립도서관은 2016년 8월 24일부터 11월 30일까지 12회에 걸쳐 ‘시립도서관 학교와 썸타다-두근두근 인문학’ 수업을 운영했다고 1일 밝혔다.”라는 보도가 있다. 공공기관에서 공식으로 하는 행사에서도 ‘썸타다’라는 말을 쓰는 것이다. 이 인문학 수업에 참여할 학생들의 나이를 생각해서 일부러 붙인 표현이겠지. ‘스테파니 “연예인과 교제 無, 항상 썸만 타다 끝났다”’라는 식으로 제목을 단 언론 보도는 지천에 널렸다.
이 정도 설명을 듣고 보니 대강 알 듯도 하다. 내가 고등학교 때 또는 대학시절 주변의 남녀가 ‘오묘한’ 사이가 되어 갈 때 “저 친구들 뭔가 썸씽이 있군!”이라고 말하곤 했는데, ‘썸’은 그 ‘썸씽’에서 온 말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전혀 낯선 말은 아니다. 하지만 ‘썸씽’이라고 하면 뭔가 나쁘거나 미궁으로 빠지거나 부정적인 느낌도 조금 있는데 ‘썸’은 그런 느낌은 그다지 없다.
나는 이런 신조어에 대해 조금 보수적인 편이다. 더구나 신조어가 외국어를 조악하게, 기괴하게, 희한하게 비틀어서 ‘국적 불명의 낱말로’ 만들어진 경우라면 더욱 내키지 않는다. 어차피 말에도 생명이 있어서 태어나고 성장하고 사멸하는 과정을 겪는다지만, 특정 계층 또는 특정 지역에서만 쓰는 말은 어쩐지 흔쾌히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결국엔 나도 그 말을 쓰게 되고 나중엔 아주 자연스럽게 말하게 될 것이면서도 당장 처음엔 그렇다.
이 글을 읽는 페이스북 친구, 즉 ‘페친’ 가운데 ‘썸타다’라는 말을 이미 알고 있던 사람도 있을 것이고 처음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썸’이 익숙하게 들리면 아마 20~30대일 것이고, ‘썸씽’이 더 부담 없이 들리면 40대 이상일 것이다. ‘페친’이라는 말도 페이스북을 이용하는 사람 사이에서만 쓰는 말이니, ‘썸’과 무엇이 다를까, 싶은 생각도 든다.
2014. 8. 23.
2017. 3. 6. 고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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