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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과 글을 보는 내 눈

아침에 먹는 만찬?

by 이우기, yiwoogi 2014. 7. 21.

말을 쓸데없이 어렵게 하는 사람이 있다. 왜 말을 어렵게 할까. 아니, 어려운 말이란 어떤 것일까. 첫 번째 한자말이다. 두 번째 영어이다. 세 번째 한자말도 아니고 영어도 아닌, 라틴어나 그리스어에서 따온 것이다. 세 번째 예로는 카르페 디엠이라는 게 있다.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 이 날을 붙잡아라.”라는 뜻의 라틴어라고 한다.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라고 하면 촌스럽고, “카르페 디엠이라고 하면 고급스러운가. 나는 모르겠다. 두 번째 예로는 하도 많아서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첫 번째 보기도 아주 많다. 이런 말을 하려는 사람은 어떤 마음일까. 유식한 체 뽐내려는 것일까. 하도 많이 보고 듣고 하여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것일까. 더 쉬운 말이 있는 줄도 모르는 것일까. 아무튼 참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자말을 쓰는 것은, 좀 어려운 자리 또는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일 경우가 많다. “일어나시오.” 할 것을 기립하시오.”라고 하거나 들어오시오.”라고 할 것을 입장하시오.”라고 하는 것을 본다. “앉으시기 바랍니다.”라면 충분할 것을 착석하시기 바랍니다.”라고도 한다. 법정이나 군대 같다. 높은 분이 참석하는 자리에서 벌어지는 행사에서 종종 본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이해할 만하다. 딱딱한 한자말을 쓰는 게 격식을 갖추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아무튼 이 정도는 봐줄 만하다고 본다. 말과 글을 무조건쉽게 쓰라는 것은, 그 반대로 무조건어렵게 쓰라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그래도 정도가 있고 자리와 상황이라는 게 있다.

 

아침에 먹는 밥은 아침또는 아침 식사인데 조금 어렵게 말하면 조찬이다. 아침 조()가 들어간다. 점심으로 먹는 밥은 오찬이다. 낮 오()가 들어간다. 저녁에 먹는 밥은 만찬이다. 늦을 만()이 들어간다. 그냥 집에서 먹는 밥이나 친구들과 어울려 먹는 밥을 이렇게 부르지는 않는다. 손님을 청하여 좀 격식을 갖추어서 먹을 때 이 말들을 쓴다. 조찬, 오찬, 만찬이라는 말을 쓰지 않아도 될 터이지만, 굳이 말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다. 요즘 아침 만찬’, ‘점심 만찬이라는 말을 자주 본다. 아침에 먹든, 점심에 먹든, 저녁에 먹든 밥상 가득 차렸거나 뱃속 가득하도록 먹은 것을 만찬’(滿餐)으로 생각하나 보다. 가득할 만(滿)이 들어가니까. 인터넷에서 아침 만찬또는 점심 만찬이라고 검색해 보면 줄줄이 이어져 나온다. ‘저녁 만찬도 맞지 않다. ‘저녁이 겹쳤다. 개인 블로그는 물론이고 이런 말을 붙인 상품도 있다. ‘식중독균 검출된 즉석식품 유기농 선식 아침만찬판매 중단’, ‘이효리 블로그 개설, 요리실력 대공개! 오늘아침은 렌틸콩 만찬’’, ‘봄날 참새들의 점심 만찬!’ 이런 보기를 찾는 건 어렵지 않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이라는 그림이 있다. 성경의 내용 중 너희 가운데 하나가 나를 배반하리라.”라고 한 예수의 말에 대해 제자들이 깜짝 놀라는 장면을 그림으로 그렸다고 하는데, 이때 만찬晩餐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왜 아침 만찬, 점심 만찬이라는 말을 쓸까. 맛있는 밥을 배불리 먹는 것을 만찬이라고 여기고 있는 게 분명하다. 또는 그냥 만찬이라는 말을 식사의 다른 말이라고 여기고 있을 수도 있겠다. 굳이 조찬, 오찬, 만찬이라는 말을 쓸 필요가 있겠나? 그냥 아침, 점심, 저녁이라고 하면 된다. 이 말들은 그때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그때 먹는 밥을 가리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 모자라다 싶으면 아침 식사, 점심 식사,저녁 식사라고 해도 될 듯하다. 좀 격식 있고 뭔가 있어 보이고 싶을 때 조찬, 오찬, 만찬이라고 말하는데 되도록 우리말을 쓰면 좋겠고, 굳이 쓰려면 바르게 써야 한다.

 

참고로 국어대사전에서는 만찬(晩餐)에 대하여 저녁 식사로 먹기 위하여 차린 음식. 손님을 초대하여 함께 먹는 저녁 식사라고 설명하고 있다. 만찬(滿餐)이란 아예 없다. 하지만 아침 만찬, 점심 만찬, 저녁 만찬 이렇게 계속 쓰다 보면, ‘만찬(滿餐)=식사, 끼니라고 설명하게 되는 날이 올지 모르겠다.

 

2014. 7.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