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출발 전의 설렘과 돌아온 뒤의 아쉬움을 즐기기 위해 가는 것이다.
지난해 여름에 갔던 경주를 다시 갔다. 국립경주박물관과 석굴암 두 곳만 보기로 했다. 낮게 내려앉은 하늘 덕분에 덥지는 않았다. 박물관 안에도, 밖에도 신라 불교가 넘쳤다. 1000년을 이어갈 수 있었던 왕권과 불교의 힘이 전해져 왔다. 차는 석굴암으로 달렸다. 하지만 공사가 한창인 석굴암은 추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컴퓨터도 없고 첨단장비도 없던 석공들은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완벽한 석굴을 완성했지만, 21세기 과학문명은 그것을 원래대로 해놓을 수 없었다. ‘수능 100일 기도 접수처’를 석굴암 본존불 바로 코앞에 펼쳐놓고도 전혀 부끄러운 줄 모르는 후손이니 오죽할까.
양동마을은 2010년 7월 31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경주 손씨와 여강 이씨 두 가문이 500여 년간 대를 이어 현재까지 살고 있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전통마을이다. 서백당(書百堂), 무첨당(無添堂), 관가정(觀稼亭), 향단(鄕壇) 같은 건물에서 묻어나는 고색창연한 전통과 위엄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많은 관광객이 빗속에 우산을 들고 고샅고샅을 누비고 다녔다. 중국말로 설명하는 문화해설사도 있었다.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아 멀리 평야를 바라보며 농사짓는 모습을 살폈다는 ‘관가정’에서 어쩔 수 없이 양반사회의 한 단면을 본다. 우리가 묵은 민박집 ‘갈곡정’ 주인의 수더분한 인상과 부지런한 손놀림, 그리고 깔끔한 음식 솜씨 덕분에 하룻밤이 흐뭇했다.
포항 호미곶에는 비바람이 부는데도 제법 많은 관광객들이 상생의 손에 앉은 갈매기를 찍어대고 있었다. 그것만 찍으면 볼 것 다 보고, 할 일 다 했다는 듯이. 우리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그것을 잠시 보기 위해 먼 길을 쉬지 않고 달려갔다. 그럴만했다. 돌아오는 길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에서 <여명의 눈동자>를 찍었다는 것만 머리에 새겨 둔 채 발길을 돌렸다. 원래 가기로 했던 포항 ‘죽도시장’ 대신 구룡포 어느 횟집에서 대게 두 마리 쪄 먹었다. 비쌌다.
이틀 내내 비는 내렸다.
2014. 8.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