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고팠다. 아침을 7시쯤 먹고 점심을 12시에 먹는 내가 1시 30분까지 끼니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다. 어제 고성시장 주변을 돌아다니다 딱 마주친 돼지국밥집을 별다른 고민 없이 들어간 건, 일단 배가 고팠기 때문이다. 내 의견을 존중해준 아내가 고맙다.
내 기억 속의 돼지국밥은 어릴 적 시골에서 살 때 어쩌다, 정말 어쩌다 한 번 먹는 별미였다. 아랫집이나 옆집에서 돼지를 잡는다. 보통 학교 간 사이에 잡지만 일요일이나 명절 땐 돼지 멱따는 소리를 가까이에서 듣기도 한다. 쫓아가 구경하는 날도 있다. 그런 날엔 나도 모르게 마음이 설레고 침이 고인다. 해거름녘이 되면 돼지 잡은 집에서 고기 조금 하고 냄비 가득 돼지국물을 갖다 준다. 그 국물은 죽은 돼지의 털을 벗기기 위해 1차 삶을 때의 국물인지, 정육을 마친 사람들이 한잔하기 위해 고기를 삶은 국물인지 나는 알 수 없다. 아마 그 둘 다일 수도 있겠지. 그 국물에, 어머니는 무ㆍ파ㆍ시래기 같은 것을 한가득 넣어 오랫동안 끓여주셨다. 살코기도 조금 보였다.
그 국물에 밥을 말아 먹으면, 구수하고 달착지근하고 매콤하고 미끌미끌한 맛에 정신이 황홀해진다. 시큼한 배추김치를 우적우적 씹어 먹으며, 숟가락에서 국물이 국그릇으로 줄줄 흐르는 것을 보면서 먹는 돼지국밥은 보약이었고 즐거움이었다. 시골에서 가난하게 살 때의 아련한 추억이다.
진주시 상평동 밀양돼지국밥, 중안동 밀양돼지국밥, 봉곡동 마천돼지국밥ㆍ산청돼지국밥ㆍ산청흑돼지, 신안동 돼지국밥, 호탄동 우리돼지나라, 내동 가마솥 돼지국밥, 가좌동 돼지랑 순대랑, 칠암동 K돼지국밥은 몇 번씩 간 곳이다. 영화 <변호인>을 보고나서는 더욱 땡긴다. 오죽했으면 아내와 부산 해운대 센텀까지 문화활동 하러 가서도 돼지국밥을 먹고, 어제 고성 나들이 가서도 돼지국밥을 먹었을까.
오랫동안 푹 고은 국물은, 어릴 적 먹던 돼지 목욕물보다 훨씬 진하다. 맛깔나게 얹은 각종 고명을 보면 침샘부터 반응한다. 돼지국밥, 서민음식이라 할 만하고, 건강식이라 할 만하고, 누구와 함께든 어디에서든 한 그릇 기분 좋게 말아먹음직한 음식이다, 라고 생각한다.
2014. 8.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