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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에서 퍼나른 글 모음

후배

by 이우기, yiwoogi 2014. 8. 20.

후배가 있다. 88이다. 젊은 친구들은 88이라고 하면 ‘아, 88년생이로구나’ 생각하겠지만, 88학번이다. 그러니까 우리 나이로 46살 중년총각이다. 서울에서 신문기자 노릇을 하고 있다. 신문에 이름은 안 나오지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편집기자다. 나와 같이 한 지역신문에서 교열기자로 일한 적이 있다. 이만큼 이야기하면 아는 사람은 대번에 알지만, 모르는 사람은 통 모르게 됐다.

 


오늘 점심을 함께했다. 국문학과 학생 후배가 언론에 관심이 많다 하여 소개해 줬는데, 엊저녁에 서울에서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눈 모양이다. 그것까지는 좋은데 오늘 새벽 5시 넘게까지 마시고 해장국까지 착실히 챙겨먹었단다. 그것까지는 괜찮은데, 그길로 고속버스를 타고 진주로 왔다. 둘은 자취방에 널부러졌다가 점심을 먹기 위해 나왔다. 생각보다 깔끔하고 취하지 않은 멀쩡한 모습으로.

1시간 동안 돼지국밥을 말아먹으면서 편집기자 후배의 이야기를 들었다. 유쾌한 시간이었다. 편집국에서 일어나는 자질구레하면서도 엄청 중요한 일화를 들으면서 나는 그나마 즐거웠던 20여년 전 지역신문 교열기자 시절로 돌아가고 있었다. 편집기자의 긍지, 자부심, 성깔, 역할 같은 것을 재미있는 이야기와 엮어 말하는 그에게서 나는 그의 열정을 보았다. 그런데 10년 정도 서울살이를 하다 보니 조금은 지치기도 하는가 싶다. 낙향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하지만 나는 그가 낙향하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후배의 말투에서 서울 냄새를 맡은 때문만은 아니다. 

생면부지(生面不知),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까마득한 후배를 따뜻하게 맞이하여 밤새도록 밥 사주고, 술 사주고, 이야기해 주고, 그것도 모자라 진주까지 같이 내려와 마음써준 그 후배가 정말 고맙다. 같이 교열기자로 있던 때 우리 둘은 참 많이 마셨더랬다. 우리 둘이 만들어간 이야기들은 적어도 일곱 밤 정도는 지새어야 다 풀 수 있을 것 같다. 그때 쌓인 우정이 봄이 와도 녹지 않고 바람이 불어도 흩어지지 않아 단단한 돌이 되었다. 금석지교(金石之交)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인지 모르겠다. 헤어지고 보니 같이 사진 한 장을 안 찍은 게 못내 아쉽다. 추석 전에 다시 온다니 그땐 제대로 풀어헤쳐봐야겠다.

 

2014.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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