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한 바퀴>
조금은 덥고 조금은 피곤한 일요일 오후 톰 크루즈와 카메론 디아즈가 치고 박고 달리고 깨지며 멋진 연기를 펼치는 <나잇앤데이>를 뒤로 하고 차에 올랐다. 진주대교를 건너 내동을 지나 사천으로 달렸다. 삼천포창선 연륙교를 건넜다. 바다는 뿌얬다. 짭짜롬한 냄새가 차안으로 들어왔다. 습했다. 파도소리보다 김광석 노래가 더 감미로운 시간이었다. 많은 차들은 이미 해수욕을 마치고 귀가를 하는지, 삼천포쪽 찻길은 차들이 정말 비엔나 소시지처럼 줄지어 달린다. 꼬불꼬불한 남해섬 바닷가 길을 곡예하듯 운전하여 가다, 미조 좀 못 미친 곳에 차를 대고 잠시 똥폼을 잡는다. 하고 다니는 꼬락서니라니...
그런데 찻길에 웬 망고와 체리를 파는 자동차가 그리 많은지,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예전엔 참외나 수박, 때로는 노란 황금수박을 파는 가게, 포장마차, 트럭 들이 많았는데, 망고와 체리가 삼천포와 남해를 점령해 버린 듯했다.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10분에 한 곳씩 정도는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슬펐다. 한-미, 한-칠레 FTA의 결과는 남해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2011년 11월 한-미 FTA가 여당('한나라'던가 '새누리'던가) 단독 날치기 통과했을 적에, KBS 9시 뉴스에 "관세 인하로 우리 국민들이 체리를 몇십 프로 싸게 사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내용의 뉴스가 나갔다. 이에 대해 <나는꼼수다>를 진행하던 김어준은 "체리 값이 내려서 좋겠다, 씨바!"라고 일갈했다. "지금 농민들 다 죽게 생겼는데, 날치기 통과로 온국민의 분노가 치솟고 있는데, 그래, 체리 값이 내려 값싸게 사먹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을 공영방송인 KBS가 머릿기사로 내보내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정확하게 옮기진 못햇지만, 그 뉴스에 그렇게 대응했더랬다. 그게 생각났다.
미조 가서 차로 동네 한 바퀴 휘 돌아보고, 남해대교로 방향을 잡아 부지런히 달렸다. 여전히 바다는 희뿌옇고 바람은 습하고 기온은 높았다. 여전히 망고와 체리는 도로를 점령하고 있었다. 남해대교를 지나 진교 오는 길 반쯤은 이제 4차로로 넓혀 놓아 시간이 많이 줄었다. 고속도로도 막힘이 없었다. 서진주 방향으로 차를 올리니 앞 유리에 빗방울이 한낱한낱 떨어지고 길은 축축히 젖었다. 망고와 체리를 바라보며 참외도 수박도 옥수수도 감당하지 못하고 있을 농민들 생각하는가, 하늘은... 그런 일요일이다.
수입 체리, 제철 수박 위협 한미 FTA 관세철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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