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 때 야간자율학습 전 저녁을 먹고 쉬고 있었다. 덩치가 조금 큰 3학년 학생 두엇이 다가왔다. “저녁에 좀 나갔다 와야 하니 3학년 몇 반 내 자리에 가서 고개 숙이고 앉아있어!” 나는 “안 됩니다. 그럼 나는 어떡합니까?”라고 대꾸했다. 그는 “안 그러면 죽는다!”라며 험악한 인상을 지어보인 뒤 사라졌다. 나는 3학년 교실에 가지 않았다. 죽을까봐 겁난 게 아니라 나의 무단결석을 변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같은 시간, 그가 나타나 다짜고짜 멱살을 잡아끈다. 나는 옥상까지 질질 끌려갔다. 뺨을 몇 대 맞았다. 욕도 많이 들었다. 나는 2~3분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경찰서로 갈 것인가, 교무실로 갈 것인가 고민했다. 하지만 벌겋게 퉁퉁 부어오른 얼굴을 만지기만 했을 뿐 경찰서도, 교무실도 가지 않았다. 그 뒤에 따라올 더 큰 폭력이 무서웠다. 억울하고 분통터지는 마음을 다스리며, 나는 세상의 무서움과 폭력의 두려움을 알았다. 아무도 나를 위하여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군대 시절, 6월에 입대하여 일찌감치 자대 배치받아 열심히 잘하고 있는데, 5월 군번들이 논산을 퇴소한 뒤 광주 상무대에서 후반기 교육을 받고 무려 5명이나 전입했다. 군 생활이 꼬였음을 직감했다. 그들은 측지병 특기에 걸맞게 덩치가 컸고 동작이 굼떴다. 동기가 5명이니 저희들끼리 잘 뭉쳤다. 나는 그들과 섞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들은 오뉴월 하루 땡볕이 어디냐며 나를 철저하게 ‘쫄따구’ 취급을 했다. 그들이 나를 그들의 비서로 여기는 것에 대해 나는 불만이었다. “야, 김 병장님 오데 가셨냐?” 자기들이 모르는 걸 내가 어찌 알겠나. “야, 설 병장님이 뭐라고 하실 것 같냐?”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나. “야, 피엑스 가서 뭣 좀 사와라.” 내가 심부름꾼인가. 그러다 하루는 고참 병장이 어디 갔는지 묻는 5월 군번에게 “내가 그런 것까지 일일이 어떻게 압니까? 내가 무슨 개인 비서입니까?”라며 정색을 하고 대꾸했다. 나는 저녁 쉬는 시간에 내무반 뒤에 불려나가 뺨을 몇 대 맞았다. 군기가 빠졌다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나는 인사계나 대대장에게 이야기할까, 그들보다 더 고참 병장들에게 이야기할까 생각하다가, ‘아, 나와 가장 오래 군대에 남아 있을 사람이 누구던가’하는 생각에 그냥 참고 말았다. 베갯잇에 눈물 좀 부어줬다. 요즘도 가끔 그때 그 (모두 나보다 어렸던) 친구들 생각난다. 지금 만나면 맥주나 한잔하며 웃겠지.
2014. 8.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