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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에서 퍼나른 글 모음

보신탕

by 이우기, yiwoogi 2014. 7. 21.

1998년 무렵으로 기억한다. 당시 나는 지방신문의 경제부 기자 2년차였다. 교열부에서 5년가량 일한 덕택에 전체 경력은 7년 정도 됐지만 취재ㆍ보도는 햇병아리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을 때다. 

이맘때이다. 부장으로부터 복날과 관련한 분위기를 스케치해 오라는 지시를 받았다. 복날이라…. 초복, 중복, 말복 이런 것 말이다. 나는 초복이라고 하면 어릴 때 시골에서 어머니께서 장닭을 잡아 푹 고아주던 닭국이 먼저 생각났다. 대학을 졸업한 뒤 직장생활을 하면서 한두 번 먹곤 하던 삼계탕도 당연히 생각났다. 

당시 진주에 거의 유일하던 할인점 <탑마트>에 가서 삼계탕 판매량을 조사했다. 당연히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다. 경제부 기자는 몇 % 늘었다, 줄었다, 최고를 경신했다, 이런 말을 쓸 수 있는 자료를 얻으면 성공했다고 여긴다. 나도 그랬다. 

또 당시 시내 우체국 앞에 있던 삼계탕집으로 갔다. 손님이 북적댔다. 주인과 손님 한 명에게 대충 물어보니 예상했던 답이 나왔다. 의기양양하게 보무도 당당하게 신문사로 복귀하여 이러저러하게 주절주절 기사를 썼다. 잠시 후 부장이.....

“야이, 새끼야! 니는 복날에 사람들이 삼계탕만 먹는다고 생각하나! 다시 써!”라면서 원고지를 휙 던졌다. 그때는 기자에게 노트북도 컴퓨터도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다. 허리에 삐삐 하나 차고 폼 잡던 시절이었으니. 아무튼 나는 ‘아니, 왜 그러지?’하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영 감을 못 잡고, 뭐가 잘못됐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보이자, 옆에 있던 선배 한 분이 “얌마, 복날엔 보신탕이지. 장어 먹는 사람도 많다... 니, 용압탕은 아나? 니는 아직 촌놈이다.”라는 게 아닌가. 보신탕? 나는 그게 뭔지 솔직히 알긴 알았지만 복날과 심하게 연결될 줄은 잘 몰랐다. 그걸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먹으리라고 짐작도 하지 못했다. 

어쨌든 그래서 그날 나의 취재는 쓰레기통으로 직행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촌놈 취급을 받았다. 보신탕을 아예 안 먹던 나는, 그러고 나서 2~3년 더 지나고 나서야 보신탕을 먹어보기 시작했다. 지금은? 스스로 먹으러 갈 생각은 잘 안한다. 하지만 누군가 가자고 하면 두말없이 따라 간다. 

초복 아침, 그때 일이 문득 생각난다. 오늘은 뭘 먹지?

 

2014.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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