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행사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게 하나 있다. 행사를 진행하는 사회자들이 하는 말 가운데 자꾸 귀에 거슬리는 말이 있다. 결혼식이나 무슨 시상식, 이취임식, 정기총회, 입학식, 졸업식, 개교기념식, 칠순잔치 등등 가는 곳마다 사회자가 있고, 그 사회자는 미리 써놓은 대본(시나리오)을 보고 읽는데 하나같이 내 귀에는 어색하다. 어떤 행사에서는 내가 먼저 나서서 대본을 고쳐준 적도 있는데 그다음해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도 보았다. 그들은 내가 고쳐준 것을 더 어색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말에 대한 생각은 각각 다르다.
“국민의례가 있겠습니다.”, “주례선생님의 말씀이 있겠습니다.”,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있겠습니다.”, “회장님의 축사가 있겠습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 나는 ‘행사에 참석한 사람은 가만히 있는데 갑자기 의례가 있고, 말씀이 있고, 축사가 있는 건가?’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사회자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지는 않는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다음은 국민의례를 하겠습니다.”, “주례선생님이 주례사를 하겠습니다.”, “교장선생님께서 말씀하시겠습니다.”, “회장님께서 축사를 하겠습니다.” 이렇게 하는 게 훨씬 자연스럽다. 이를 두고 영어식 표현이다, 일본식 표현이다고들 하지만 굳이 외국 문장을 갖고 오지 않아도 딱 보면, 딱 들으면 어색하지 않은가.
시상식에서는, 사회가 상 받을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 상 받을 사람은 무대로 나가게 된다. 이때 사회는 “호명하는 사람은 앞으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한다. ‘호명’(呼名)은 ‘이름을 부르다’이다. 이 행사에서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사회자이고, 상 받을 사람은 이름이 ‘불린’ 사람이다. 그러니까 “호명된 사람은”이라고 하든지 “이름이 불린 사람은”이라고 하는 게 맞다. 그런데도 열에 아홉은 “호명하는 사람”이라고들 말한다. 한자말을 쓰니까 머릿속에 개념이 정확하게 잡히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닐까. 쉽고 간단한 우리말로 “이름이 불린 사람”이라고 하면 된다.
어떤 행사에 가면 손님을 소개할 때 ‘내빈’과 ‘외빈’이라는 말을 쓴다. 사전을 보면, ‘내빈’(來賓)은 ‘어떤 모임에 공식적으로 초대를 받아 참석한 사람’이다. ‘내빈’(內賓)은 ‘여자 손님’(안손님이라고도 한다)을 가리킨다. 아내를 ‘내자’(內子)라고 했던 것과 같은 원리다. ‘외빈’(外賓)은 ‘외부나 외국에서 찾아오는 귀한 손님’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내빈(內賓)을 내부의 손님, 외빈(外賓)을 외부의 손님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가령 대학에서 행사를 하면, 총장 등 대학 관계자는 내빈이고 그 밖의 대학 밖에서 온 손님은 외빈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내외 귀빈 여러분께 감사드린다.”라고 쓴다. 나는 이게 영 어색하다. 그냥 내빈(來賓)이라고 하면 되는 것 아닌가. 더구나 내빈(內賓)의 원래 뜻은 여자 손님 아닌가. 이 또한 “오늘 행사에 참석해 주신 귀한 손님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라고 쉽게 풀어쓰면 더 좋겠다.
대학에서 학위수여식을 할 때 학위를 받는 사람, 즉 학위‘취득’자를 학위‘수여’자라고 부르는 것도 그렇다. 학위수여자는 주는 사람(즉 총장, 학장 등)인데 반대로 말하는 것이니 영 귀에 거슬린다. ‘수여’(授與)는 ‘증서나 상, 훈장 따위를 주는 것’이다. 그런데 줄 수(授) 대신 받을 수(受)라고 마음대로 생각하고 수여자(受與者)라고 하는 것이다. 수(授)도 여(與)도 모두 준다는 뜻이다. 수여(受與)라는 말은 받고 준다는 뜻이 된다. 모순이다. “학위수여자는 앞으로 나와 주십시오.”라고 하지 말고 “학위취득자는 앞으로 나와 주십시오.” 또는 “학위를 받을 사람은 앞으로 나와 주십시오.”라고 하는 게 맞다.
행사장에서 사회자의 대본을 들으면, ‘나한테 미리 이야기해 주었으면 죄다 고쳐줄 텐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지만, 그런 생각마저 들 정도로 어색하다. 탱자나무 가시가 목에 걸린 것 같다. 눈알에 모래먼지가 낀 것 같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여긴다. 나 혼자 답답해 하고 갑갑해 한다. 말은 항구불변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명이 있어 바뀌는 것이라지만, 잘 모르는 사람이 틀리게 계속 쓰던 게 결국은 맞게 되는 현상은 문제가 아닐까 싶다.
2014. 2. 21.
'우리말과 글을 보는 내 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침에 먹는 만찬? (0) | 2014.07.21 |
---|---|
‘수입산’이라는 말은 ‘외국산’으로 (0) | 2014.07.21 |
한국인이 알아야 할 한글맞춤법과 표준어 규정 50 (0) | 2014.04.07 |
[이대로]초등 1학년부터 영어 교육 막아야 합니다 (0) | 2006.01.31 |
말과 글은 다른 것이다 (0) | 2005.1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