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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석류나무 잎사귀는 몇 장이었을까

중학생이 된 자랑스러운 다을에게

by 이우기, yiwoogi 2013. 3. 7.

오늘 바람은 조금 차가웠어도 날씨는 정말 좋았다.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하고 맑은 봄 날씨였지. 곳곳에서 개나리, 진달래, 매화, 목련 같은 봄꽃들이 피어나기 딱 좋은 날씨가 아니었나 싶다. 이런 날씨를 보면, 아버지는 앞으로 다을이 인생에도 오늘처럼 좋은 봄 날씨만 계속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한단다.

입학식은 어땠니? 촉석초등학교를 함께 다닌 친구들이 118명이나 대아중학교로 갔으니 새롭거나 설레는 기분은 아무래도 좀 덜했겠다. 입학식에서는 교장선생님, 담임선생님을 비롯하여 많은 분들이 다을이와 친구들의 입학을 축하하는 말씀과 당부하는 말씀을 해주셨겠지. 뭐라고 하셨는지 모두 기억하지는 못하겠지만, 그중 몇 가지만이라도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지금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생각해보면 그보다 더 훌륭한 말씀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거든.

1학년 4반 교실에도 가보고 담임선생님도 만나보고 또 새로운 친구도 많이 만났겠지.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들뜨고 괜히 설레고 또 때로는 두렵기도 한 게 신입생 때의 기분일 것이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태에서는 누구든 그런 감정이 생길 수밖에 없겠지. 14살 중학교 1학년 나이로서는 감당하기 쉽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번에도 말했듯이 나 혼자 외딴섬에 놓여 있으면서 전혀 가늠할 수 없는 미래를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구체적이고 덜 무서운 것이니 그리 염려할 것 없다. 전국의 모든 중학생들이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아버지나 어머니는 선생님은 어떤 분일지, 짝꿍은 어떤 친구일지 그런 게 더 궁금하네.

중학생이 되면 아무래도 공부할 것이 많아지고 어려워진다. 과목도 많고 책도 두껍고 참고서나 문제집도 초등학교에 비할 수 없이 많아진다. 그건 그만큼 다을이가 철이 들었고 나이도 들어간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당연한 일이다. 또 그만큼 일찍 일어나야 하고 스스로 공부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지. 다을이는 초등학교 때도 다 잘해 왔으니까 중학교 때도 당연히 잘할 것으로 믿는다.

중학생은 사춘기라고도 할 수 있겠지. 이마에 여드름이 나고 변성기도 오고, 또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남성다움이 겉으로 마구 드러나는 그런 시기이다. 뭐라고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시를 쓰고 싶다거나 노래를 부르고 싶다거나 괜스레 우울해지기도 하겠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러한 감정도 대부분 중학생들이 겪는 것이다. 나 한사람에게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아무튼 무엇이든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 부모든 친구든 선생님이든 선배이든 누구에게든 털어놓고 이야기하면 생각보다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혼자 고민하다 보면 문제 해결은커녕 점점 이상한 쪽으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게 인생이고, 그런 인생에 대해 아직 잘 모르는 때는 실수도 할 수 있겠지. 실수는 안 할 수는 없지만 되도록이면 줄이는 게 현명한 삶이다.

다을아, 중학생 때는 나는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어야겠다.’라는 것을 생각하는 때이다. 무엇이 되겠다는 것, 즉 과학자가 되겠다, 군인이 되겠다, 공무원이 되겠다라는 그 무엇보다는 어떤 과학자가 되겠다, 어떤 군인이 되겠다, 어떤 공무원이 되겠다는, ‘어떤을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 무엇이 결정되지 아니한 경우에는 좀 추상적으로라도 어떤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가령,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 되겠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사람이 되겠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되겠다, 돈 잘 버는 사람보다 돈을 훌륭하게 쓰는 사람이 되겠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겠다,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겠다, 악기를 잘 다루는 사람이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는 때가 중학생이다.

나중에 고등학교 가고 대학 졸업한 뒤에 직업을 선택하게 되겠지. 또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다소 엉뚱한 일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이 되든 어떤 사람이 되겠다.’라는, 기준만 잘 지킨다면 인생이 그다지 어렵지 않을 수 있다. 세상은 그렇다.

친구를 다시 사귀게 되겠구나. 초등학교 동기들이 대아중학교에 많이 입학했으니 자연스럽게 그들과 친해지겠지. 그런데 중학교 때부터는 친구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철없던 어린 시절의 친구가 아니라, 앞서 말한 대로 나의 고민을 진지하게 털어놓고 이야기하는 상대, 어쩌면 평생 함께할 벗, 아무런 흉허물 없이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는 부모가 다른 형제, 이게 지금 사귀는 친구란다. ‘저 친구보다 공부를 잘해야지.’라는 경쟁보다는 저 친구가 모르는 것을 가르쳐 주자.’ 또는 내가 모르는 것을 부담 없이 물어보자.’ 이런 마음이 드는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 사춘기 때 친구를 잘못 사귀면 나중에 크게 후회할 일도 생길 수 있다. 짓궂은 장난을 하더라도 마음이 따뜻하고 깨끗한 친구가 있고, 겉으로 호의를 베풀더라도 나중에 나를 궁지에 빠뜨릴 친구도 있을 수 있다. 그런 친구가 다을이 주변에는 없었으면 바라지만 그건 어른들의 뜻대로 잘 안 되는 문제로구나. 친구를 사귈 때 나에게 이로울 것인가 해로울 것인가를 따지기보다 진심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인가를 먼저 생각했으면 좋겠다.

오늘 또 아버지 이야기가 길어지네. 술 한 잔 하고 들어가서 앉혀놓고 같은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고, 그러고서도 다음날 되면 기억이 안 난다고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중학생 된 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무궁무진 많구나. 미리미리 준비하고 계획해서 정리했더라면 이렇게 중언부언하지 않을 텐데, 그럴 겨를이 없었네. 이 편지도 입학식 날 좀 쓰다가 바빠서 미루었다가 다시 이어서 쓰고 있다. 그리고 언제 너에게 전해줄지 잘 모르겠구나.

다을이가 학교에서 수업시간, 쉬는 시간, 점심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궁금하긴 하지만 그냥 잘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집에서의 행동은 초등학생 때보다 조금 더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머니 일손을 도와 설거지하고 빨래 개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다. 아버지, 어머니가 늦을 때 스스로 달걀 부쳐 밥 비벼 먹고, 아쉬울 때는 라면이라도 혼자 끓여 먹으며, 압력밥솥에 밥을 직접 해 먹는 모습을 보면 대견하다. 일본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저녁 10시에 걸려오는 전화로 배우는 영어도 그다지 지루해하지 않는 것 같아 다행이라 생각한다. 물론 미안한 마음도 있지. 그러나 텔레비전, 컴퓨터, 스마트폰은 조금씩만 더 줄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다른 친구들도 다 텔레비전 보고 컴퓨터 게임을 하고 심지어 PC방에도 가고 스마트폰 없는 친구가 없는 세상이고 보니 완전히 단절할 수는 없겠지만 조금씩 줄여나가고 그 대신 소설이나 시, 위인전, 역사책 같은 것을 좀 읽으면 어떨까 싶다. 아마 중학교에도 권장도서 목록이 있겠지. 아버지도 찾아보겠지만 혹시 알려주면 책값 아끼지 않고 사줄 터이니 아버지나 어머니처럼 독서를 좀 많이 하면 어떨까 싶다.

다을아, 지난번에 친구들과 목욕하고 할머니 댁까지 버스 타고 스스로 찾아온 미션을 훌륭히 성공한 다을이에게 많은 칭찬을 해주고 싶다. 어쩌면 올 여름방학 때엔 안산 외할머니 댁에도 혼자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해볼래? 중학생 때도 히포 해외 나들이나 캠핑 같은 걸 많이 가겠지. 이런 것은 단순히 여가를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립심을 키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세상은 가족, 친척, 친구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곳이면서도 나 혼자 살아가는 곳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 미션을 수행하는 능력을 키워가다 보면 세상을 더 여유롭고 가치 있게 살 수 있게 되기도 한다. 해외 나들이, 학교 소풍이나 캠핑, 여행 등을 통하여 좀더 성숙하고 매력 있는 다을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이제 그만할까? 그래, 좀 길어졌구나.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이 된다는 것은, 날짜로 치면 불과 열흘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것이지만, 그 의미는 이렇게 크고 깊구나. 그래서 아버지의 바람을 두서없이 늘어놓았으니 천천히 읽어보고 생각 좀 많이 해보길 바란다.

2013. 3.

사랑하는 우리 아들 다을의 중학교 입학을 축하하며,

아버지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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