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산에서 진주까지 승용차로 달리면 3시간 30분이 걸린다. 휴게소에 한번 들르면 10분 정도 늘어난다. 차가 좀 막히면 10-20분 정도 늘어나기도 한다. 그래서 4시간 정도면 무난하게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처가가 있는 안산에는 한 해에 두세 번, 명절 뒤 주말이나 장인ㆍ장모 생신, 또는 조카들 돌잔치 같은 날을 기념해 가곤 한다. 가면, 어쨌든 많이 먹게 된다. 음식도 술도 정도.
처제의 둘째아이 돌잔치를 하던 때, 나는 동서와 처남들과 한잔하기로 작정을 하고 갔다. 진주보다는 아무래도 윗등급일 수밖에 없는 뷔페에서 맛난 음식을 제법 먹었다. 당연히 술도 마시게 되었다. 기름진 안주에 달콤쌉싸름한 소주를 들이켜면서 나는 모처럼의 여유를 만끽했다. 뷔페에서 마신 술은, 그러나 조금 모자랐다. 처가로 옮겨 술상을 마주하게 된 건 기대했던 바이기도 했고, 어쩔 수 없는 우리들의 절차이기도 했다.
문제는 다음날 생겼다. 아침밥 잘 먹고 인사 잘 하고 길을 나선 나는 고속도로 진입 직전 주유소 앞에 차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 양은 주전자에 물이 끓는 듯, 비바람이 사선으로 몰아쳐 유리창을 때리는 듯, 낡아빠진 경운기가 엔진오일마저 떨어져 쿨쿨거리는 듯, 아랫배에서 신호가 오기 시작한 것이다. 대장에 포진하고 있다가 이날 아침까지 배설된 것들은, 그러니까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기 전의 것이고, 지금 나에게 과잉신호를 보내는 것들은 소고기ㆍ돼지고기ㆍ오리고기와 채소와 과일과 알코올이, 알코올도 소주와 맥주와 또 무슨 술들이 부정합 비율로 배합된 것들이렷다. 기름도 넣지 않으면서 휴게소 화장실 쓰는 건 조금 낯간지러운 일이지만, 어쩌겠나.
더 큰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오다 서평택 분깃점에서 안성으로, 다시 대전ㆍ무주ㆍ진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에서 나는 유체이탈, 멘탈붕괴를 경험해야만 했다. 고속도로 진입 후 첫 휴게소인 화성 휴게소에 들러 시간을 낭비한 나는 도둑고양이 담 넘어가듯, 늦은 봄 깊은 밤 보슬비 내리듯, 잉크젯 프린터 카트리지 오가듯 하는 속쓰림과 배설 신호를 억누르고 달래며 달리고 또 달렸다. 안성ㆍ천안삼거리 들러 화장실 검사하고, 죽암ㆍ인삼랜드 들러 허리 긴장 풀고, 덕유산ㆍ함양ㆍ산청 들러 핼쓱해진 내 얼굴 확인하고. 그렇게 5시간 걸려 진주까지 왔다. 진주까지 와진 게 다행이란 표현이 더 어울릴 판이다.
1박 2일의 긴 여정을 돌이켜 생각하면서 도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생각해 봤다. 잘 먹고, 잘 마시고, 잘 자고 오는데 이게 뭐람 이런 생각도 들었다. 차 안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며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는 나를 보며 혀깨나 찼을 아내와 아들에게 부끄럽기도 했다. 정말 술을 끊을 때가 되었구나 싶었다. 소화제를 줄까, 지사제를 줄까, 물을 줄까 호들갑떠는 아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처가에서 가져온 오이소박이, 오징어무침, 수제 왕 만두, 쑥떡, 조기구이에다 딱 내 스타일로 끓인 김치찌개를 잘 차린 밥상을 본 나는, “좋은데이 없나?”라고 무심코 내뱉고 말았다. 그때의 우리 가족들의 표정이란……. 진주말로 ‘재금없다’란 이런 것인가 보다. (2012. 6. 1.)
'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마중 짧은 글 서너 편 (0) | 2013.03.06 |
---|---|
사랑하는 우리 아들 다을에게! (0) | 2013.02.20 |
그냥 가면 어쩝니까? (0) | 2012.06.01 |
가재 (0) | 2012.06.01 |
짜장면 (0) | 2012.03.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