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짜장면’에 대해 이야기할 적엔 누구든 “원래는 자장면이 맞았는데 얼마 전에 맞춤법이 바뀌어 짜장면이 맞다.”는 말 한마디는 한다. 맞춤법 공부다. “어느 동네 어느 집 짜장면이 맛있다.”는 말도 나온다. 지리정보다. 우스갯소리를 좀 하는 친구는 “예전에 ‘짜장면 시키신 분’이라고 하는 광고가 있었는데 이게 무슨 광고였는 줄 아느냐?”고 묻는다. 추억에 웃음이 포개졌다. “한예슬이 즐겨가던 남해 짜장면 집에 한 번 가자.”는 친구도 나오게 마련이다.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라는 가사가 나오는 GOD의 노래 제목은 무엇이냐고도 묻는데, 짜장면과 어머니 사이에 진짜 사연이 있는 친구는 웃음을 감춘다. 짜장면을 소재로 푸짐하고 영양가 만점인 이야기밥상이 무궁무진 끝없이 차려지고, 알록달록 화려한 이야기꽃도 피어난다. 행복한 풍경화다.
시골 시장에서 기름 장사를 하던 할머니가 짜장면을 한 번 사주신 적이 있다. 나는 할머니를 따라 ‘마이크로버스’를 타고 50리길 진주나들이를 한 적이 있다. 열한두 살쯤이었을까. 개천예술제 가장행렬을 하는 날이었다. 할머니는 시장 어귀 이발소에서 내 머리를 깎였다. 그러고도 버스는 두어 시간이나 더 기다려야 했다. 할머니는 “진주 가면 밥 먹을 데도 없다.”며 중국집으로 나를 데려 갔다. 된장과 간장을 뒤섞어 놓은 듯한 춘장에, 손으로 대충 뽑아낸 듯한 면발. 내 입은 오랫동안 길들여진 시래깃국을 단숨에 배반한 것은 물론이려니와 단무지마저 새콤 달콤 어찌 그리 맛있던지. 촌놈 입이 팔자에 없는 호사를 누렸다. 할머니는 돌아가셨지만 그때 짜장면 맛과 할머니의 손자 사랑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짜장면 하나에 담긴 사연도 이처럼 각양각색이고 잘 벗겨지지 않는 칠처럼 오래간다. 처음 먹었을 때의 맛을 추억하는 사람도 있고, 뛰어난 맛집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고, 짜장면을 같이 먹던 그 어떤 사람을 못 잊어 하는 사람도 있겠지. 짜장면집 사장도 간혹 화제의 주인공이 된다. 어찌 짜장면뿐이랴. 국민 먹거리 라면도 이 정도의 이야깃거리는 안고 있다. 막걸리도 깍두기, 파전과 함께 기쁘기도 하고 아프기도 한 추억을 발효하고 있다. 낡아서 버리는 청소기 같은 것에도 사연은 묻어 있는 법이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잊을 수 없는 가슴 아픈 사연을 어떤 사물에 투영해 놓고 잊은 듯이 지내다가, 어느 날 문득 그 사물을 대할 때 다시 생각해내고는 그 아픔을 차마 못 잊어 가슴 시려 한다. 그래서 사람이다. 경남일보 2012.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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