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가재

by 이우기, yiwoogi 2012. 6. 1.

동생 가족과 근처 야산에 갈 일이 있었다. 나무 심고 쑥 캐는 봄나들이였다. 점심 땐 김밥과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는데 내가 끓인 라면은 짰다. 물 조절에 실패한 것이다. 목이 말라 개울을 찾았다. 거긴 우리 선조들의 묘소가 있는 곳이어서 사시사철 물이 나오는 곳을 알고 있었다.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과 조카 녀석들도 뭐가 그리 즐거운지 졸졸 따라다녔다. 야트막한 산 밑에 쫄쫄 흐르는 맑고 시원한 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 아, 세숫대야만큼 물이 고인 그곳에서 가재 한 마리가 황급히 꼬리를 치며 달아나는 게 보였다. 1-2초나 되었을까 싶은 짧은 순간, 나는 어릴 적 고향마을 앞 도랑으로 돌아가 있었다. 곁에 있던 아들과 조카가 “어디, 어디요?”하면서 달려드는 것도 잊은 채.

 

학교를 파하면 가방을 던져 놓고 꼴 베러 가는 게 일상사였던 우리에게 즐거움이란 베 놓은 꼴 따먹기 놀이나 딱지치기, 구슬치기만한 게 잘 없었다. 어쩌다 한 번씩 개울 돌 밑을 뒤져 가재ㆍ방개ㆍ미꾸라지ㆍ송사리 따위를 잡는 일에 시간을 뺏기곤 했다. 가재는 물이 많거나 조금만 더러워도 살지 않았다. 개울도 아닌 산속 실개천 바위틈에 숨어 살면서, 무얼 먹고 사는지 피둥피둥 살진 놈도 이따금 눈에 띄곤 했다. 가재를 잡기로 작정한 날은 실개천 맨 밑에서부터 위로위로 더듬어 올라갔다. 있는 돌은 다 뒤집어엎고, 바위틈이나 나무뿌리 밑에도 일일이 손을 집어넣어 정밀조사를 하곤 했다. 그러면 그 골짝에 터잡아 일생을 살아오던 가재들은 거의 잡혔다. 고둥도 적잖이 주웠다. 그 놈을 구워먹으면 고소한 맛이 꿈결까지 따라오곤 했다. 콩잎이 푸르러가는 오뉴월에 잡는 엉머구리 맛과 함께 지금도 기억난다. 우리는 가재를 잡는 족족 집으로 가져와서 구워먹지는 않았다. 열댓 마리 잡으면 그중 작은 놈 너댓 마리는 골라 반드시 살려주었다. “너희들끼리 결혼해서 알을 많이 낳아야 한다”는, 가재가 알아들을 수 없는 부탁 아닌 부탁을 하면서. 우리들은 마주보며 까닭을 알 수 없는 웃음을 히히덕거리곤 했다.

 

이날 가재는 결국 동생이 잡았다.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잠시 개울을 뒤지더니, 내가 잠깐 보고 놓친 놈보다 더 큰 놈을 잡은 것이다. 아이들은 온 세상을 다 얻은 듯 환호했다. 가재를 잡느라 주변을 뒤질 때 잡은 도마뱀도 아이들을 흥분시키는 데 일조했다. 학습도감에서나 봤음직한 가재, 도마뱀을 하루 만에 구경한 녀석들에게 자연공부가 따로 있을 수 없었다. 일기장에 쓸 이야기로 넉넉했다. 아이들에게 살아있는 자연을 더 자주, 더 깊이 보여줬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잘 안 된다. 애들이 커서 가재를 ‘새끼랍스터’라고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겠다. (2012.4.16.)

 

 

'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재금없다  (0) 2012.06.04
그냥 가면 어쩝니까?  (0) 2012.06.01
짜장면  (0) 2012.03.22
[한겨레신문 칼럼] 영웅신화, 그건 아니다   (0) 2010.04.28
T.G.I. Friday's  (0) 2009.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