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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경남일보 노조 간부와의 만남 그 뒷얘기

by 이우기, yiwoogi 2009. 2. 12.

전국언론노동조합 경남일보지부 파업 철회, 업무 복귀 등에 대한 말씀

-경남일보 노조 간부와의 만남 그 뒷얘기


안녕하시렵니까. 2월도 벌써 중순입니다. 어디선가 매화 향기가 날아오는 듯하고 버들개지는 움을 틔우려 하고 있습니다. 봄이 왔나 봅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왔는데 봄이 아닌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몇 말씀 올립니다요.


먼저 경남일보 노동조합 파업과 관련하여 회사를 떠났으면서도, 또 제법 긴 세월 동안 ‘내가 경남일보 가족이었다’는 사실을 잊고 살았으면서도 선뜻 성명 발표에 참여해 주시고, 성금까지 아낌없이 내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감사하다, 고맙다”는 말은 사실 어제(11일) 노동조합 강진성 위원장과 그 일당으로부터 수백 번 들은 말입니다. 바로 여러분들이 들어야 하는 말씀입니다. 물론, 우리도 후배들이 고맙지만요.


지난주 금요일 몇몇이 모여 뭔가 도움이 될 만한 일을 찾아보자고 의논을 모으고 토, 일요일 성명서 초안을 만들고, 월요일 낮 계좌를 개설하고, 월요일 오후 성명서를 전달하고, 화요일까지 모은 돈을 수요일 저녁에 전달하는 게 대략적인 작전이었습니다만, 노동조합이 우리의 ‘기대’(?)보다 빨리 협상을 타결하는 바람에 엊저녁 모임은 간담회랄까, 격려의 자리라 할까, 아무튼 그런 자리였습니다.


저녁 7시 30분에 신안동 목가에 한형련 현 경남매일 경영국장, 이우기 경상대 홍보팀장, 박명환 경남도청 도보편집위원, 명성훈 삼전건설 과장과 강진성 노조지부장, 강민중 조직부장, 정만석··김성수 평조합원 이렇게 여덟이 모였습니다. 더 많이 모일 수 있었지만 술값 많이 들까봐 4대 4로 모이자고 제가 압박을 좀 넣었습니다.


우리가 모은 성금과 성명서, 그리고 성명과 성금 모금에 동참한 우리들의 이름과 연락처가 적힌 종이를 전달했습니다. 갑작스럽게 연락드렸는데도 흔쾌히 “나 아직 죽지 않고 살았소”라며 성명에 동참한 분은 22명이고 돈을 부쳐주신 분은 17명이었고, 모인 돈은 125만 원이었습니다. 아직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면 신문사 앞 천막 농성장으로 가서 전달했을 뻔했고, 그 돈은 아마 투쟁속보 제2호 인쇄비는 될 만한 금액이었죠.


어제 노조는 진주시청 기자실에서 ‘끝이 아닙니다. 이제 시작입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읽었답니다. ‘파업 철회 및 업무에 복귀하면서’라는 부제가 붙어 있네요. 여러 말씀 중에 “경남일보는 앞으로 지역 정론지로서 공정한 보도를 하는 데 앞장설 것”이라는 말과 “파업은 끝났지만 투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잘못된 사실을 바로 잡지 못하고 침묵해야 했던 우리에게는 그 동안의 업보를 벗어던질 수 있는 내부의 치열한 투쟁이 필요하다. 기사를 쓸 때나 광고주를 만날 때, 편집을 할 때, 윤전기를 돌릴 때도 지금의 마음을 되새기겠다”는 말은 가슴에 와 닿습니다.


지부장이 갖고 온 ‘경남일보 정상화를 위한 노사 합의서’에는 ▲편집권의 독립을 보장한다 ▲전 국장단 보직 사퇴한다 ▲조직기구를 3국 체제로 운영한다 ▲대표이사가 업무 파악 후 임·단협을 재개한다(단, 올 상반기를 넘지 않는다) ▲파업과 관련 조합원의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는다 ▲파업과 관련해 신분상 불이익을 받지 않게 한다 ▲파업과 관련해 조합원을 정리해고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상기 사항에 대해 노사 양측은 이행을 약속하고, 이를 불 이행시 노조는 재파업에 돌입한다. 또한 사측은 노조측이 상기 사항을 불이행시에 그 책임을 묻는다. 라고 돼 있네요. 신임 안병호 대표이사와 강진성 지부장의 사인도 있습니다. 그런데 노조가 뭘 불이행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네요. 다 회사가 이행해야 할 사안인 것 같은데 말이죠.


국장단 보직해임과 관련해 어제 오후에 바로 사령이 났다고 하더군요. 편집국장은 박용진 부장을 지명하고 다음 주 월요일 임명동의 여부를 묻기 위한 투표를 할 예정이랍니다. 경영과 관련한 두 명의 국장은 신임 사장이 업무 파악하는 데 협조가 필요하기 때문에 우선에는 그 직을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부터 경남일보가 다시 발행됐습니다. 1면에 그동안 신문을 발행하지 못한 데 대한 사과의 말과, 황인태 사장 있을 때 진주시를 대상으로 보도한 감정적인 몇몇 보도에 대해서도 다시 사과를 했습니다. 진주시 공무원과 독자들에게 사과한 셈이죠. 이제 이성을 좀 회복하는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저희 경남일보는 위 기사들 중 일부는 사실 확인이 다소 미흡하여 기사의 객관적 공정성이 의심받거나 진주시장을 비롯한 진주시 공무원들의 입장에서는 물론 제3자 입장에서의 독자들이 보기에도 감정에 치우쳤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만한 보도였음을 인정하고, 이로 인하여 진주시장을 비롯한 진주시 공무원과 저희 신문을 사랑하시는 독자 여러분들께 심려를 끼쳐 드린 데 대하여 이 지면을 빌려 유감의 뜻을 전합니다”라고 해 놨네요.


2면에는 사장과 지부장이 악수하는 사진까지 실어놨습니다. 앞으로 노사 간의 행보가 주목됩니다.


이런 합의안에 대해 다들 생각이 다를 것입니다. 노조원 중에서도 7명이 반대표를 던졌으니까요. 그러나 우리는 이제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치고 박든, 어깨동무를 하든 일단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는 여유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돌아가는 사정을 일일이 사사건건 조목조목 알 수도 없거니와 알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언제든 파업할 태세를 갖추고 있는 노동조합이 눈알을 부라리고 있으면 경영진도 마음대로 어쩌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다만, 후배들이(또는 선배들이) 사생결단을 하고 싸우려 나섰을 때 한때 몸담았던 회사라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정신과 자금을 동원하여 주신 여러분들의 뜻은 영원히 남아 있을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파업이 장기화하면 2차, 3차 성명을 발표하고 또 기금을 모으고 했을 뻔했는데, 좀 빨리 마쳐주어서 고맙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만 그런지 모르지만요.^^


이야기를 듣자하니, 강진성 지부장은 설날 아침에 아내가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원에 있는데 원래 1주일간 있으려던 계획이 파업에 밀려 2주 넘게 있게 돼 병원비가 장난이 아니라고 합니다. 남편의 무사함과 남편 싸움의 승리와 남편 회사의 안녕을 빌면서 산후조리원에서, 아직 이름도 짓지 못했다는 아이의 고사리 손을 붙잡고 있었을 그의 아내의 흉중을 생각하자니 참, , 그렇군요. 지부장은 이름을 ‘강투쟁’으로 지어야겠다는 너스레를 떱니다. 또 강민중 조직부장은 엊그제 부친 환갑 잔치였는데도 파업 중인데다 조직 활동하느라 가보지 못했다는 말도 하더군요. 그런데 이 친구들,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싱글생글 웃기에, ‘정말 참 많이 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자 경남도민일보에 실린 지부장 인터뷰 기사 중 몇 가지만 들려드리겠습니다. “첫 파업으로 얻은 성과치고는 괜찮은 것 같다. 점수로 환산하면 70점 정도”, “우리 지부의 요구가 완전히 관철된 것은 아니지만, 편집권 독립 보장과 책임 있는 간부 인적쇄신안이 받아들여진 것만 해도 상당한 성과다. 아무튼 회사 변화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조직이 더욱 탄탄해졌다”, 안병호 대표이사가 5공인사라는데 대해 “처음에는 조합 내부에서도 반대 의견이 많았다. 안 사장이 육사 20기 출신, ‘하나회’ 마지막 기수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시대적 흐름에 의한 것뿐이라고 본다. 여러 채널을 통해 알아보니, 안 회장이 청렴하고 강직하며, 할 말은 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현재 조합 내에서 믿어보자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대강 여기까지입니다. 제가 연락을 하고 돈을 내라고 독촉을 했으니 그 책임으로 오늘 마지막으로 종합 보고를 올리는 것입니다. 이번에 함께하지 못한 분 중 어떤 분은 이름만 빼달라고 하셨고, 또 어떤 분은 진작에 다녀오신 분도 있습니다. 또 하도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못해 연락처를 찾을 수 없었던 분도 계십니다. 아무튼 어찌 보면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일, 어려운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면 쉽사리 내놓기 어려운 돈을 선뜻 내어주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혹 다음에 또 파업하면 그때는? 저는 안 할랍니다. 아무것도.


오늘 저녁부터는 조금 추워진다고 합니다. 꽃샘추위가 오려나 봅니다. 춘래불사춘, 계절에서도 경남일보에서도 참 듣기 싫은 말입니다. 봄이 봄답게 왔으면 하는 마음을 전하면서 이만 줄입니다. 감사합니다.


2009. 2. 12.

이우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