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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다을숙제] 아버지 어머니 만난 이야기

by 이우기, yiwoogi 2008. 5. 7.

아버지 어머니 만난 이야기

 

 

아버지 31살, 어머니 24살 때였는데 1997년이었다.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인터넷을 하지만 그때는 컴퓨터 통신이라는 게 있었는데 아버지 어머니도 컴퓨터 통신을 하는 사람이었다. 컴퓨터 통신에서도 동아리(모임)가 있었는데 ‘우리말 한누리’라는 동아리에 가입을 했지. 우리 말과 우리 글을 살려 쓰자는 운동을 하는 모임이었는데 아버지는 그때 신문 기자를 하고 있었는데다 대학을 국문학과를 나와서 우리 말과 글에 대해 잘 알고 있어서 모임에서 형, 오빠 노릇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나중에 회원으로 들어왔고.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컴퓨터 통신에 접속하여 글자로서 대화를 하는 모임의 매력에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어려울 정도다. 지금 어린이들이 ‘메이플 스토리’에 한번 빠지면 밥 먹을 줄도, 잠 잘 줄도 모르고 하는 것과 똑같다. 통신에서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한 10명 정도 모여 서로 사는 이야기도 하고 잘못된 우리 말과 글에 대한 이야기도 하곤 했는데 어느새 아버지와 어머니는 정이 들고 말았다. 모임은 통신 안에서만 하는 게 아니라 바깥에서 직접 만나기도 하는데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게 우리 둘은 다른 사람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됐지.

 

 

어머니가 경기도 안산에서 진주로 놀러오고 아버지가 진주에서 안산으로 놀러가고, 어떤 때는 버스를 타고, 어떤 때는 기차를 타고, 또 바쁜 때는 비행기를 타고 오가곤 했다. 그러다가 또 어떤 날은 안산과 진주의 중간인 대전에서 만나 ‘동학사’라고 하는 유명한 절로 구경을 가기도 했다. 대전 역 앞에 있는 어느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데 제목이 ‘접속’이었다. 그 영화는 어머니 아버지처럼 컴퓨터 통신으로 주인공 남자와 여자가 만난다는 내용이었지. 그러니까 아버지 어머니의 이야기와 비슷한 데가 많아서 참 재미있게 봤던 적이 있다.

 

 

그러나 대전에서 한 사람은 안산으로 올라가고 또 한 사람은 진주로 내려오자니 헤어지는 시간이 정말 마음이 아팠다. 일 주일이나 이 주일 뒤면 다시 만날 테지만 헤어진다는 것은 언제나 가슴 아픈 일이었지. 그래서 아버지는 어머니 집에 찾아가서 인사를 드리고 결혼을 하겠다고 말씀드렸고, 그보다 먼저 어머니가 아버지 집에 와서 인사를 드렸지. 그렇게 해서 양 쪽 집안 어른들이 다 좋다고 하여 결혼 날짜를 정하고 결혼식 할 곳을 정하고 하여 1998년 6월 14일 결혼식을 올렸지.

 

 

결혼을 하고 나면, 결혼하기 전에 같이 있다가 헤어질 때의 아픔이 싹 가셔진다. 어머니가 진주로 왔다가 안산으로 가고 나면 아버지는 컴퓨터 통신에다가 어머니가 편안히 잘 갔으면 좋겠다는 편지를 써 보내고, 아버지가 안산에서 진주로 내려올 때면 어머니는 기차 안에서 먹으라고 사과 딸기 같은 과일을 예쁘고 맛있게 잘라서 병에 넣어주곤 했다. 그 과일을 기찻간에서 꺼내 먹을 때 바라보는 사람들의 부러운 눈길을 생각해 보면 지금도 저절로 웃음이 난다. 이제 결혼을 하고 나니 날마다 밥 같이 먹고 같이 놀러 다니고 같이 웃고 그렇게 살게 됐다. 물론, 가끔씩 싸움을 하긴 했지만 그것은 사랑이 더욱 깊어질 때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작은 소용돌이일 뿐이다.

 

 

어머니는 태어난지 25년 만에 처음으로 진주로 시집왔기 때문에 진주의 말투와 진주 근처 길들을 잘 몰라 주말마다 차를 몰고 구경을 다녔다. 절에도 가고 산에도 가고 강으로도 가고 바다도 보러 갔다. 그렇게 어머니는 진주사람이 되었고 그 사이 다을이라는 우리의 보물이 태어났다. 그게 2000년 7월이다. 벌써 8년 전이구나. 세월은 빠르지만 다을이 자라는 것은 즐겁고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