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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큰들 마당극 보러 가기

진주대첩 영웅들과 남명

by 이우기, yiwoogi 2024. 4. 13.

<진주대첩 영웅들과 남명>

 

극단 큰들의 <마당극 남명>은 남명 조식(南冥 曺植, 1501~1572) 선생의 일대기를 1시간 마당극으로 압축, 제작한, 매우 뛰어난 작품이다. 남명이 살던 시대의 어지러운 정치 상황, 먹고 살기 위해 도적이 될 수밖에 없는 백성들, 남명이 제자를 문무 겸비한 선비로 가르치는 모습, 임진왜란이 터지자 ‘경의(敬義)’ 깃발을 들고 싸움터로 달려가는 제자들의 모습이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비장한 장면이 많다. 숨 막힐 듯한 긴장도 있고 가슴 터질 듯한 울분도 있다.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한 극의 주제가 우리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마당극을 관람하는 1시간 시종일관 재미있고 즐겁게 공연을 즐긴다. 그것은 배우들의 빼어난 연기에 묻어나는 해학적이고 익살적인 장면들 덕분이다. 진지한 장면 때문에 숨이 막힐 듯하다가도 금세 웃음이 터진다. 마당극이라서 다행이다. 이 시절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나 영화도 많다.  

 

봄의 한가운데에서 진주성에서 열린 <마당극 남명>을 보았다. 2018년 창작한 마당극 <남명>을 그동안 수십 번 보았다. 주로 산청 동의보감촌과 한국선비문화연구원에서 보았다. 진주성에서는 처음 관람했다. 4월 13일 오후, 연둣빛이 온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인 가운데, 붉은빛을 먼저 떠올리게 하는 <마당극 남명>을 뜨거운 가슴으로 관람했다.

 

오늘 ‘제431주년 창렬사 제향 및 진주대첩 호국선열 추모행사’가 열렸다. 창렬사는 임진왜란 때 진주성에서 순절한 의병장 김천일 등을 제향하기 위하여 건립된 사당이다. 진주성 안에서 <마당극 남명>을 공연한 데는 까닭이 있다. 임진왜란 진주성 싸움에는 남명의 제자들이 많이 참여했기 때문일 것이다.

 

 

날씨는 아주 좋았다. 마당극을 공연하기에도, 마당극을 관람하기에도 최고의 날씨였다. 짧은 소매 옷을 입고, 그 위에 가볍고 얇은 옷을 걸쳤다. 점심을 조금 일찍 먹고 12시 30분쯤 진주성으로 갔다. 하얀 꽃가루가 뿌옇게 날았다. 그 꽃가루들은 어디로 날아간 걸까. 진주성 안을 이리저리 걸었다. 더웠다. 겉옷을 벗었다. 불룩한 배가 정체를 드러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극단 큰들 단원들이 공연장 주변에서 준비를 하고 있었다. 특별한 날에 특별한 공연을 하는지라 준비할 게 많았을 것이다. 전국에서 달려온 시민배우 20여 명도 마당 근처에서 심호흡을 한다. 오다가다 만난 단원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비로소 2024년 마당극 공연이 본격화했음을 깨닫는다. 12일 사천 서포 공연에도 다녀왔으나 워낙 경황이 없었던지라 나에겐 이날이 올해의 첫 공연처럼 느껴진다.

 

 

어떤 사람은 일찌감치 시원한 그늘 아래 의자에 걸터앉아 시계를 자꾸 쳐다본다. 어떤 사람은 멀찍이 앉아서 짐짓 마당극 관람객이 아니라는 듯 행세한다. 어떤 사람은 운동 삼아 진주성 이곳저곳을 싸돌아 다닌다. 나는 싸돌아다닌 놈이다. 모두들 큰들 팬이다. 1시 40분쯤 되자 공연장 주변엔 약간의 긴장감이 감돈다. 극단은 마이크 상태를 점검하는 한편, 곧 공연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린다.

 

연둣빛 나뭇잎은 바람에 흔들린다. 새들은 지지배배 지저귄다. 옅은 구름은 햇살을 가렸다가 풀어주기를 되풀이한다. 아이들도 있었고 청년도 있었고 어른도 있었고 어르신도 있었다. 관객들은 각자 제 자리에서 마당극 즐길 준비를 마친다. 공연 시작 5분 전쯤부터는 빨랫줄 같은 긴장감이 공연장을 덮는다. 나는 그걸 느낀다. 기대와 설렘이 있고 긴장과 자부심이 교차한다. 처음 마당극을 보는 관객들은 침을 삼키고, 여러 번 보아온 관객들은 주먹을 편다. 아마 배우들은 무대 뒤에서 대사와 소품 들을 정리하고 또 정리하고 있을 것, 그런 시간이다. 드디어 시작한다.

 

극단 큰들은 <마당극 남명>을 진주성에서 공연하는 의미를 먼저 설명했다. 남명 조식 선생은 합천, 김해, 산청과 직접 관련 있지만, 진주와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이 있다. 남명의 제자들은 임진왜란 때 나라와 백성을 구하기 위해 의병장으로 떨쳐 일어났다. 그 의병장의 숫자가 50명을 넘는다고도 하고 아예 57명이라고 밝힌 학자도 있는가 보다. 진주성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7만 민관군들은 남명을 정신적 스승으로 여기지 않았을까. 그런 인연을 간단명료하게 설명함으로써, 남명과 임진왜란과 진주성을 한 실오라기로 꿰어 볼 수 있게 해 준다. 관객을 배려하는 큰들의 마음이다. <마당극 남명>을 진주성에서 공연하는 이유를 알고 나면 더 재미있어진다. 

 

공연 내용 중에 관객 한 명이 사또로 등장하는 대목이 있다. 약 5분 동안 마당판에 등장하게 되는데 ‘5분사또’라고들 한다. 이날 5분사또는 끼가 약간을 넘는 것 같다. 자기 흥에 맞춰 적극적으로 공연에 참여했다. 어디에서 마당극을 많이 보아온 분 같다. 의외의 행동과 말투에 관객은 더 큰 즐거움을 얻는다. 큰들 마당극을, 동일한 작품을 보고 또 봐도 늘 새롭게 느껴지는 건 관객배우의 영향도 있다.

 

진주에서 열리는 공연인 만큼 짧게라도 진주 자랑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물 굿을 한 마을 사람들에게 남명 선생이 술과 떡을 베푼다. “자, 진주 시장에서 산 술과 떡일세.”라는 대사가 나온다. 진주 냉면 이야기도 나온다. 시원한 냉면 한 그릇 먹으면서 육전을 시켜 먹어도 되느냐는 말이 귓전을 때린다. 그러잖아도 목이 마른 참인데, 식욕을 돋운다. 진주 대표 음식을 잠시 자랑한 셈이다. 

 

 

수십 번 보아온 <마당극 남명>이 오늘은 더욱 새롭다. 남명 조식 선생이 돌아가신 뒤 임진왜란이 터지고, 그 제자들이 순식간에 의병장으로 거듭나는 장면에서는 심장이 쿵쾅거리고 눈물이 앞을 가린다. 도대체 이 장면은 몇 번을 더 보아야만 익숙해질까. 알 수 없다. 남명 제자들이 의병장이 되어 왜적과 싸우는 장면의 군무(群舞, 軍舞)는 웅장하고 경쾌하고 비장하고 날렵하다. 가슴속 뜨거운 그 무엇이 용솟음친다. 아무리 보고 또 봐도 마음 편히 감상되지 않는다. 현기증이 일어난다. 항상 그렇다. 죽음이 뻔히 눈앞에 보이는데도 전혀 개의치 않고, 가족이 눈앞에 밟히는 데도 애써 외면하면서 긴 칼을 뽑아 든 선비들에게서, 나는 숭고함과 거룩함을 느낀다. 스승의 가르침을 뼛속 깊이 새긴 제자들이 백성과 나라를 구하기 위해 분연히 떨쳐 일어나는 장면은, 우리가 오늘날 왜 남명을 배우고 또 배워야 하는지를 간접적으로 증명해준다고 본다.  

 

이날 공연의 백미는, 맨 나중에 나온다. 이날 공연을 알리는 전단에는 ‘진주대첩 영웅들과 마당극 남명’이라고 씌어 있다. 임진년 대첩(大捷)과 계사년 순의(殉義)의 주역들이 등장한다. 대첩은 크게 싸워 이겼다는 말이고, 순의는 의롭게 순절했다는 말이다. 진주대첩 영웅들이 430여 년의 시간을 건너 뛰어 역사의 현장에 다시 나타난다. 당시 진주성을 지키던 충무공 김시민 장군을 위시하여 30여 명의 주요 인물들의 이름이 새겨진 만장(挽章)이 무대 좌우에 등장한다. 이번 공연을 위해 모집한 시민 배우들이 등장한 것이다. 한 가운데에는 진주성을 지키자라는 글귀가 있고 그 옆에는 7만 민관군이라는 글귀가 씌어 있다. 진주성 전투의 영웅은 7만 민관군 모두를 가리킨다는 뜻이다. 그들이 진주성을 지켜냈다는 말이다. 

 

남명의 제자들이 마당 한가운데에서 칼을 휘두르며 왜적을 물리치는 사이에, 무대의 오른쪽과 왼쪽에는 진주성 수호의 맹장들이 나타나 백성과 나라를 구하려는 의지를 보탠다. 시민배우들은 큰들 배우처럼 율동을 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날 역사적 주역들을 공연장으로 모시고 옴으로써 그 역할을 충분히 다했다. 그렇게 본다. 관객들은 눈길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른다. 가로 10미터 남짓이던 마당판이 그 서너 배로 확장되어버린 상황을 이해하느라 고개를 좌우로 재바르게 돌린다. <마당극 남명> 1시간 공연이 430년 역사의 저편과 이어지는 신비로운 경험을 한다. 진주성에서 벌어진 그해의 승리(임진대첩)와 그다음 해 패배(계사순의)의 기억을 넘어 미래의 역사 속에서 승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승리임을 자각하는 순간이다. 진주대첩 영웅들의 이름을 한 분 한 분 옮겨 적지 못함이 아쉬울 뿐이다.

 

 

<마당극 남명>은 진주성과 인연이 깊다. 욕심이 생긴다. 이 작품을 역사의 현장인 이곳 진주성에서 더 자주 공연해 주면 좋겠다는 그런 욕심 말이다. 진주성을 찾는 관광객들이 주마간산으로 둘러보고 돌아가지 말고 최소한 1시간만이라도 앉아서 역사와 현재를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1시간 동안 웃고 즐기며 문득 눈시울이 촉촉해질 수 있도록, 그러고 나서 진주성을 다시 한번 더 찾아오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 있도록 해주면 어떨까 하는 욕심이 생긴다. 

 

극단 큰들은 <진주성 싸울아비>라는 작품을 오래전 공연했더랬다. 이 작품은 진주성 전투를 직접 형상화한 작품이다. 나는 이 작품을 본 기억이 없다. 이 작품에는 진주유등, 진주농악, 육회비빔밥, 소싸움, 진주비단 등 진주 이야기가 아주 많이 등장한다고 들었다. 만약 이곳 진주성에서 <진주성 싸울아비>를 연중 공연해준다면, 그렇게 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진주사람이라면 응당 진주성 전투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고, 그 맥락과 의미를 한번 더 생각하고, 오늘날 우리가 배워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해 준다면 좋겠다. 진주사람이라면, 진주를 찾는 지인들에게, 우리 진주에는 이런 문화상품이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것이 역사적 진실을 배경으로 한 공연상품이라면, 자랑하는 사람도 자랑을 듣는 사람도 조금 더 기쁘지 않을까. 더 오래 기억하지 않을까. 430년을 뛰어넘는 역사의 가르침을 더 뜨겁게 기억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했다.

 

공연 시작 직전 진주시의회 의원 한 분을 만났다. 나란히 앉아 관람했다. 이분이 잠시 자리를 비웠다. 내 가방으로 의자를 지켰다. 문득, 뒤가 궁금하여 고개를 돌리니 연세 지긋한 분이 서 계신다. 가방을 치우고 의자에 앉으시라고 했다. 돌아온 시의원은 돌계단에 앉았다. 공연 끝난 뒤 “원래 이분 자리였습니다.”라고 소개를 해주었다. 그분, “서울에서 왔는데 덕분에 좋은 공연을 편하게 보았다.”라며 몇 번이나 인사를 건넨다. 나에게도, 시의원께도. 잘했다 싶었다. 큰들 공연장에 가면 이런 자잘하고 재미있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자주 만나게 된다.

 

 

공연이 끝났다. 관객들은 우렁찬 박수로 감사했다. 김 할배 역을 한 배우의 목소리가 귓가에 남았다. “남명 조식을 단성 현감에 제수하노라.”라는 목소리는 짜랑짜랑했다. 공연 뒷부분이어서 힘이 빠질 만했는데도 그의 목소리는 에너지가 넘쳤다. ‘앵두나무 우물가에’라는 노래의 ‘빨리 감기’ 장면은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다. 봐도 봐도 명장면이다. 의병장의 칼춤은 관객의 혼을 빼놓았다. 음악이 큰 역할을 했다. 돌이 역을 한 배우는 목이 쉬었다. 그만큼 열정적으로 공연했다는 뜻이다. 올해 첫 <남명>이어서 그도 괜스레 들떴던가 보다. 더운 날씨 속에서 등줄기에 땀을 줄줄 흘리며 마당을 뛰어다닌 모든 배우들에게 감사한다.

 

감사할 곳은 많다. 1시간의 공연을 위해 노력한 스태프들도 수고 많으셨다. 뜻깊은 공연이 열리도록 배려해준 진주시와 진주성관리사업소에도 감사드린다. 무엇보다, 이날 공연이 성공적으로 끝나도록 대사 없는 자기 배역을 열심히 해준 관객들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그 감사의 한 부분은 내 몫이다. 나는 늘 성실하고 애정 넘치는 관객이니까.^^

 

2024. 4. 13.(토)

이우기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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