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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큰들 마당극 보러 가기

마당극 목화

by 이우기, yiwoogi 2022. 12. 18.

<마당극 목화>

 

<마당극 목화> 창작 시연회를 알리는 포스터

 

극단 큰들은 12월 16일 오후 2시, 17일 오후 2시 큰들 산청마당극마을에서 마당극 <목화>를 처음 공연했다. 엄밀히 말하면 16일 공연이 첫 공연이다. <목화>는 큰들이 2022년에 창작한 작품이다. 큰들은 2021년에는 ‘동의보감 힐링극’ <찔레꽃>을 창작했고 2020년에는 ‘영웅의 부활’ <정기룡>을 창작했다. 2018년에는 ‘위대한 스승, 다시 세상을 깨우다’라는 부제가 붙은 <마당극 남명>을 새로 만들었다. 산청에 마당극 마을을 조성하여 이사하던 2019년을 빼고는 최근 5년 동안 4작품을 새로 만든 것이다. 재정 여건이나 공연 일정 등을 고려하면 실로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마당극 목화>는 큰들이 제작한 여러 마당극 가운데 산청지역을 주제로 또는 소재로 한 다섯 번째 마당극이다. <허준>, <효자전>, <남명>, <찔레꽃> 다음이 <목화>이다. 언제 한번 이 다섯 작품을 잇따라 보는 날이 오면 좋겠다.

 

<마당극 목화>의 부제는 ‘온 세상을 데운 따뜻한 씨앗’이다. 목화가 무엇인지, 그 목화가 고려시대, 조선시대 백성들에게 얼마나 큰 따뜻함을 선물했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이 부제가 무척 따스하게 가슴에 와 닿을 것이다. 목화는 요즘도 우리들에게 건강하고 따뜻한 옷감이다. 면으로 만든 제품이 많은데, 그 면(棉)이 바로 목화이다. 이 마당극을 제작 중이라는 소문을 들었다. 제목을 무엇으로 할지 고민한다는 이야기도 들은 듯하다. 나는 남명, 정기룡을 생각하며 ‘마당극 문익점’이 되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은 조금 빗나갔다. <마당극 목화>를 소리내어 “마당극 목화”라고 불러보니 참 따뜻하다. 소리글자인 우리 한글 닿소리 가운데 ‘ㅁ’과 ‘ㅎ’이 빚어내는 소리가 따뜻함을 더해주는 것만 같다.

 

공연 전에 김정경(오른쪽), 윤민서 배우가 나와 노래를 한 곡 불렀다.

 

이 마당극을 제작하는 데는 산청군의 지원이 있었다. 마당극 한 편을 새로 창작하는 데 얼마나 들지 모른다. 산청군이 지원하여 <마당극 목화>를 창작하도록 하는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을 것이다. 큰들이 산청군에 둥지를 튼 것이 이유일 것이다.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산청 출신 역사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마당극을 전국에서 공연함으로써, 또는 산청군에서 지속적으로 공연함으로써 얻는 반사이익이 더 크다고 본 덕분일 것이다. 거기에다 이러한 전통문화예술을 바라보는 산청군 사람들(특히 공무원들)의 밝은 눈과 맑은 정신이 한몫하지 않았을까 또한 짐작해 본다.

 

<마당극 목화> 제작진을 적어놓는다. 작품의 배역은 때에 따라, 사정에 따라 조금씩 바뀌더라도 처음 제작한 사람들은 바뀌지 않을 것이므로, 나름대로 역사를 기록하는 셈이다. 제작은 ‘극단 큰들’이다. 왜 ‘극단 큰들’이라고 할까. 이건 다음에 이야기하자. 예술감독 전민규, 연출 송병갑, 극작 김안순·정태국, 의상 하은희, 무대·소품 박춘우, 음악 김강곤, 인쇄디자인 김세림, 안무 안정호, 기획 진은주 씨이다. 극작한 김안순 씨는 <찔레꽃>을 창작한 작가이다. 또한 극단 큰들의 배우이다. 정태국 씨는 사무국 직원이면서 배우이다. 이제 작가가 되었다. 축하드린다. 의상을 하은희 씨가 만들고 무대와 소품을 박춘우 씨가 제작하는 건 이제 불문가지인 듯하다. 낯선 분이 있다. 김강곤 씨는 큰들 가족이 아니다. 큰들이 <마당극 목화> 첫 공연 때 나눠준 전단에 소개가 나온다. 마당극, 연극, 무용 음악을 주로 작곡하는데 대표작으로 마당극 <집>, <귀향>, <강>, <염쟁이 유씨>, <연리지> 따위가 있다고 한다.

 

원나라 국경을 넘는 박행수(가운데, 이인근)와 하인(왼쪽, 윤민서), 그리고 원나라 '네이티브 스피커' 검문관원 김혜란 배우.

이제 출연 배우를 알아볼 차례다. 문익점 역할은 홍수완 씨가 맡았다. <마당극 남명>에서 나쁜 사또 역을 하고 <효자전>에서 키 큰 저승사자 역할을 하는 배우다. 2017년 입단한 6년차 배우다. 문익점의 장인인 정천익은 김상문 배우다. 자타공인 큰들 대표 배우다. 문익점의 부인인 정씨 부인은 하은희 배우다. 설명이 필요 없다. 지난해 창작하여 올해 가장 뜨겁게 공연한 <찔레꽃>의 주인공이다. 문익점의 하인인 동식이는 김가람 배우다. 2018년 입단한 5년차 배우다. 문익점과 맞서는 인물인 박행수는 이인근 배우다. 2015년에 입단했는데 현재 공연 중인 모든 작품에 출연한다. 충청도 사투리가 아주 구수하다. 2021년 입단하여 이제 2년차인 윤민서 배우는 박행수의 하인 등 여러 역을 맡는다. 자타공인 큰들 대표 배우인 김혜란 씨도 검문관원 등 여러 배역을 맡았다. <효자전>에서 어머니 역을 하고, <찔레꽃> 등등에서 다양한 역을 맡아 웃음 듬뿍 안겨주는 배우이다. 탐지견, 까마귀 등으로 나오는 안정호 배우는 <남명>에서 합천 의병장 정인홍이다. 귀부인 등 여러 역으로 나오는 김안순 배우는 <효자전>에서 귀신, <찔레꽃>에서 정귀래의 어머니 등으로 열연하는 배우이고, 김정경 배우는 예전 큰들 정기공연 때 130명 시민 풍물놀이를 지휘하는 교육담당이자 <찔레꽃>, <효자전> 등에 출연하고 있다. 허대원 씨는 2022년 입단한 가장 어린 배우이다. 이번 작품이 데뷔작이라고 할 만하다. 배우 11명이 <마당극 목화>를 꾸며 나간다. 내로라하는 큰들 대표 배우들이 포진한 가운데 입단한 지 몇 해 되지 않은 배우들이 중요한 역할을 해 나간다. 이렇게 비빔밥처럼 짬뽕처럼 잘 섞고 잘 비벼 멋지게 공연하는 게 큰들의 특기임을 나는 대충 안다.

 

이제 삼우당 문익점 선생님을 만나볼 차례다. 문익점 선생은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가져와서 우리나라 백성들이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게 해주신 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라는 노래에서 “목화 문익점”으로 언급된다. 문익점 선생의 호는 삼우당이다. 삼우당은 한자로 이렇게 쓴다. 三憂堂. 세 가지 근심(걱정)을 늘 지니고 산다는 뜻이다. 이는 곧 세 가지 걱정을 떨치기 위해 노력한다는 뜻이겠다. 세 가지 걱정은 무엇인가? ‘憂邦國之不振也, 憂聖學之不興也, 憂己德之不修也’(나라가 떨치지 못하는 것을 근심하고, 성인의 학문이 일어나지 못하는 것을 근심하고, 자신의 덕이 닦여지지 않는 것을 근심한다)이다. 삼우당 문익점 선생의 호는 이 글귀에서 따왔다고 한다. 나라와 학문과 자신의 덕을 항상 생각하는 유학자이다.

 

공연 끝난 뒤, 또는 공연 시작 전에 기념촬영하는 배우들(이인근, 허대원, 윤민서, 하은희, 홍수완, 김상문, 김정경, 안정호, 김혜란, 김가람, 김안순(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경상국립대 한문학과 허권수 명예교수(동방한학연구원장)는 2015년 간행한 ≪삼우당 문집≫ 역서(譯序)에서 이렇게 썼다.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단순한 ‘목면 종자를 가져온 분’이 아니라, 학문적으로 수준이 높아 포은(圃隱) 선생이나 목은(牧隱) 선생과 함께 성리학(性理學) 도입 초기에 깊이 연구하여 우리나라에 정착시킨 공이 있고, 원(元)나라의 공민왕(恭愍王) 폐위 책동에 강하게 맞서 끝까지 저항했고, 고려(高麗)가 망하고 조선(朝鮮) 왕조가 섰을 적에 불사이군의 절의를 지켰고, 왜구의 침략 속에서도 여묘(廬墓)하는 지극한 효자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그가 동료들과 함께 구축한 성리학 체계가 조선왕조의 지도이념(指導理念)으로 채택되었고, 예법의 중시와 보급운동이 조선의 예치(禮治)를 여는 데 큰 공이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포은은 정몽주 선생이고 목은은 이색 선생이다)

 

이 책의 앞 부분 화보에는 삼우당 문익점 선생과 관련한 자료가 많이 게재돼 있다. 영정이 있고, 삼우당 실기 목활자본이 있다. 산청군 출신이므로 단성면에 있는 생가 터, 신안면에 있는 묘소, 생가 터 앞에 삼우당 선생이 심은 은행나무, 신안면 도천서원, 삼우당 선생 신도비, 단성면 문익점면화시배사적지, 사적지 경내 부민각 등 많은 사진 자료가 등장한다. 그런데 눈에 띄는 것은 전남 장흥의 강성서원, 전남 나주의 장연서원, 전북 김제의 저산서원, 전남 담양의 운산서원, 경북 군위의 봉강서원, 경기 여주의 매산서원, 경북 영덕의 충선사, 경북 의성의 목면유전기념비, 면작기념비, 경남 하동의 삼우당 선생 숭모비 등이다. 전국 방방곡곡에 삼우당 문익점 선생을 기리는 사당과 목면 관련 비석이 있다. 문익점 선생이 목면 씨앗을 우리나라에 퍼뜨린 일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해주고, 또한 그의 학덕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증명해 주고도 남는다.

 

공연 마지막 장면. 다함께 춤추고 노래한다.

 

<마당극 목화>는 문익점 선생의 이런 이야기를 모두 들려주지 않는다. 대하소설도 아니고 대하드라마도 아니기 때문이다. 큰들은 1시간 분량의 마당극에서 몇 가지 주요한 장면을 보여준다. 중국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오는 길에 목화씨 열 개를 갖고 오는 장면, 그 목화씨를 장인 정천익과 함께 심어 싹을 틔우는 장면, 이런 과정을 눈치 채고 문익점의 공을 가로채어 장삿속을 채우려는 사람들의 계략 등이 그것이다. 그 사이에는 나라를 지키는 병사들조차 한겨울에 삼베옷을 입고 추위에 벌벌 떠는 이야기, 그렇게 죽은 사람 시체를 뜯어먹기 위해 날아다니는 까마귀, 원나라에서 고급 비단을 들여오는 장사치, 그 장사치에 붙어 온갖 고급품들을 사들이며 향락을 누리는 귀부인들 이야기도 나온다. 때는 고려왕조 500년이 기울어가던 공민왕 시절이었다.

 

목화 재배에 성공하자 소문을 듣고 나타난 박행수가 함께 사업을 벌이자고 제안하자 그런 일에는 관심이 없다며 오로지 백성들이 따뜻하게 옷을 입기만을 바라는 문익점의 단호함이 드러난다. 백성들이 추위로 고통 받는 것을 늘 가슴 아프게 생각한 문익점. 목화는 신분과 재력의 상징이며 돈벌이와 권력의 수단이기도 했으나 그런 것에 아랑곳없이 목화를 백성들에게 돌려주고자 한다. 박행수 일당이 목화밭과 목화창고에 불을 질러 망연자실 실의에 빠진 상황에서 이를 극복해내는 극적인 반전도 준비돼 있다. 장인과 문익점이 서로 믿고 의지하는 장면도 그려냈다. 그들이 얼마나 손발이 잘 맞고 뜻이 잘 맞는지를 보여주는 장면도 나온다. 물론 마당극이니 가능한 설명이겠다.

 

<마당극 목화>의 무대설치.

큰들은 마당극을 이끌어가기 위한 소재와 주제에 집중하고 그 밖의 여러 정치적 상황 등은 생략하고 압축하고 삭제했다. 문익점이 목화를 우리나라에 어떻게 들여왔고 그것으로써 백성들의 의복을 혁명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에 집중한다. 그 과정은 수많은 대사와 춤과 노래로 디자인된다. 관객에게 웃음과 감동을 주기 위한 장치를 곳곳에 놓았다. 14세기 말 이야기를 21세기 이야기인 듯 들려주고 보여준다. 대사 가운데에는 요즘 젊은이들이 사용하는 외국어, 유행어가 나온다. 마치 힙합이나 랩을 들려주듯이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대사도 있다. 원나라 검문관원은 실제 원나라 사람처럼 말한다. 600여 년 전의 상황을 다룬 시대극인데도 춤사위는 2020년대 아이돌 가수들 같이 칼군무이다. 관객들이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와!”하고 탄성을 지르게 된다.

 

여기서 큰들의 제작 의도를 살짝 엿본다(나눠준 전단에서 인용). “고려시대, 백성들을 추위와 굶주림으로부터 구제하겠다던 문익점의 꿈. 그 꿈은 원나라에서 어렵게 목화씨를 구해오게 하고, 공기도 토양도 기후도 다른 고려에서 마침내 목화 싹을 틔우게 하고 고려 전역에 목화를 피우게 했다. 그것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무수한 난관과 어려움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집념과 열정이 어디에서 왔을까. 구멍 숭숭 뚫린 삼베옷 입고 겨울이면 굶주림과 함께 추위와도 싸워야 했던 백성들. 그 백성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문익점의 애민정신이 기적을 만들고 세상을 바꾸었다.”

 

큰들은 이 작품을 창작하면서 직접 목화씨를 심어 싹을 틔우는 실험을 진행했다고 한다. 전단에 나오는 제작일지를 보면 알 수 있다. 2월에 산청마당극마을에 목화씨 다섯 알을 심었다. 이때 작품 연출과 작가를 선정했다. 연출과 작가를 선정하는 것이 마당극 창작에서는 곧 씨앗을 심는 일이다. 이때부터 역사·인물 정보를 수집하고 자료를 조사하였다. 공연 일정과 진행 계획을 세웠다. 음향, 의상, 무대, 스태프 계획까지 짰다. 올 3월, 본격적인 2022년 정기공연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큰들은 또 하나의 커다란 꿈을 마을에 심은 것이다.

 

권영란 선배와 나란히 앉아서 보았다.

4월이 되어 마을에 봄이 왔다. 목화가 첫 싹을 틔워냈다. 4월 8일이다. 온 산과 들에 민들레, 벚꽃, 진달래가 만개할 때 목화도 싹을 틔웠다. 기획회의를 하고 시놉시스 토론을 하던 큰들 사람들이 얼마나 흥분되고 긴장되었을지 상상해 본다. 2월에 씨를 심은 목화가 10월 5일경 솜꽃을 피웠다. 이때는 큰들이 가장 바쁜 시기였다. 산청한방약초축제가 한창이던 때이다. 그 즈음 나는 동의보감촌 공연을 본 뒤 마을에 놀러 간 적 있다. 일요일이었다. 마을에 남아 있던 단원들이 어슬렁어슬렁 모였다. 공연을 마친 배우들이 분장만 지운 채 마을로 돌아왔다. 오후 5시쯤이었을까. 그때부터 극단 큰들은 새 작품에 관한 회의를 한다고 했다. 그때 하던 회의의 내용이 바로 <마당극 목화>인 것이다. 10월 19일 산청 단성 목면 시배지를 탐방한 큰들은 연습 또 연습, 수정 또 수정, 회의 또 회의 등 창작을 이어나갔다. 출산의 고통, 출산의 즐거움을 동료들과 고스란히 느끼며 즐겁고 기쁘게 연습하였을 장면도 상상해 본다. 결실의 계절 가을에 목화솜 맺은 큰들은 드디어 12월 중순에 두 차례 창작초연(시연회 또는 작품발표회)을 성공적으로 해낸 것이다.

 

큰들 마당극에는 주제곡이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곡은 <남명>이다. “백성은 물이요, 임금은 배라~”로 시작한다. <정기룡>의 주제곡도 웅장하고 멋지다. “임진왜란 정유재란 나라가 쑥대밭이 되었네~”로 시작한다. <찔레꽃>의 주제곡도 있다. “느껴지나요 시원한 바람 / 들리시나요 새들의 노래 / 살아가는 게 마음 같지 않을 땐 / 내 몸이 마음처럼 쉽지 않을 땐 / 잠시 서서 귀 기울여봐요 / 몸과 마음이 하는 말 / 큰 소리로 함께 웃어봐 / 춤을 추고 소리 질러봐~!”(이 글을 쓰다가 문득 그 장면 장면이 떠올라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쓴다.)

 

<마당극 목화>의 주제곡 제목은 <피어라 목화꽃>이다(花가 두 번 들어갔다). 큰들 작사, 김강곤 작곡이다. “피었네 피었네 목화꽃이 피었네. 내 나라 고려땅에 목화꽃이 피었네. 씨앗 하나 열이 되고 백이 되고 천이 되어. 온 나라 고려땅에 하얀솜꽃이 피었네. 따그락똑딱 따그락똑딱 얼쿠덩 절쿠덩 따그락똑딱 따그락똑딱 얼쿠덩 절쿠덩 따그락똑딱 얼쿠덩 절쿠덩 따그락똑딱 얼쿠덩 절쿠덩. 베틀소리 박자도 좋네. 목화꽃이 피었네 하얀솜꽃 피었네.” 추운 고려땅에 하얀솜꽃이 피어난 것만큼 축복된 일은 없을 것이다. 그 목화를 수확하여 옷감을 짜는 베틀소리만큼 따뜻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감정과 축복과 행복을 잘 녹여낸 가사이다. 특히 ‘따그락똑딱 따그락똑딱 얼쿠덩 절쿠덩’이라는 소리시늉말은 베틀에서 옷감 짜는 장면을 직접 보고 듣지 않으면 흉내 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 베틀에 앉은 어머니가 떠오른다.

 

공연 보러 가는 길에 산청군 신안면에 있는 충선공 문익점 동상 앞에서 잠시 묵념했다. 감사하다고 묵념하고 작품 성공하게 해 달라고 빌었다.

 

<마당극 목화>를 초연(시연회)한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설레었다. 보고 또 본 작품을 보러 갈 때도 설레는데 창작 초연이니 오죽했을까. 하지만 보러 갈 수 있을지 없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12월 중순부터는 연말 아닌가. 연말에는 보통 때와 달리 많은 행사가 잇따르는 시기다. 직업적으로도 그렇고 개인적으로도 그렇다. 공연 며칠 전까지 나는 못 가는 것으로 마음을 정했다. 내년에 보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궁금증과 호기심을 이기지 못했다. 급한 일은 며칠씩 앞당겨 처리하고 덜 급한 일은 주말로 미루었다. 금요일 오후를 휴가 냈다. 그렇게 마음 정할 때 ‘혹시 금요일 오후 공연에 한 자리 남았는지’ 물어보았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고, 큰들은 스스로 묻는 자를 초청하는 법이다. 금요일 오후 휴가 덕분에 토요일 오전에 일 나가는 건 나에겐 당연한 일이다.

 

첫 시연회를 함께한 관객들 틈에 앉아 웃으며 손뼉 치며 열심히 공연을 보았다.

 

공연장은 평소 큰들의 연습장이자 식당이자 회의실이다. 이번 공연을 위해 빛을 막고 벽을 가렸다. 소박하고 아담한 소공연장처럼 꾸몄다. 마을 주민도 오고 산청읍에서도 오고 산청군청 공무원도 오고 진주에서도 갔다. 큰들 단원들도 긴장한 표정으로 모였다. 산청군수님과 군의회의장님도 오셨다. “우리 처음 만난 곳도 목화밭이라네~”로 시작하는 노래 한 곡을 함께 부르고 감상한 뒤 <마당극 목화>의 역사적인 공연이 시작됐다. 공연 내내 1시간 동안 웃고 손뼉치고 또 웃다 보니 시간은 금방 흘렀다. 정말 재미있다. 일부러 울리려고 한 대목이 없는데도 시간이 지날수록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문익점 선생의 애민정신에 내 마음이 가 닿은 것이다. 큰들 덕분에. 큰들 덕분에 웃고 울 일이 또 하나 늘어났다. 둘째 날 토요일 공연도 잘 끝난 모양이다. 그날 밤 큰들 산청마당극마을에 흰 눈이 내려 소복하게 쌓였다고 한다. 마치 새하얀 목화솜꽃이 축복처럼 온 마을을 따뜻하게 덮어주듯이...

 

2022. 12. 18.(일)

이우기 씀

 

(공연 장면 사진은 큰들 페이스북에서 빌려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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