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들빼기김치
차를 몰고 싸돌아다니던 시절이다. 사천 비토섬으로 취재를 갔다가 길을 잃었다. 오르막 한 귀퉁이에서 아주머니 두 분이 무엇을 팔고 있었다. 길도 물어볼 겸 차를 세웠다. 길은 대충 알아들었다. 두 분은 고들빼기를 팔았다. 제법 많았다. 얼마치였는지는 모르겠는데, 두 분이 파는 걸 모두 샀다. 고들빼기김치 먹을 생각에 입에 군침이 돌았다. 아주머니는 돈을 깎아주려고 했다. 나는 사양했다. 고들빼기를 한 자루 가득 차에 싣고 돌아왔다.
어머니는 기함을 했다. 이걸 누가 다 먹으려고 하느냐 물었고 이 많은 걸 언제 다 무치느냐고 물었다. 어머니가 해주시는 김치 맛만 생각한 나는, 하나하나 정성스레 다듬고 양념을 만들고 무치는 등의 복잡하고 긴 과정을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이미 일은 저질러 놓은 것 아닌가. 어머니는 “그 아지매들 횡재했네.”라고 하시면서도 고들빼기를 고르기 시작했다. 나도 붙어 앉았다.
이틀 뒤 전화가 왔다. 고들빼기김치 담가놨으니 가져가라는 말이다. 퇴근길에 들러 제법 커다란 반찬통을 묵직하게 들고 집으로 왔다. 오는 길에 막걸리 한 병 산 건 물론이다. 어머니 고들빼기김치는 야들야들 꼬들꼬들 쌉싸름하다. 잎은 야들야들하고 뿌리는 꼬들꼬들하다. 쌉싸름한가 하면 고소한 맛이 혀끝에 감지된다. 밥숟가락과 술잔을 자꾸만 부르는 어머니의 고들빼기김치는, 이제는 더 이상 맛볼 수 없다.
어머니와 마주앉아 고들빼기를 다듬으면서 “우찌 만드는지 대충 알려주이소. 집에 가서 우리가 해 볼게예.”라고 했다. 거실 가득 펼쳐진 고들빼기를 침침한 눈을 비벼가며 하나하나 정성껏 가려내는 어머니에게 미안해졌던 것이다. 어머니는 설핏 미소를 띠면서 “너거가 하면 맛이 나나? 내가 해야 지 맛이 나지.”라고 하셨다. ‘내가 담가야 맛이 제대로 난다’는 자부심 같은 걸 나는 얼핏 느꼈다.
어느 식당에서 고들빼기김치를 먹었는데 맛이 별로였다. 무엇보다 작고 가는 뿌리가 질겨서 씹기가 어려웠다. 어머니께 연유를 물었다. “봄에 나는 고들빼기는 그냥 김치로 담가도 괜찮지만, 가을부터 겨울에 캐는 고들빼기 뿌리는 독이 올라 있어서 끓는 물에 살짝 데쳐야 한다.”라고 말했다. 양념은 무엇무엇을 어찌어찌 넣는다고도 말했는데, 기억에 없다.
고들빼기라는 말만 들으면 어머니가 떠오른다. 철딱서니 없는 셋째 아들을 나무라지 않고 귀찮은 일을 아무 말 없이 해 주시던 어머니다. “너거가 하면 맛이 안 난다. 옴마가 해 줘야 맛이 나지.” 이 말도 귓가에 쟁쟁한다. 어제 퇴근길에 들은 듯 생생하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1998년 늦가을이었을 것이다. 신혼 때였다.
어머니는 계절 따라 참으로 다양한 반찬들을 해 주셨다. 김장이야 말할 것도 없고 고들빼기김치, 열무김치, 알타리김치, 파김치, 시레깃국, 장엇국, 뼈다구해장국, 도토리묵 들을 주말마다 해놓고 우리를 기다렸다. 동네 어른들끼리 멀리 여행을 가면 젓갈, 인삼, 상황버섯 등 좀 진귀한 것들도 사 왔다. 어머니의 손맛과 입맛을 어찌 잊을 것인가. 작은 몸으로 하루 종일 꼼지락꼼지락해서 반찬을 만들어주던 날들이 어찌 잊힐 것인가. 그러자니 어머니 집 안에는 크고 작은 반찬통이 여기저기 쟁여져 있었다. 알뜰히 챙기고 인사까지 살뜰히 드리고 왔는데 전화를 해서 “아이고, 아랫방 냉장고에 시레깃국 냉동해 노은 거 안 줬네. 내일이나 모레 다시 오이라.”라고 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어머니는 당신 몸 안에서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 간장, 신장, 폐장, 비장, 심장 등 오장을 비롯해 각종 장기들이 지르는 비명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 어지럽다고, 숨이 가쁘다고, 무릎이 아프다고, 허리가 아프다고 병원에 입원한 적은 있었지만 정작 더 큰 병이 자신의 몸속에서 자라고 있음을 눈치 채지 못하였다. 주말마다 찾아가 반찬통 챙기기에만 급급하느라 어머니가 어디가 아픈지 안색이 어떤지를 좀더 잘 챙기지 못한 후회가 너무 크다.
자신의 몸을 돌보기보다 자식을 건사하기 위해 몸의 고통과 마음의 고단함을 돌아보지 못하는 우리네 어머니의 이야기가 있다. 어머니뿐만 아니다. 우리도 이제 스스로 몸 안에서 내지르는 비명을 열심히 챙겨 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마당극이 있다. 극단 큰들의 마당극 <찔레꽃>이 그것이다.
극 중 주인공인 귀래는 자식들에게 이런 반찬 저런 반찬을 챙겨준다. 우리 어머니와 똑같다. “너거가 하면 맛이 나나?”라는 말이나 “나는 일하는 것이 쉬는 것이다.”라는 말은 곧 우리 어머니가 늘상 하던 말이다. 과연 이 마당극엔 ‘고들빼기김치’도 등장한다. 마치 내가 20여 년 전에 겪었음 직한 장면이다. 어쩌면 우리네 어머니들은, 우리들은 이렇게 하나도 변하거나 바뀌지 아니하고 그저 그랬을까.
큰들의 마당극 <찔레꽃>은 2022년 11월 12일(토)과 13일(일) 오후 2시 산청군 동의보감촌 주제관에서 공연한다. 무료로 볼 수 있다. 모르긴 해도 <찔레꽃>을 볼 수 있는 올해 마지막 기회가 아닐까 싶다. 이틀 연속 눈물 쏙 빠지게 생겼다.
2022. 11. 6.(일)
이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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