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우체통

by 이우기, yiwoogi 2022. 6. 1.

<우체통>


경상국립대 칠암동 교정에 우체통이 하나 있다. 2021년 3월부터 1년 동안 1-2주에 한 번씩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이 통에 넣었다. 아들은 군대에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우체통이 있어서 좋았다. 편지는 사흘 이내에 도착하는 것 같았다. 우체국이 있었더라면 더 좋았겠다. 소포는 우체통에 넣을 수 없었으니까. 

 


우체통이 좀 더러웠다. 거미줄이 얼기설기 얽혀 있었다. 손 닿는 데는 대충 닦았다. 우체국에 전화하여 "이 우체통 청소는 누가 하느냐?" 물었다. 소유주인 우체국인지, 사용자인 경상국립대인지 물었다. 대답하지 못하는 그이에게 웃어주었다. 진지하면 안 된다고 미리 다짐했던 것이다.


우체통을 없앤단다. 이용자가 없어서이다. 어쩔 수 없다. 지난해 이맘때 없애려고 하다가 나 때문에 1년 늦춰진 건 아닐까 짐작한다. 전자우편과 문자메시지와 카카오톡이 번갯불처럼 왔다 갔다 하는 시대에 편지가 무슨 소용일까. 

 


짤막한 몇 글자에 생각을 담아 보내고 그림문자에 기분을 심어 보내며 자음과 모음 몇 가지로도 충분히 내 뜻을 보낼 수 있는 시대다. 진득하게 앉아 골똘하게 생각하며 한 자 한 자 이어나가는 편지라는 것은 이제 무용한 것이 되었을까.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는 걸 두말없이 인정하면서도 왠지 씁쓰레하다. 


이제 '경상국립대 칠암동 교정에 우체통이 하나 있었다.'라고 써야 하겠지. 그 우체통에 매주 편지를 넣던 어떤 사내가 있었다라며 추억해야 하겠지. 


2022. 6. 1.(수)
이우기

'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첫 충전  (0) 2022.06.10
전기 자동차  (0) 2022.06.05
미복귀 휴가 신고합니다  (0) 2022.03.17
영래밀면  (0) 2022.03.06
진주매화숲  (0) 2022.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