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어 범벅 공공사업들…부끄러운 ‘한글도시’
알기 쉬운 한글표기 두고
지자체 사업 외래어 남발
한자+영어 짜깁기 용어도
“시민 위한 사업이라는데
내용 짐작도 어려워서야”
“‘스마트 셸터’ ‘메이커 스페이스’ 무슨 뜻인지 아시겠나요?”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 선생의 출신지로 한글 도시를 표방하는 울산시가 정작 각종 공공사업에서 지나치게 외국어와 외래어를 남발해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다. 한국어로 써도 충분히 이해가 가능한 사업명을 굳이 외국어나 외래어를 겹쳐 쓰는 탓에 시민들은 지자체가 추진하는 사업이 무엇인지 접근 단계부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A씨는 최근 북구청 인근 버스정류장을 방문했다가 버스정류장에 쓰여져있는 ‘스마트 셸터’라는 표기를 보고 머리를 갸웃했다. ‘스마트 셸터’가 무슨 뜻인지, 해당 버스정류장이 무슨 역할을 하는지 도통 이해가 안 됐기 때문이다. A씨는 답답한 마음에 국민신문고를 통해 ‘스마트 셸터’를 한글로 된 명칭으로 알기 쉽게 변경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A씨의 요청에 대해 북구청은 “전국 지자체가 스마트 셸터라고 사용하고 있어 울산만 한글 명칭으로 바꾸면 타 시·도에서 내방한 방문객의 혼동을 초래할 수 있다. 또 우리말 명칭으로 쓰려면 전국 지자체가 일괄적으로 개칭해야 한다”고 답했다.
‘에코 스페이스’나 ‘메이커 스페이스’ 사업도 사업명만 들어선 어떤 사업인지 알 수가 없다. 동구에서 추진하는 ‘에코 스페이스’ 사업은 쾌적한 도시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친환경 미니화단 조성 사업을 가리킨다. ‘에코 스페이스’란 말 대신 ‘친환경 화단 조성 사업’이라고 쓰면 쉽게 사업명과 사업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메이커 스페이스’ 역시 일반인들이 누구나 찾아가 아이디어를 시제품으로 만들 수 있는 창작 공간이란 뜻으로, ‘창작 활동 공간’이나 ‘열린 제작실’ 등으로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
공공사업에 외국어 짜깁기와 외래어를 남발하는 건 울산시도 마찬가지다. 시가 울산형 뉴딜 첫 사업으로 추진하는 ‘스마트 클린워터 정비’ 사업의 클린워터(Clean Water)를 해석해보면 ‘맑은 물’로, ‘지능형 맑은 물 사업’이라고 표기해도 문제가 없음에도 굳이 외국어로 사업명을 지었다.
사업명을 외국어로 쓴 이유에 대해 묻자 울산시 관계자는 “원래는 상수도관 정비 사업으로 표기해왔는데 이번 사업에는 상수도관 내부에 스마트 센서가 부착되기 때문에 사업의 특징을 강조해 차별화하고자 ‘스마트 클린워터’라고 지었다”라고 밝혔다. 이외에도 시가 발표한 각종 보도자료에는 ‘에코 그린 모빌리티’ ‘공공건축물 그린 리모델링’ 등의 외국어 사업명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이에 대해 시민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취재진과 만나 사업에 대해 설명을 들은 시민 김모(31)씨는 “‘클린워터’라고 하니까 오히려 볼품없다. 그냥 ‘맑은 물 사업’이라고 하면 안 되는 거냐?”고 되물었다.
전문가들은 필요 없는 외국어와 외래어 사용이 시민들의 정보 접근을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규홍 경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사업명과 사업 설명에 외래어와 외국어로 범벅해놓으니 시민들은 정보 접근 단계부터 막혀버린다. 시민을 위한 사업이라면서 시민이 알아듣지 못하는 사업은 말이 안 된다”면서 “울산은 최현배 선생의 고향인 만큼 한글 도시를 강조하고 싶다면 언어의식이 더욱 남달라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주기자 khj11@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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