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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삼가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by 이우기, yiwoogi 2020. 11. 20.

삼가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이번 저희 모친상에 여러 가지 일로 바쁜데도 불구하고 각별한 정성으로 조의와 따뜻한 위로를 보내주신 덕분에 무사히 장례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마땅히 한 분 한 분 찾아뵙고 인사 올리는 것이 도리이오나 황망 중이라 몇 자 글월로 인사드림을 혜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큰 슬픔 속에서도 그나마 장례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위로의 정을 보내주신 선생님과, 평소 우애롭게 집안일을 의논하던 형제들, 그리고 여러 친척들의 보살핌 덕분입니다. 정신이 어지러운 가운데 치러진 장례여서 결례도 많았을 것이며 형식과 내용도 엉성하였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하여 장례식장을 직접 찾아주지 못하신 분들께는 따뜻한 밥 한 그릇 대접하지 못하여 송구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너그러이 이해하고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어머니는 1941년 8월 1일(음력) 진주시 미천면 정수리에서 4녀 2남의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1962년에 미천면 반지로 시집가서 미천면 안간에서 농사 지으며 청춘을 보내셨습니다. 아들만 4명을 낳아 욕심이 많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평생 동안 근면 성실하고 착하게 사신 분입니다. 빈소에 달려오신 친인척들은 이구동성으로 “천사 같이 사신 분”, “이렇게 가시면 안 되는 분”으로 어머니를 추억했습니다.

 

1979년 진주로 이사 와서는 중앙시장에서 배추장사를 하여 자식들 학비를 벌었습니다. 이른 새벽 도시락 7개를 싸면서도 한 번도 힘들다 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식들이 결혼한 뒤에는 김장김치는 물론이고 각종 반찬을 시시때때로 만들고 다듬어서 본가 방문이 뜸한 저희들을 불러들였습니다. 어머니께서 해주시던 장엇국과 시래기해장국은 천상의 맛과 영양이었습니다. 이제 그러한 것들은 세상 어느 곳에서도 맛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특히 어머니는 무슨 천벌을 받게 된 것인지 돼지고기, 소고기를 아예 드시지 못하셨습니다. 육류라고는 닭고기, 오리고기만 드실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항상 돼지고기 뼈다귀를 사서 해장국을 끓여 주셨습니다. 주말에 형제들이 모이는 날엔 삼겹살을 사다 놓곤 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리나 닭고기, 또는 생선회를 사 드렸지만 늘 많이 드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작은 체구에 무척 가벼웠던 어머니의 육신이 너무나 한스럽게 다가옵니다. 

 

2020년 10월 25일 일요일 새벽 가쁜 숨을 몰아쉬며 긴급히 반도병원 응급실로 실려가 폐렴이라는 초기 진단을 받은 뒤 대학병원 응급실을 거쳐 센텀요양병원에서 운명하시기까지는 21일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다급하여 뒤도 돌아보지 않으시고 가셨는지 알 수 없습니다. 대학병원으로 실려가시기 직전 손가락에 끼워진 작고 빛바랜 금반지 2개를 빼어 큰형님께 건네주시면서 “내가 오늘 죽으러 간다”라고 하신 말씀이 마지막 유언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누구나 한 번은 마주쳐야 할 잔인한 이별의 시간이지만, 그 일이 내 눈앞에 닥쳤을 때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11월 15일(음력 10월 1일)은 우리 가족이 영원히 잊지 못할 또 하나의 슬픈 기념일이 되었습니다.

 

11월 19일 진주시 금산면 반야정사에서 삼우제(三虞祭)를 올리고, 사망신고를 하고, 어머니의 금융 계좌를 정리하고, 소박하게 살아오신 집 안팎도 청소하였습니다. 자식들에게 부담될까 봐 병원비, 장례비를 하고도 남을 만큼 모아 두셨습니다. 돈 쓰고 싶은 순간, 써야 할 순간들을 인내하며 자식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애쓰신 것입니다.

 

무엇보다 자식들이 사 드린 빨간 내복과 장갑과 양말과 겉옷 들이 비닐에 쌓인 채 그대로 보관돼 있는 것을 본 순간 저는 숨을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빛깔 고운 신발은 신발장에 새것인 채로 들어 있었습니다. 침대 머리맡에서는, 그리고 발치에서는 온갖 약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우리가 사드린 영양제도 먹다 만 채였습니다. 그것들을 잘 챙겨 드셨으면 어머니는 더 건강하게 오래 사셨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무심했던 잘못이 너무나 크게 다가왔습니다.

 

진주시 옥봉동 본가 옥상에 서서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비 내리던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맑고 밝습니다. 먹구름 물러간 자리에 햇살이 비쳐 듭니다. 힘들고 어렵겠지만 어머니를 편히 보내드리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새로운 공부를 하기 위해 멀리 떠났다고 생각하라”시던 반야정사 스님의 말씀을 받들겠습니다. 먼저 저 세상에 가 계신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의 부모님, 시부모님, 형제들 모두 만나시기를 빌면서 착하게 살라시던 평소 가르침을 잊지 않고 살겠습니다.

 

베풀어주신 은혜에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귀댁의 대소사도 꼭 알려주시어 기쁨과 슬픔을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 바랍니다. 선생님의 건강과 댁내 제절의 건승을 기원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20. 11. 19.

고애자 이 우 기(경상대 홍보실장) 삼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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