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첫 휴가

by 이우기, yiwoogi 2020. 11. 8.

824일 월요일 그 무덥던 여름날, 가족과 함께하는 화려한 입소식도 없이 박박 깎은 머리를 등산모에 감추고 기간병에 등 떠밀려 공군교육사령부로 들어갔던 녀석이 75일 만에 첫 휴가를 나왔습니다. 기본군사훈련단 5, 특기학교 4주 교육을 마치고 3훈련비행단이 있는 경남 사천으로 배속된 지 일주일 만에 나온 겁니다. 사천에 도착한 날 먼저 와 있던 다른 특기의 동기 전화를 빌려 무사 안착 소식을 전했지요. 그다음엔 집에서 보내준 자기 전화기로 가족 단톡방에 반가움의 이모티콘(그림말)을 보내주던 녀석이 드디어 첫 휴가를 나왔습니다.

 

11월 6일 금요일 아침 6시 30분에 부대에서 상관에게 신고하고 곧바로 출발한다고 알려왔습니다. 나는 이날 하루 휴가를 내었습니다. 아들 기다리는 설렘도 설렘이려니와 첫 휴가 때는 여기 저기 갈 곳도 많을 테고 이것 저것 할 일도 많으리라 싶었기 때문입니다. 출근은 하지 않았지만 일찌감치 머리 감고 옷 갈아입고 있었습니다. 첫 휴가 신고를 펑퍼짐한 잠옷 바람으로 받을 수는 없는 것 아니겠어요. 밥도 함께 먹으려고 기다렸지요. 아내는 주섬주섬 출근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구요. 6시 40분쯤 전화를 했지요. 궁금하니까요. 함께 휴가 출발하는 친구의 친구가 진주까지 태워주기로 했답니다. 버스 타고 다시 갈아 타고 시내버스 타고 오려면 제법 걸릴 텐데, 라고 생각하던 순간, 7시 40분에 누군가 우리 집 현관 비밀번호를 누릅니다. 삑삑삑삑~! 그렇죠. 이 시간에 우리 집 비밀번호를 누르는 건 우리 아들 아니면 도둑이겠죠.

 

휴가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일병 이○○, 11월 6일부터 9일까지 3박 4일 동안 휴가를 명 받았습니다.”라고 경례를 하는데, 꿈만 같았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날이 오는구나 싶었죠. 원래는 2박 3일짜리 휴가인데 자기 개인 연가를 붙여서 4일 휴가를 얻었답니다. 커다랗고 묵직한 가방에서 제 어머니 드릴 화장품을 꺼냅니다. 어머니 생일이 다가온다는 걸 아는 까닭입니다. 저에겐 ‘KOREA AF’라고 찍힌 글씨가 선명한 잠바를 건넵니다. 잠바는 좀 크네요. 과자도 나옵니다. 마법 상자 같습니다. 휴가 때 갖고 나오려고 이것 저것 준비를 착실히 한 모양입니다. 휴가증도 보여주고 군번줄도 보여주고 바지 링도 보여주고 야광밴드도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현관에 놓인 커다란 전투화가 듬직하고 믿음직합니다. 벌써 많이 닳았습니다.

 

아들과 식탁에 앉아 밥을 먹습니다. 얼마만인지요. 이윽고 편지를 건넵니다. 내가 부친 편지에 답장을 좀 쓰라고 했더니 자그마치 5장을 적어 왔습니다. 일과 끝내고 쉬는 시간에 틈틈이 적었다고 합니다. 기훈단 입소에서부터 시작된 군대생활을 다큐멘터리처럼 자세하고 꼼꼼하게 적었습니다.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내용도 있고 그나마 짬짬이 즐겁게 보낸 이야기도 있습니다. 국문학과 출신인 저는, 아들 편지의 문장들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해 보여서 또 다른 기쁨을 느낍니다. 이야기는 충주 특기학교에서 겪고 느낀 부분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다음 이야기를 궁금하게 해주는군요. 전역할 때까지 이렇게 이야기를 적어 놓으면 참 훌륭한 ‘공군일기’가 될 것 같다는 생각도 잠시 했습니다.

 

식사 후 좀 쉬었습니다. 잠을 자라고 했는데, 잠은 오지 않는 모양입니다.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신 할머니 면회를 갔습니다. 면회는 한 사람에게만 허용됐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엄격해진 출입 통제 때문입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눈을 뜨지도 못하고 말도 하지 못합니다. 손자가 군대 간다고 인사 드리러 갔을 때 용돈을 쥐어주며 잘 다녀오라시던 할머니는 손자의 첫 휴가를 의식도 없는 상태에서 맞이하셨습니다. 아들은 눈시울이 붉어져서 나왔습니다. 할머니 귀에 대고 “할머니, 저 휴가 나왔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고 하는군요. 할머니는 알아들었을까요 못 알아들었을까요. 참 슬프고 안타까워서 눈물이 납니다. 우리 어머니는 저렇게 운명하시면 안 되는 분이신데….

 

그다음엔 녀석이 다니던 학교 캠퍼스를 가보기로 했습니다. 캠퍼스엔 느티나무를 비롯한 온갖가지 나무들이 늦가을의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아, 나 없어도 세상은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잘 돌아가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군요. 학교에 간 김에 안경점에 들러 안경을 새로 맞추었습니다. 입대할 때 갖고 간 건 안경테가 좀 크고 넓어서 모자를 쓸 때 걸리적거릴 뿐만 아니라 구보를 할 땐 콧잔등 위에서 들썩거려서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안경을 주문해 놓고는 바로 아래층에 있는 휴대폰 가게로 갔습니다. 군인요금제를 신청하면 데이터를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군대에서는 와이파이 사용이 엄격히 금지돼 있습니다. 보안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이렇게 태워 다니면서 몇 가지 일거리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아들 첫 휴가 핑계 대고 하루쯤 휴가를 낼 만하다 싶습니다.

 

점심 때가 되었습니다. 뭘 먹고 싶으냐 물었더니 대학 후문 쪽에 있는 리조또 가게를 가자고 합니다. 대학 다니던 1년 반 동안 몇 번이나 갔을지 모를 그 가게로 갔습니다. 나는 이런 건 잘 안 먹습니다. 리조또를 사 들고 나오는데 녀석의 친구 한 명이 잠옷에 겉옷만 걸친 채 나타납니다. 리조또 기다리는 동안에 카톡으로 근처에 와 있다고 했더니 금세 달려나온 겁니다. 친구가 좋긴 좋은가 봅니다. 우리는 집으로 와서 아들은 리조또를, 나는 라면을 먹었습니다.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는 것이죠. 아들은 아버지가 끓인 라면을 몇 젓가락 먹습니다. 그러고선 저는 오후에 늘어지게 잤습니다. 녀석은 노트북을 켜 놓고 게임을 하는 듯했습니다. 자고 일어나선 맞춰 놓은 안경 찾으러 학교에 한번 더 다녀왔구요.

 

저녁엔 큰형님이 조카 첫 휴가 나온 걸 축하한다면서 같이 삼겹살 구워먹자 하여 달려갔습니다. 나는 큰형님의 아들들이 군대 갔다 오는 동안 뭘 해준 기억이 없는데, 큰형님은 이렇게 세심하고 인자하십니다. 큰형님 내외, 우리 부부와 아들, 제수씨까지 여섯이 모여 저녁을 잘 먹었습니다. 술을 잘 못하는 아들은 금세 얼굴이 벌개집니다. 서리에 물든 단풍 같습니다. 홍당무가 ‘아이고, 삼촌’이라고 만세를 부를 만큼 발갛네요. 제 엄마를 닮은 술 실력이 마음 놓이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합니다.

 

휴가 둘째 날은 안 깨웠습니다. 실컷 자게 내버려두고 우리는 우리끼리 볼일 보러 나갔습니다. 본가에 가서 큰형님과 밀린 일을 처리했습니다. 동생까지 모여 짬뽕과 탕수육과 빼갈을 시켜 먹었습니다. 아들은 그즈음에 일어나 버거킹 주문하여 싹 비우고 나갔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대학 수업이 비대면으로 바뀐 뒤 집에서 어지간히 시켜 먹던 버거킹이 그리 그리웠나 봅니다. 저녁엔 세 가족이 집에 모여 치킨나라 피자공주를 주문했습니다. 낮부터 술에 취해 있던 저는 아들과 마주 앉아 맥주 두 깡통 비웠습니다. 아들도 하나, 아내도 하나 사이좋게 건배했습니다. 이런 자리가 얼마 만인지 아득하기만 합니다.

 

아들의 이야기는 무척 재미있습니다. 기훈단에서부터 휴가 나오기까지 있었던 여러 이야기를 두서 없이 하나씩 풀어내는데, 이 녀석이 원래 이렇게 수다쟁이였던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무엇 잘못해서 얼차려 받은 이야기, 분대장으로서 행군할 때 앞장선 이야기, 저녁 점호 시간에 부모님의 인사말에 아버지가 나와서 깜짝 놀란 이야기, 양쪽 팔목이 아파서 힘들었던 이야기, 그 고통 때문에 유격훈련에서 잠시 열외됐는데 그런 사정을 알면서도 뭐라고 하던 조교가 미웠다는 이야기, 여기 저기 거기 밥맛 이야기 등등 가만히 놔두면 밤새도록 이야기가 끝도 없을 듯합니다. 원하는 특기를 배정받고 원하는 자대를 가기 위해 고3 수험생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익혔다는 이야기에서는 괜스레 제 눈시울이 적셔졌습니다. 그런 것도 모르고, 그런 걸 뻔히 알면서 편지를 쓸 때마다 열심히 노력하여 꼭 원하는 자대를 가라고 다그친 제가 미안해졌습니다. 아들의 무용담은 끝이 없습니다. 만약 군대를 가지 않았다면 무슨 이야기를 하면서 가족끼리 밥을 먹을지 걱정될 정도입니다.

 

아들 얼굴만 봐도 배 부르고 기분 좋고 즐겁습니다. 그 아들이 쉴새 없이 종알대는 모습을 바라보노라니 세상 시름을 잊을 지경입니다. 불콰하게 취하여 잤습니다. 우리 아들이 저 건넌방에 있다고 생각하니 꿈자리마저 평온했습니다. 녀석은 잠자리에서 군대 꿈을 꾸지 않기를 빌어주었습니다. 보통 남자들 군대 갔다 오면 군대 꿈 많이 꿉니다. 그중 가장 무서운 악몽은, 분명히 나는 제대했는데도 필요없다면서 막무가내로 군대로 끌고 가려는 상사를 만나는 꿈이죠. 40살 즈음까지 그런 꿈을 꾼 것 같습니다. 첫 휴가 나온 아들이 제 방에서 잠에 취해 있을 때 군대귀신이 다녀가지 않기를 그저 빌어주었습니다.

 

그러고선 일요일이 되었습니다. 휴가 사흘째이지요. 오늘은 아내의 생일입니다. 미역국은 아내가 직접 끓였고 생선 굽기, 달걀 굽기 같은 건 제가 했습니다. 밥상을 차리는 동안 “아들아, 어머니 생신이시니 일어나서 다 함께 아침 밥 먹자”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릅니다. 군기는 다 어디로 가버렸는지 도무지 일어날 줄을 모릅니다. 아내와 내가 번갈아가며 부르고 불러 겨우 깨워 8시쯤 아침밥을 먹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또 잡니다. 내버려두었습니다. 휴가 나온 집에서 무엇이든 제 하고 싶은 걸 하게 내버려두었습니다. 오늘 지나고 내일이면 다시 부대로 돌아가 틀에 박힌 답답한 생활을 할 것인데, 무엇이 모자라고 무엇이 아쉬워서 이것 저것 시키겠습니까. ‘그저 마음대로 해버려라’ 싶었습니다.

 

11시 넘어 부시럭부시럭 일어나더니 옷 갈아입고 나갔습니다. 친구 만난다고 합니다. 이럴 때는 부모보다 친구가 더 좋은 법이지요. 조심조심 다니고 특히 코로나19 감염병에 노출되지 않게 사람 많이 모이는 곳 조심하라고 일렀습니다. 마스크 꼭 끼고 다니라고 했습니다. 밥 굶지 말고 잘 먹고 잘 돌아다니다 해 지면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너무 지나치게 이래라 저래라 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예 소 닭 쳐다보듯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 수 없으니 가장 기본적인 것만 잘 하라고 일렀습니다. 이렇게 하면 되는 것이겠지요.

 

오늘 저녁은 집에 들어와서 먹을지 먹고 들어올지 묻지 않았습니다. 알아서 하겠죠. 먹고 싶은 것 있으면 언제든 무엇이든 이야기하라고 해 두었으니 때 되면 말하겠지요. 바깥에서 밥 먹기 마뜩찮고 집에서도 그저 그러하면 뭐라도 시켜 먹자거나 나가서 먹자고 하겠죠. 그러면 오늘만큼은 무엇이든 하자는 대로 해줄 겁니다. 내일이면 다시 부대로 돌아가야 하니까요. 3박 4일 길지도 짧지도 않은 첫 휴가의 마지막 저녁이니까요.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아들의 첫 휴가이니까요. 더군다나 내일은 나도, 아내도 출근을 해야 하는지라, 제 혼자 집에 있다가 이것저것 챙겨서 돌아갈 때의 쓸쓸함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함께 휴가 나온 동기들 넷이 사천읍에 있는 식당에 모여 함께 밥 먹고 귀대하기로 했다는 것이죠. 이 녀석들 벌써 의리를 알고 전우애를 배우는가 봅니다. 녀석들, 참~!

 

2020. 11. 8.(일)

이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