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3매’라는 말이 있다. 산청에서 이름난 3가지 매화나무 또는 매화라는 뜻이다. 남사예담촌 하씨고가에 있는 원정매(元正梅), 단속사지에 있는 정당매(政堂梅), 산천재에 있는 남명매(南冥梅)가 그것이다. 매화는 음력 1월말, 양력 2월말부터 피기 시작한다. 은은한 향기가 묵향과 비슷하고 기품있는 모습이 선비의 기상을 닮았다 하여 예로부터 사군자(四君子; 매난국죽)의 하나로 친다. 선비들은 마당이나 뒷산, 텃밭 가에 매화나무를 심어놓고 그윽한 향기를 즐겼다. 산청3매는 산청의 3대 선비들이 심어놓은 것으로 가장 오래된 원정매가 670년, 그다음 정당매가 640년, 남명매가 450년 이상 되었다고 한다. 이 나무들의 수령을 기록한 게 20여 년 전이므로 지금은 여기에 스무 살을 더해야 맞을 것이다.
오래 전부터 산청3매를 하루에 돌아보는 꿈을 꾸었다. 엄동설한 겨울이 지나고 남녘에서 봄바람이 불어오면 괜스레 마음이 들뜨고 기분이 황홀해졌다. 온 세상에 매화가 지천으로 피어 향기를 내뿜었다. 아파트 화단에도 매화요 길을 나서도 매화요 관광지에 가도 매화요 어느 한적한 식당에 가도 밥상 위에 매화가지 하나를 꺾어 물 잔에 꽂아두었다. 매화의 계절인 것이다. 하얀 매화, 붉은 매화, 파란 매화가 손짓하는 꿈도 꾸었다.
매화를 제대로 감상할 만한 수준이나 경지에 이른 건 아니다. 아주 어릴 적 보았던 영화 <일지매(一枝梅)>를 떠올렸다. 홍길동이나 임꺽정처럼 나쁜 놈들을 물리치고 그 자리에 매화가지 하나를 남겨놓고 홀연 사라지던 일지매의 활약에 매혹 당했었다. 한참 자란 후에는 ‘매화는 평생을 추위에 떨지언정 향기를 팔지 않는다’라는 시구를 어디에선가 보고는 감탄한 적 있다. ‘매한불매향(梅寒不賣香)’이 그것이다. 아무리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것에서 불의에 굴하지 않겠다는 선비정신을 연상하는 듯하다. 최근에는 진주시 평거동 진주문고 5층 ‘선강루(仙康樓)’에 차 마시러 갔을 때 뜰에 핀 매화 향기에 아찔했던 것이다.
구름 많이 낀 3ㆍ1절 아내와 함께 길을 나섰다. 햇살이 환하게 내리비추어 주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오늘을 놓치면 올해도 산청3매를 만나는 건 어려울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하였던 것이다. 아침 든든히 먹고 오전 11시 시동을 걸었다. 만나는 순서는 원정매, 정당매, 남명매이다. 국도2호선 산청 가는 길에서 덕산 쪽으로 방향을 틀어 순서대로 만날 수 있다. 산청3매를 들어본 적 있고 만나보고 싶었으나 쉽지 않았다. 남명매는 여러 번 보았으나 나머지 둘은 본 적이 없다. 마음은 그만큼 설레었다. 차 안 공기도 매향으로 가득한 듯했다.
남사예담촌에 차를 세웠다. 먼저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남사예담촌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제1호’로 선정된 곳이어서 굳이 원정매를 보지 않더라도 볼 게 아주 많은 곳이다. 동네 전체가 관광자원이다. 국보 1점, 국가문화재 1점, 경남지방문화재 7점이 있는 곳이다. 197가구에 387명이 산다는데 실제 주민은 별로 만나지 못했다. 단감ㆍ곶감ㆍ딸기ㆍ수박ㆍ메뚜기쌀이 특산물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최씨고가, 사양정사, 이씨고가, 하씨고가, 이동서당, 이사재 등 꽤 오래된 집들이 즐비하다.
원정매는 얼굴을 쉽게 보여주지 않았다. 산청3매 가운데 유일한 홍매(紅梅)여서 쉽게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다.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난 뒤에 ‘그럼 원정매는 어디에 있지?’라고 갸우뚱할 즈음 동네 안내 지도를 만났다. 지도를 어렵사리 해석하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원정매는 하씨고가에 있었다. 하씨고가를 찾았다. 담장 안에 발갛게 피어난 매화가 보였다. ‘저것이로구나!’ 감탄사를 내뱉을 즈음, 하씨고가의 대문이 잠겨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담장 너머로 매화의 끄트머리만 사진에 담았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쉬운 마음을 가득 안은 채 길을 걷다가 다시 하씨고가 원정매로 가는 이정표를 만났다. 나와 아내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좁은 골목길을 걸었다. 100m쯤 들어가니 하씨고가를 다시 만나게 된다. 뒷문이라고 할까. 그렇게 원정매를 만났다. 원정매 붉은 꽃들이 제법 피었다. 이번 주 중반이나 주말에 만개할 듯했다. 그렇지만 원정매의 위용과 의젓함을 느끼기엔 모자람이 없었다.
원정매는 진양하씨 집안의 매화나무이다. 사직공파 하즙(河楫)이 심은 것으로, 원정매라는 이름은 하즙의 시호(諡號)가 원정이었던 데서 비롯했다고 한다. 수령은 650년이 넘은 것으로 우리나라 매화나무 가운데 가장 오래된 나무라고 한다. 원목은 2007년 고사하고 후계목이 뿌리에서 자라고 있다. 하즙은 누구인가. 하즙(河楫, 1303~1380)은 고려 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득제(得齊), 호는 송헌(松軒)이다.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로 치사하고 진주군(晉州君)으로 책봉되었다. 아버지는 하직의, 어머니는 진주정씨이다.
하씨고가 원정매에는 ‘원정공 매화시’가 있다. 시는 이렇다. “집 양지 일찍 심은 한 그루 매화/ 찬 여울 꽃망울 나를 위해 열었네/ 밝은 창에 글 읽으며 향 피우고 앉았으니/ 한 점 티끌도 오는 것이 없어라.”
원정매를 보고 돌아 나오다가 또 다른 나무를 한 그루 만났다. 바로 ‘하씨고가의 감나무’이다. 수령은 620년이 넘었다. 고려말 원정공 하즙의 손자 하연이 어릴 때 어머니에게 홍시를 드리기 위해 심은 것으로 역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감나무라고 한다. 토종 반시감으로 산청 곶감의 원종이기도 하며 현재도 감이 열린다고 한다. 감나무 밑동은 특이하게 생겼다. 키는 그리 높지 않았으나 세월을 단단하게 붙들고 있는 힘이 느껴졌다. 원정매를 본 뒤 감나무까지 본 건 행운이라고 해야겠다.
남사예담촌에는 원정매만 있는 게 아니다. 남호정사의 이씨매(150년)를 비롯해 선명당의 정씨매(150년), 이사재의 박씨매(80년) 들이 있다. 그러니까 당시 원정매가 500년 이상 수령을 자랑하며 명품 매화나무로 자리매김하자 동네 선비들이 너도나도 매화를 심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윽하고 은은한 향기와 품격 있는 모습은 선비의 지조를 상징하는 것으로 일컬어졌기 때문이리라.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나온 우리는 지방도로를 가로지르는 구름다리를 건너 남사예담촌 앞산(당산)에 위치한 남학정 전망대로 올랐다. 마을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저 멀리 면우 곽종석생가, 파리장서탑, 3ㆍ1운동기념공원 등도 보이는 듯했으나 하나하나 돌아보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었다. 우리는 갈 곳이 정해져 있었다. 오늘은 계획대로 움직이기로 한 날이니까. 면우 곽종석생가, 파리장서탑, 3ㆍ1운동기념공원 들이 남사예담촌에 있게 된 것은 원정매나 이씨매, 박씨매처럼 선비의 지조를 상징하는 매화나무 덕분은 아니었을까 막연히 짐작해 보았다.
단속사지 정당매를 찾았다. 단속사지는 산청군 단성면 운리에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졌던 절인데 지금은 절은 온데 간데 없고 동서 삼층석탑만 우뚝 서 있다. 정당매는 삼층석탑 뒤쪽 숲속에 있다. 정당매는 통정공 회백(通亭公 淮伯) 선생과 통계공 회중(通溪公 淮仲) 형제가 사월리(沙月里) 오룡(五龍)골에서 태어나 유년시절 지리산 자락 신라고찰 단속사(斷俗寺)에서 수학할 때 심은 매화나무라고 전한다.
그 후 통정선생 벼슬이 정당문학(政堂文學) 겸 대사헌(大司憲)에 이르렀다 하여 후대인들과 승려들이 이 매화나무를 정당매라 불렀다. 대략 630여 년 전의 일이다. 630년이라고 밝힌 해가 2003년이니 올해는 647년은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 매화나무는 1982년 11월 10일 경상남도 보호수 12-41 제260호 지정됐다. 정당매 옆에는 ‘정당매각’이라는 누각까지 세워져 있다. 정당문학은 고려시대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의 종2품 관직이다. 그럼 중서문하성은? 모르겠다. 아무튼 높은 벼슬이겠지.
단속사지 입구에는 남명 조식 선생의 시비가 있다. 제목은 ‘유정산인에게 준다(贈山人惟政)’라고 하는데 깊은 사연이나 뜻은 모르겠다. “꽃은 조연의 돌에 떨어지고/ 옛 단속사 축대엔 봄이 깊었구나/ 이별하던 때 잘 기억해 두게나/ 정당매 푸른 열매 맺었을 때”라고 한다. 여기서 ‘유정’은 사명대사(유정대사)이고 ‘조연’은 단속사 앞에 있었던 작은 연못이라고 한다.
정당매는 노거수로 수세(樹勢)가 좋지 않아 2013년 가지의 일부를 접목으로 번식하여 2014년 완전 고사된 정당매 옆에 후계목을 심어 관리하고 있다. 2014년 3월 30일 당시 산청군수가 적어놓은 팻말을 보고 알았다. 엄마 나무가 죽고 아들 나무가 이제 그 뒤를 잇고 있는 것이다. 원정매도 그렇다.
단속사지는 그 역사적 의미 등을 생각해 볼 때 너무 홀대받고 있던 절이다. 동서 삼층석탑 말고는 이곳이 절이 있던 곳이라는 흔적도 없었다. 남명 선생의 시비도 단속사지 입구에 볼품없이 버려지다시피 해 있다. 이곳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 곳인지 설명해주는 안내판 하나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다행스럽게 현재 단속사지를 발굴하는 사업이 진행 중인 듯하다. 통일신라시대 찬란했던 불교문화의 흔적을 찾아내어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쉽지 않겠지만, 가능하면 그 시절 그 모습대로 재건해 주면 좋겠다. 동서 삼층석탑이 마치 경주 감은사지 삼층석탑과 비슷하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전설과 역사가 잠들어 있을 듯하여서이다.
단속사지에서 산천재로 발길을 옮길 차례다. 시간은 어느덧 12시 30분을 넘어가고 있다. 뱃속에서 야릇한 소리가 난다. 하지만 우리는 산청3매를 모두 일람한 뒤 점심을 먹을 작정이라서 참을 수밖에 없다. 단속사지에서 잠시 내려오다 보니 백운계곡으로 곧장 이어지는 길이 있다. 이 주위를 한두 번 다녀본 터라 웬만한 길은 알겠는데 이 길은 처음이다. 덕분에 한적한 시골길을 달렸고 시간도 단축했다. 가는 길에 어느 집 귀퉁이에 활짝 핀 홍매를 보면서 잠시 감탄한 건 덤이다.
남명 조식 선생에 대해서는 길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산천재는 남명선생이 말년(61세 때라고 한다)에 지리산 천왕봉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지은 집이다. 산천재 마당에 매화나무를 심었다. 기품 있는 선비의 기상을 잘 나타냈다고 한다. 이 매화나무를 일러 남명매라고 한다. 남명 조식 선생의 호를 땄다.
남명매 아래에는 ‘우연히 읊다(偶吟)’라는 제목의 남명의 시비가 있다. 내용은 이렇다. “작은 매화 아래서 책에 붉은 점 찍다가/ 큰 소리로 요전을 읽는다./ 북두성이 낮아지니 창이 밝고/ 강물 넓은데 아련히 구름 떠 있네.”
남명매와 관련하여서는 뜻깊은 이야기가 있다. 진주시에 위치한 두 국립대인 경상대학교와 경남과학기술대학교가 ‘연합대학 구축을 통한 대학통합’을 논의하고 있던 가운데, 경남과학기술대학교 교수가 몇 년 만에 어렵게 발아에 성공한 산청 남명매 후계목을 경상대학교에 기증하여 화제가 되었던 것이다.
경남과기대 강호철 교수는 2018년 4월 9일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관계자 등 1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남명매(南冥梅) 후계목’을 남명학관 앞에 심었다. 이날 심은 후계목은 강호철 교수가 수년간의 실패 끝에 남명매 발아에 성공한 5년생 40cm 높이의 매화이다. 강호철 교수는 2013년 어렵게 씨앗 하나를 발아시키는 데 성공했고, 이를 자신의 개인 온실에서 4년 간 키우다가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에 기증했다. 강호철 교수는 이 외에도 원정매 발아에 성공하여 2017년 진양하씨 대종회에 기증하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 강호철 교수는 “남명매는 아직까지는 해마다 봄이면 꽃을 피우고 있지만 언제 수명을 다할지 걱정되는 게 사실이다. 오랫동안 후계목 발아를 위해 노력했지만 뜻대로 잘 되지 않다가 5년 전 남명매의 씨를 발아시키는 데 성공했다.”라고 말하고 “우리 지역에서 남명학연구의 본산이라고 한다면 경상대학교 남명학관과 남명학연구소가 가장 먼저 떠올라 이번에 기증하게 되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아직은 남명매는 꽃을 잘 피우고 있다. 화려하거나 웅장하거나 멋들어진 건 아니지만 봄을 맞이하여 꽃을 피우고 머지않아 열매(梅實)를 맺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 우리의 마음을 미리 알기라도 하는 듯 벌들이 날아와 웽웽거리며 암술, 수술을 더듬기 바쁘다. 아, 벌들은 정당매에서도 원정매에서도 많이 보았다. 벌들의 날갯짓 소리 덕분에 이 매화들의 역사는 아직은 끝나지 않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산청3매 가운데 원정매는 원래 나무는 말라 죽고 뿌리 밑동에서 후계목이 자라나 꽃을 피우고, 정당매는 접목을 하여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나마 남명매는 아직 원래 나무가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이 또한 콘크리트로 마감을 해주는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대단한 생명력이다. 죽어도 죽을 수 없는 선비 정신의 표상이라고 할까.
산청3매 탐방은 끝났다. 가는 곳마다 사람이 많지 않았다. 단속사지는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 듯했다. 단속사지 정당매 주변에는 정당매 후손으로 짐작되는 어린 매화나무 들이 여러 그루 서 있다. 저마다 하얀 꽃을 피워 벌들을 유혹한다. 그 주위는 정리한 흔적이 없이 그저 자연 속에 몇 그루 매화가 저마다 제 맘대로 피었다가 지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나중에 매실 열릴 즈음에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 단속사지 발굴 사업이 끝나면 장차 여기는 어떻게 얼마나 변할지도 궁금하다.
산청3매를 탐방한 뒤 내친걸음이라 덕천서원도 둘러보았다. 해마다 반드시 한두 번은 가는 곳이다. 덕천서원 앞 은행나무의 위용을 올려다보았다. 여름이면 피어날 백일홍도 살펴보았다. 서원 여기 저기 우뚝 선 나무들과 발아래에서 뾰족뾰족 솟아나는 봄풀들도 보았다. 그리고 덕산 장터 귀퉁이 어느 으리으리한 밥집으로 가서 청국장 비빔밥을 먹었다. 즐겁고 뜻깊은 나들이는 밥집 주인장의 불쾌한 언사 때문에 완전히 망치고 말았다. 아내는 맛있게 먹던 밥을 남겼고 밥집을 나서면서 “잘 먹었습니다.”라는 인사말을 100만년 만에 처음으로 일부러 하지 않았다. 그 까닭은 말하지 않는다. ‘선비의 고장’ 산청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밥집이어서 다시는 발걸음하지 않을 것을 다짐해 둔다.
2020. 3. 1.
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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