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비는 내렸다. 코로나19로 목숨을 다한 이의 가족들 눈물 사이에 내렸다. 하나님이란 없음을 시궁창 입으로 증명한 아무개 갇힌 좁은 방 창가에 내렸다. 열 댓 글자에 꼭 틀린글자를 적어넣는 정치인들의 검은 우산 위에 내렸다. 오직 목표만을 향해 맹목으로 달려드는 구시대 유물 녹슨 의식 위에 내렸다. 내리기만 할 뿐 씻어주지는 못했다.
그 사이에 꽃은 피었다. 밤 도와 의심자와 확진자와 사망자 숫자 세는 이의 충혈된 눈에 피었다. 손님 끊긴 밥집 술집 주인에게 한두 달 집세 깎아주는 건물주 여린 마음에 피었다. 보름도 그 이상도 고독에 갇혀 있겠노라 다짐하며 묵묵히 체온 재는 아이들 어른들 마음에 피었다. 피기만 했을 뿐인데 따뜻해졌고 뭉클해졌다.
꽃은 비 속에 아름다웠다. 어둠 살짝 밀어내며 흰꽃은 희게 피었고 빨간꽃은 빨갛게 피었다. 꽃을 꽃 아니라 우기는 세력과 흰꽃을 붉다 억살지는 세력 앞에 당당히 아름답게 피었다. 빗물 머금어 더욱 영롱하고 투명하게, 피고 또 피었다. 죽은 이 가는 길에 서글프게 피었고 살리려는 이 오는 길에 곱게도 피었다.
2020. 2. 25.
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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