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큰들의 마당극 <최참판댁 경사 났네> (172회)를 보고
추석 연휴가 나흘이면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은 것이다. 설과 추석 연휴가 사흘씩이니 운 좋으면 주말 합쳐 닷새 쉬고 운 나쁘면 사흘 쉰다. 이걸 운이라고 해도 되는지는 모르겠다. 화, 수, 목요일 사흘 쉬게 되면 앞뒤 월, 금요일을 휴가 내고 주말까지 합하여 아흐레 정도 쉴 수도 있다. 명절 연휴가 짧으면 아쉽지만 길어도 지겹다. 아쉽고 지겨운 건 길이의 문제가 아니다. 얼마나 알뜰하게 잘 보내느냐가 중요하다. 미리 계획을 잘 잡는다면 명절 며칠 동안 가족, 친구와 함께 삶의 활력을 얻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살만 찌는 기간이 될 것이다. 옛날에는 설, 추석에는 보름까지 놀았고 그래도 세상은 망하지 않았다. 지금은 이런 것까지 나라에서 시시콜콜 정해준다. 그러면서 하루라도 길어지면 나라 망할 듯이 눈알을 부라린다. 사흘 연휴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이 세상 모든 노동자들에게 미안하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일요일에는 하동으로 가기로 했다. 이유는 단 하나다. 극단 큰들이 <최참판댁 경사 났네> 172번째 공연을 하동에서 하기 때문이다. 3ㆍ1절 100주년 특별공연과 그다음 주 공연을 본 뒤로는 처음이다. 이상하게도 올해 4~5월에는 이사와 동문회 때문에 공연장을 자주 찾지 못했다. 하동에서 열리는 <최참판댁 경사 났네> 공연을 노린 것에는 다른 까닭도 있다. 어른 서희 역을 맡은 최샛별 배우가 하은희 배우로 교체되기 때문이다. 몸에 귀한 아이를 가진 샛별 배우는 모든 배역에서 하차하고, 5년 동안 아이 키우느라 마당에 서지 않은 은희 배우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다. ‘대신’이라는 표현도 맞지 않다. 원래부터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으니 말이다.
추석 연휴 첫날 본가에서 어머니와 형제들이 있는 자리에서 말했다. 연휴 마지막 날엔 하동에 마당극 보러 갈 것이라고. 벌써 마당극 재미를 조금씩 알아가는 큰형이 군침을 삼켰고 어머니도 어째 볼까 하는 눈치를 보였다. 일요일 아침 어머니 전화를 받았다. 하동 갈 것이면 경로당 친구 몇 명 같이 가도 되느냐고 물으셨다. 당연하지. 큰형은 형수와 함께 함양으로 갔다가 하동으로 갈 것이라고 한다. 그 길은 제법 멀다. 페이스북을 보니 아는 사람 몇 분도 하동으로 갈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성순옥 경상대 국문학과 선배님이 출동하는 듯했고 이정희 경상대 고문헌도서관 학예사가 시동을 거는 듯했다. 토요일 다솔사에서 만난 고명정 진주YWCA 사무총장님도 하동 갈 것이라고 했다. 어머니와 친구 2명, 아내와 나 이렇게 5명이 11시에 출발했다. 가서 보니 정형상 형도 와 있었다.
뒷자리에 비좁게 앉은 할매들은 너도 나도 하동 찾았던 추억을 이야기하셨다. 언제 누구와 어디에 가서 무엇을 했다는 것을 경쟁적으로 이야기하셨다. 앞자리에 앉은 우리는 열심히 듣고 간혹 웃어주는 것으로 대화에 참여했다. 완사를 지나고 북천을 지났다. 곤명 개천에서 소라고둥 줍던 이야기며 북천 코스모스 축제 구경하던 이야기가 나왔다. 하동읍을 지나고 악양이 눈앞이다. 최참판댁에는 한번씩들 다녀가신 모양이다. 예전 텔레비전 연속극 <토지>를 봤느니 못 봤느니 안 봤느니 말씀들이 길고 걸다.
한산사로 올라갔다. 너른 악양 들판과 섬진강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 들판에는 ‘2022년 하동 야생차 세계 엑스포 유치’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너른 들판을 바라보며 안간에서 남 땅에 농사짓던 젊을 적을 떠올려 보거나 섬진강 바라보며 재첩 잡는 사람들 삶을 짐작해 보기를 바랐다. 그건 오산이었다. 어른들은 들판과 강은 대충 보고 한산사 절에 가고 싶어 했다. 어른들은 법당에 들어가 돈 놓고 절하고 법당 바깥에 선 부처님께 두 손 모아 빌었다. 자식들 모두 다 키워 놓고 80년 안팎 세월 즐기기만 해도 모자랄 판에 무엇을 더 빌고 있는지. 그런 빎 덕분에 나 같은 놈도 밥 벌어 먹고 산다고 생각하니, 그저 고맙기만 하다. 절에서 내려오는 길에 극단 큰들 가족 2명을 만났다. 지난번 산청 생초 국제조각공원과 동의보감촌에서 뵌 적이 있어서 금세 어른들을 알아본다. 어른들은 “봐도 잘 모르겠다.”라고만 하신다.
차를 세우고 식당 ‘사랑채’에 들어갔다. 최참판댁 동네 가면 사랑채에 가거나 그 건너 부부송 밀면집 가거나 맨 위에 주막에를 간다. 아래 주차장 건너 아씨국수에도 간 적 있다. 시간은 12시 20분을 지나고 있었다. 출출했다. 전날 형제간 고스톱 대회를 하면서 마신 술이 아직도 위장과 대장을 얼얼하게 한다. 아침에 직접 끓인 해장 국물을 대충 들이켰는 데도 속이 풀렸다고 할 수 없었다. 재첩국을 드시려던 어른들은 우리와 같이 메밀국수를 드시겠단다. 메밀전병과 도토리묵도 시켰다. 술은 시키지 않았다. 틀니를 낀 어른들은 메밀국수가 질기다 하였고 전병은 맵다고 하였다. 아뿔싸 했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죄송했다. 밥을 시켜 비벼 드셨고 반찬으로 나온 감자를 드셨다. 자리에 앉자마자 어머니 친구 두 분이 밥값을 내려고 숙덕숙덕거렸지만, 그건 받아들일 수 없었다. 도리도 아니고 예의도 아니어서다. 1000원 하는 얼음물도 한 병씩 사드렸다. 날씨는 다시 8월로 되돌아가고픈 듯했다. 대충 배를 불린 뒤 우리는 공연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극단 큰들 마당극 <최참판댁 경사 났네>를 보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즐거운 추억이 된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를 각색했다는 게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소설 《토지》는 1969년에 집필에 들어가 1994년에 5부 16권으로 완간한 대하소설이다. 200자 원고지 4만 장 정도다. 낙동강보다 길고 노인네 한숨보다 깊은 이 소설을 1시간 짜리 마당극으로 만들었다. 박경리를 알고 토지를 알고 최참판댁이나 서희나 길상이를 한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궁금증을 불러일으킬 만하지 않은가. 소설과 마당극의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고 응용했을지 궁금하지 않은가.
마당극 <최참판댁 경사 났네>는 토지문학제 10주년 행사 중이던 2010년 9월 25일 처음 공연했다. 햇수로 10년이다.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해마다 최참판댁에서 10~20회씩 공연한다. 9월 15일 열린 공연은 172회째이다. 이렇게 장기간 공연하도록 배려해 준 하동군이 대단하다. 소설 《토지》의 배경인 악양면 상평마을을 소설속 내용과 흡사하게 꾸며놓은 것도 대단하고, 거기서 마당극이라는 전통 연희를 10년째 공연하도록 하는 문화적 안목이 정말 대단하다. 그렇지 않은가. 최참판댁에서 172번씩이나 변함없이 관객을 만나는 극단 큰들의 은근과 끈기, 변화와 발전도 대단하지 않은가. 대단함을 만나는 곳이 최참판댁이라고 말한들 누가 뭐라고 할 것인가.
마당극 <최참판댁 경사 났네>는 남녀노소 누구가 함께 즐기는 공연이다. 그만큼 쉽고 재미있고 즐겁다. 손뼉 치고 웃고 울다 보면 1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공연을 보기 위해 경향 각지에서 몰려든다. 버스를 대절하여 어른들을 모시고 오는 안산 사람이 있다. 문학 수업 듣는 학생들의 현장 학습으로 데려오는 여수 선생님이 있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오는 머리 벗겨지고 배 나온 팔도 자식들도 많다. 3대가 함께 찾아오는 전국 가족도 흔하다. 누구든 언제든 와서 즐기면 된다. 큰들 마당극은 무엇이든 모여들게 하는 ‘블랙홀’, ‘만남의 광장’이라고 한들 누가 뭐라고 할 것인가.
하동이라는 동네는 참 신기하다. 우리나라 현대문학 최고봉인 소설 《토지》의 배경을 소설속 내용과 흡사하게 꾸며놓은 것이 신기하다. 그 동네, 즉 최참판댁이 있는 악양면 평사리를 아기자기 오밀조밀 배치하여 밥집과 기념품 가게들이 지루하지 않게 들어서 있는 것도 신기하다. 천연 재료로 염색한 목도리, 옷, 모자, 손수건, 가방 들이 가을바람에 흩날리는 것을 보노라면 그 어느 명승지 못지 않은 흐뭇함이 배어난다. 고소산성에 올라보면 너른 악양 들판과 섬진강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어떤 이는 숨 막힌다 하고 어떤 이는 숨이 탁 트인다고 한다. 이율배반이 한 곳에 똬리를 틀고 있다고 할까. 동정호와 악양루는 중국 어디에 있는 것을 베껴온 것이겠지만, 악양 들판의 넓이와 깊이에 질식할 듯한 사람은 잠시 숨고르기를 할 수 있겠다. 부부송 두 나무는 멀리서 보든 가까이에서 보든 그냥 그 자체로 기념품이다. 관객이 눈에 간직하고 가슴에 간직하고 사진에 간직하는 기념품이다. 부부가 보든 연인이 보든 가족이 보든, 두말없이 지난 날과 지날 날을 생각게 하는 묘한 힘이 있다. 하동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벚꽃이 찬란하고 배가 향긋하며 꽃게탕이 얼큰하다. 녹차는 깊고 매실은 달고 대봉감은 크다. 재첩은 새첩다. 이런 갖가지 것들이 서로 얽히고 섞이고 배려하고 부추기며 느릿느릿 울긋불긋 알록달록 향기를 뿜는다. 그런 동네에서 우리네 전통 연희 양식인 마당극 한 편을 보노라면 오감(五感)이 열리고 삼대가 함께 웃고 백이면 백, 천이면 천이 모두 감동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돼 있다. 가 보면 안다.
마당극 <최참판댁 경사 났네>는 1부와 2부로 짜여 있다. 1부는 길놀이와 함께 평사리 최참판댁으로 가는 길목 용이네 집 앞에서 펼쳐지는 놀이가 중심이다. 소설 《토지》 속 내용이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2부는 관객과 배우들이 그대로 최참판댁 안채 마당까지 걸어가 자리를 잡은 후 진행된다. 나는 어머니와 친구분들의 사정을 생각해서 1부는 보지 않았다. 우리 옆에 성순옥 선배님 가족이 앉고, 그 옆에 이정희 선생님 가족이 앉았다. 10분 남짓 진행되는 1부를 보아야만 2부가 더 재미있는데 아쉬웠다. 어쩔 수 없다. 꾀를 냈다. 식당에서 밥 시켜 놓고 기다리는 동안, 예전에 찍어 놓은 1부 동영상을 스마트폰으로 보여 드렸다. 할매들은, 그러나, 그런 데 관심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2부만 보았는데 만족해 하셨다. 이분들은 최참판댁의 집안 사정과 조준구, 서희, 길상 등의 갈등구조에 대해서는 깊이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마당극을 보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신 듯했다. 순간순간 드러나는 웃음 요소에 매료되었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이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가운데 어른 서희로 등장한 하은희 배우는 눈을 번쩍 뜨게 했다. 지난해 봄부터 올해 3월까지 아홉 번 공연을 본 나는 어른 서희는 당연히 최샛별 배우라고만 생각했다. 하은희 배우는 이번에 처음 등장한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하은희 배우는 지금 류연람 배우가 열연 중인 임이네를 맡아 수많은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킨 바 있었다. 아무튼 하은희 배우가 가마에서 내릴 때, 조준구를 노려볼 때, 일본군 장교와 실랑이를 할 때 번번이 등골이 오싹하거나 안면 근육이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 배역에 충실하게 몰입하는 하은희 배우의 연기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큰들 마당극 사진을 가장 잘, 가장 많이, 가장 열심히 찍는 곽철영 선생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에다 “5년 쉰 배우 같지 않다. 조준구 또는 일본군을 향해 독기를 내뿜을 때는 등골이 오싹했다. 등등 동지(길상)와 결혼할 때는 수줍은 색시 모습 그대로였다. 헤어진 남편과 재회할 때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것도 보았다.”라고 썼다. 진심이다.
큰들 공연은 10년이 지나도록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지만 변하는 것도 많다. 지난해 공연 때 하동 악양초등학교 박채린 어린이가 어린 서희 역을 했는데 그사이에 김연아 학생으로 바뀌었다. 일본군 장교도 이진관 배우에서 송병갑 배우로 바뀌었다. 한반도 지도로 유명한 일본군인도 이명기 배우에서 김가람 배우로 바뀌었다. 군대 간 명기 배우보다 가람 배우 덩치가 크다. 그래서 나온 말, “한반도가 넓어졌어요.” 어른 서희도 바뀌었다. 김세영 배우는 다른 곳으로 갔다. 지난해부터 올해 추석 공연까지 열 번 공연을 보는 사이에 이렇게 바뀌어 간다. 주연, 조연 배우들이 이런저런 까닭으로 바뀌다 보니 다른 배역들도 이래저래 교체된다. 자연스럽게 세대가 바뀌고 덩달아 극 내용도 조금씩 바뀌어간다. 큰들의 역사가 무겁고 두터운 까닭이다. 큰들 배우들 연기와 연출가 조력과 감독들 지도력이 나날이 다달이 해해연년 더욱 성장하는 까닭이다.
‘변하는 모든 것은 당당하다’(진주청년문학회 1994년 문집 제목)고 했다. 고인 물은 썩는다고 했다. 마당극 공연을 2년 동안 열심히 쫓아다니다 보니 그 평범한 진리를 알겠다. 눈앞에 다가오는 어쩔 수 없는 변화를 외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변함없이 오랫동안 이어져 온 것은 전통과 역사라는 창고에 쟁여 넣고 다시 새 옷을 갈아입는다. 어쩌다가 예상하지 못한 갑작스런 변동이 생기더라도 큰들은 큰들이라서 아무렇지도 않게, 달라진 듯 달라지지 않은 작품을, 달라지지 않은 듯 달라진 작품을 우리들에게 선보일 것이다. 그런 믿음이 지난해와 올해 사이에 아주 두터워졌다.
함양으로 갔던 큰형이 공연 시작한 지 10분도 더 지나 도착했다. 주차할 데가 없어 뺑뺑이를 돌다가 겨우 공연장을 찾았다. 큰형은 극단 큰들 공연 가운데 <오작교 아리랑>, <효자전>, <남명>, <최참판댁 경사 났네>를 보았다. 어떤 작품은 두세 번 보았다. <역마>가 11월에 하동 화개장터에서 열리면 꼭 모시고 가야겠다. 어머니와 친구분들은 내 차보다 너른 큰형 차를 탔다. 구례로 가다 보면 재종형이 가게를 열어놓고 재첩국수를 파는데, 어머니는 거기를 꼭 가 보고 싶으셨다. 시간에 쫓긴 나는 진주로 달려오고 큰형은 어른들 모시고 재종형 가게에 가서 재첩국수 2개, 재첩정식 3개, 구례 막걸리 3통, 재첩회무침 한 접시를 나눠드셨다. 재종형은 어머니 드시라고 복분자 진액(에키스)도 주셨다. 재종형이 회무침과 막걸리 값은 계산에서 뺐더라고 한다. 결국 어머니 소원은 큰형이 풀어드렸다.
2019. 9. 16.
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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