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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큰들 마당극 보러 가기

아들과 함께 만난 남명

by 이우기, yiwoogi 2019. 9. 11.

마당극 <남명> 사천 공연을 보고

 


항구도시 삼천포가 내려다보이는 사천문화예술회관에 도착한 것은 오후 530분쯤이었다. 조수석에는 다 큰 아들이 뒤로 기대어 코를 골고 있다. 방학 내도록 늦잠 자던 녀석이 개학한 이후 아직도 적응 중인가 보다. 끼니를 제대로 때우기엔 배가 덜 고프고 그렇다고 공연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도 그렇고 하여 근처 편의점으로 갔다. 구운 달걀과 빵으로 요기를 했다.

 

저녁 7시는 문화예술 즐기기에 아주 적당한 시간이다. 이른 저녁을 먹고 나들이 삼아 가족끼리 공연장을 찾는다면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삼삼오오 가족들이 모여든다. 나이 지긋한 어른도 있고 명랑한 어린이도 있다. 남명 조식 선생의 경의사상을 배우러 오는 것인지, 그저 예술회관에서 뜻깊은 공연을 한다기에 찾아오는 것인지 한 분 한 분께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렇게 밀려드는 관객들 덕분에 공연은 10분 늦게 시작했다.

 

극단 큰들 가족들도 많이 오셨다. 보통 산청 동의보감촌이나 하동 평사리 공연을 보러 가면 배우, 연출, 감독 외에는 한두 명 정도 함께하곤 한다. 이날은 예술감독을 비롯하여 대표와 가족, 공연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배우, 사무실을 지키는 단원들이 몰려왔다. “오늘은 관객 역할을 하는가 보네요?”라고 물으니 우리도 아직 공연을 한 번도 못 봤어요.”라고 말한다. 생각해 보면 그럴듯하다. 연습실에서 연습하는 것이야 여러 번 봤겠지만 그 작품을 실제 공연하는 것을 보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기껏 공연장에 가더라도 무대 뒤에서 도울 일이 많을 테니까. 특히 배우는 극 전체를 보기란 불가능하다. 동영상으로 찍은 걸 보는 것은 또 다르다.

 

나는 2019년에만 마당극 <남명>을 여섯 번 보았다. 61, 2일 산청 동의보감촌 잔디마당에서 보았다. 오후 2시에 시작하는 실외 공연이다. 629일 경상남도 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보았다. 진주 큰들 창립 35주년 정기공연 작품이다. 정기공연 작품인 만큼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했다. 816, 17일 다시 산청 동의보감촌 잔디마당에서 보았다. 더운 여름이어서 저녁 7시에 공연을 시작했다. 정기공연 이후 더 잘 다듬어진 작품이었다. 그리고 910일 사천 문화예술회관에서 보았다. 실내 공연이었다.

 



실내 공연과 실외 공연은 많이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조명이다. 실외에서는, 낮에는 햇빛에 의존하고 밤에는 고정돼 있는 전기조명에 의존한다. 햇빛은 공연하는 한 시간 동안 아주 조금 서쪽으로 걸어갈 것이므로 큰 차이를 못 느낀다. 객석에 앉은 관객 발끝에 머물던 햇빛이 무릎이나 허리까지 이동하는 시간이다. 전기조명은 배우들이 연기하는 마당을 밝게 비춰주는 정도이다. 어떤 불을 켰다가 어떤 불을 껐다가 하며 빛으로 인한 조화를 부릴 정도는 아니라는 얘기다.

 

실내 공연은 다르다. 무대 천장에 감나무 홍시 열린 듯 조랑조랑 매달려 있는 각양각색 조명들과 무대 앞쪽과 양옆에 설치해 놓은 휘황찬란한 조명들이 배우들의 연기와 내용에 따라 켜졌다 꺼졌다 하면서 극의 긴장도를 높인다. 관객들의 눈을 한쪽으로 모으기도 하고 갑자기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기도 한다. 629일 정기공연 때에도 실내 공연인 데다 경남도내 최고의 무대장치를 갖춘 곳인지라 조명의 화려한 도움으로 공연을 했다. 하지만 공간이 너무 넓었던 탓에 조명의 묘미를 마음껏 즐기지 못했다. 사천 공연에서는 무대가 그리 넓지 않고 객석 맨 앞줄에 앉은 덕분에 참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역시 마당극은 맨 앞자리가 명당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가령 남명 조식 선생이 단상에 올라가 단성소를 부르짖을 때 밝은 조명이 그에게 집중된다. 남명 선생이 목숨을 다하여 성성자 방울과 경의검을 제자들에게 남기고 뒤돌아 떠났다. 캄캄해진다. 제자들은 울부짖는다. 임진왜란이 일어난다. 암흑이던 무대가 갑자기 핏빛 붉은색으로 변한다. 0.1초 만이다. “왜놈들이 쳐들어 왔다. 임진왜란이다!”라는 외침이 터진다. 임진왜란을 알리는 외침과 동시에 붉게 물든 무대를 보며 관객들은 뭔가 심상치 않은 큰일이 일어났음을 동시에 알게 된다. 실내 공연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변화무쌍한 장난이다.

 

실내 공연과 실외 공연을 다르게 하는 또 다른 요소는 음향이다. 실내 공연에서 배우들의 목소리는 더 정확하게 전달된다. 무대 위 악사가 두드리는 북소리도 더 크게 울린다. 미리 준비한 음향들도 더 잘 들린다. 더 잘 들린다는 말은 소리가 구체적으로 들린다는 말이다. 실외 공연의 소리들이 조금 평면적이라면 실내 공연의 소리들은 입체적이다. 무대를 중심으로 전후좌우에서 들려온다. 실내에서는 지나가는 자동차, 오토바이의 엔진 소리, 경음기 소리가 없으니 더 잘 집중된다. 관객도 잡담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극을 이루는 제각기 다른 요소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마당극 <남명>에서 실내 공연과 실외 공연을 결정적으로 다르게 하는 것은 맨 마지막 장면이다. 1572년 남명 선생이 돌아가신 뒤 20년 만에 임진왜란이 일어난다. 남명의 제자들은 재산을 내놓고 가족과 생이별하며 의병장이 된다. 남명 선생이 돌아가시자 스승님!” 하며 흐느끼던 제자들이 임진왜란이 터졌다는 기별을 받자마자 의병장으로 거듭나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그 자리에서 갓을 벗고 허리띠를 차고 칼을 든다. 한 배우가 의령 곽재우! 스승님의 뜻에 따라 나라를 구하겠다!”라며 달려 나온다. 다른 배우가 합천 정인홍! 스승님의 뜻에 따라 백성을 구하겠다!”라며 달려 나온다. 의령 곽재우, 합천 정인홍을 비롯해 고령 김면, 함양 조종도, 초계 전치원, 산청 오장, 단성 이유성, 진주 이정, 거창 문위의병장들이 등장하고 칼과 군기(軍旗) 든 배우들이 군무를 추며 왜적과 싸우는 장면이 형상화된다.

 

이 사진은 극단 큰들의 페이스북에서 빌려 왔습니다.(https://www.facebook.com/keun.deul?epa=SEARCH_BOX

맨 앞줄 맨 왼쪽에서 두 번째가 내 뒤통수입니다. 신기하네요.


 실외 공연에서는 무대에 등장하는 의병장만 있다실내 공연에서는 다르다. 의병장들이 칼을 들고 뛰어나와 스승님의 뜻에 따라 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구하겠다고 외칠 때 무대 천장에서 남명 제자 의병장 이름을 적은 깃발이 내려온다. 내려오는 게 아니다. 마치 적병의 목을 떨구듯이 일시에 떨어진다. 마치 승전고를 울리듯 가슴을 쿵쿵 울리며 내려오는 것이다.

 

앞서 말한 의병장은 물론이고, 스무 명 남짓 되는 남명 제자 의병장의 호와 이름이 적힌 깃발이 내려온다. 정말 감동적이다. 한 스승의 문하에 저렇게 많은 의병장이 나왔던가 하는 데서 감동적이고, 그들이 처음부터 칼을 부리던 무장이 아니라 글 읽던 선비였다는 데서 감동적이고, 그들이 나라와 백성을 구하기 위해 제 한 몸의 안락과 평안을 뿌리쳤다는 데서 감동적이고, 그들이 사랑하는 가족과 생이별하며 생과 사를 뛰어넘는 큰 자아를 실현했다는 데서 감동적이다. 그들이 읽고 배웠던 스승 남명 조식의 경의사상을 온몸으로 실천했다는 데서 더 큰 감동이 이는 것이다. 실외 공연에서도 당연히 감동적이긴 하지만, 실내에서는 그 감동의 크기가 훨씬 커진다.

 

극단 큰들은 오는 10월 산청 선비문화연구원에서 열리는 남명선비문화축제 공연 때에는 남명 제자 의병장을 큰들 배우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출연시킬 예정이란다. 배우 아닌 일반인들이 각자 남명 제자 한 명이 되어 칼을 들고 혹은 깃발을 들고 무대에 등장할 것이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다. 마당극 처음부터 웃다가 긴장하고 웃다가 긴장하고 이렇게 끈을 조였다 늘였다 하다가 마지막에는 관객의 심장을 터뜨려 버리기로 작정한 게 아닌가.

 

마당극 남명은 잘 만든 마당극이다. 역사 속 실존인물을 형상화하는 어려움을 마당극 특유의 기법, 즉 익살, 풍자, 해학, 압축, 상징 등을 통해 잘 보여주는 수작(秀作)이다. 모두 여섯 마당을 진행하는 동안 당시 백성들의 삶, 사또 등 지배계급의 횡포, 남명의 깨도 과정, 제자들을 가르치는 모습, 스승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제자들의 모습이 아주 잘 드러난다. 이야기는 조금도 지루하지 않다. 우물이었다가 책장으로 변신하는 소품, 관객과 함께 타는 말 등 소품들도 아기자기 기상천외 재미있다.

 

이번 공연을 보면서 두 장면이 마음에 꽂혔다. 두 마디 대사가 마음을 후비고 팠다. 처음 보는 것도 아니고 처음 알게 된 말도 아니다. 평범한 말이다. 평범해서 너무나 섬뜩한 말이다. 무엇인가.

 

첫째 마당은 우물이 아니라 윗물이 맑았으면이다. 칠년대한 가뭄에도 끄떡없이 퐁퐁 솟아나는 우물, 그 우물물이나마 배불리 먹을 수 있음을 다행으로 여기는 백성들. 남명 조식 선생 댁 머슴 돌이는 우물물이 암만 좋으면 뭐해요. 저 윗물이 썩어 있으니까 백성들이 배를 곯는 거 아닙니꺼?”라고 외친다. 이 말은 마당극의 주제이다.

 

하지만 나는 그다음 김 영감의 대사가 마음에 와 닿았다. “우물물이 우리한테는 밥이고 젖줄이고 목숨 줄이고 생명수 아닌가?”라는 말이다.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 아버지 적부터 한 번도 마를 날 없이 퐁퐁 솟아나는 동네 우물물은 이들에게 밥이자 젖줄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곧 목숨이고 생명수 아닌가. 이 대사는 곧이어 벌어질, 우물물을 두고 사또와 아전 나부랭이와 마을 사람들 간의 극명한 갈등을 예고하는 대사이다. 밥이고 생명수인 우물물을 먹지 못하게 뚜껑을 막으려는 사또에 맞서 싸우다가 김 영감은 그만 맞아 죽고 만다. 목숨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역설이 벌어지는 것이다. 우물을 잃어버리는 것은 곧 목숨을 잃어버리는 것과 진배없다.

 

물은 만물의 근원이기도 하다. 물 없이 삶을 이어나갈 목숨은 어디에도 없다. <남명>이 유독 물을 강조하는 까닭으로 읽힌다. ‘앵두나무 우물 가에서 빨래하는 장면이나 맨 처음 우물굿 모두 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 읽힌다. 물을 중심으로 사람이 모여들어 시시닥 거리며 놀고 강을 중심으로 촌락을 이루어 도시로 발전시켜 나간다. 물은 그 중심에 항상 놓여 있다.

 

그다음 마음에 꽂힌 장면은 남명 선생과 제자들이 공부하는 장면에서 나오는 남명의 말 한마디이다. “너희들은 왜 공부를 하는 것이냐?”로 시작하는 질문에 나를 알고 세상을 알기 위해서 합니다.”라는 제자들의 대답이 나온다. 그렇게 몇 마디 주고받은 다음에 남명은 말한다. “그렇다. 나라의 모든 힘은 백성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이 말은 시대를 막론하고, 정권을 막론하고 언제나 통하는 진리다. 우리나라 헌법 제1조에 나오는 말이기도 하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그 평범한 사실을 외면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배운다.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왕조시대 임금들도 가뭄이나 홍수로 민심이 흉흉해지면 스스로 더욱 근면했던 것이다. 백성을, 국민을 우습게 알았다가는 어느 정권이든 말로가 아름다울 수 없음을 우리는 안다. <남명>은 그러한 진리를 가르친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물었다. 남명 선생이 사직상소를 올리는 장면이라고 했다. 그 대사를 자세히 들었느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한다.

 


피곤하여 공연 중에 잠들지 모른다던 녀석은 끝까지 열심히 관람했다. 손뼉 칠 대목에서는 손뼉 쳤다. 웃기는 대목에서는 웃었다. 대입 수학능력시험 치른 뒤인 20181213일 진주실내체육관에서 단체로 한 번 관람한 뒤 두 번째였다. 그러고 보니 아들은 나와 함께 마당극을 몇 번 보았다. 하동에서 <최참판댁 경사 났네> 31100주년 특별공연에 함께했다. 진해에서 열린 <오작교 아리랑> 직관했다. 그다지 즐기는 것 같지는 않으면서 가자고 하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따라나서 주는 녀석이 고맙다.

 

<남명>을 본 아들이, 일생을 두고 한 번도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으면서 청렴하고 정의롭게 살다 간 남명을 통하여 스스로 인생길을 생각해 보기를 바랐다. 남명의 제자들이 임진왜란 때 떨쳐 일어나 의병장이 되었듯 나라와 국민을 생각하는 마음을 어떤 식으로든 간직하기를 바랐다. 이런 마음은 정치인이나 관료만 갖는 게 아니니까. 형평운동, 진주농민항쟁, 임진왜란 진주성 전투 등이 가능하도록 한 진주정신의 뿌리가 남명 조식 선생의 실천유학에 있었음을 대충이라도 짐작해주기를 바랐다. 경의사상을 조금이라도 알았으면 싶었다. =성성자=성찰=청렴=’, ‘=경의검=실천=정의=라는 등식을 한 편의 마당극에서 모두 깨닫지는 못하더라도 그런 게 있다는 것만큼이라도 알아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당극이 끝났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배우들이 인사를 했다. 악사도 인사했다. 보통 공연 때에는 나오지 않던 두 명도 나와 인사했다. 나는 그들이 누군지 안다. 5분 사또에게는 사진 선물을 주었다. 그도 박수를 받았다. 통제영 무예 시범단원 5명도 멋지게 인사했다. 이들 덕분에 공연이 더욱 재미있었다. 마지막 군무 장면의 완성도도 훨씬 높았다. 열심히 손뼉 치고 일어났다. 객석 뒤쪽에 앉은 큰들 단원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 “정말 잘하지예?!”

 

공연장 바깥에서는 사천 사람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고 진주 사람과 사천 사람이 인사를 나누고 진주 사람끼리 여기서도 만난다며 인사를 나누었다. 배우들과 사진을 찍었다. 나는 학교 과제가 많아 밤샐지 모른다는 아들을 태우고 집으로 향했다. 사천읍에 들러 통닭 한 마리와 맥주 한 병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길은 어둡지 않았고 길은 멀지 않았다이날 공연은 경남도민예술단 시군 순회공연의 하나로 마련된 것이다. 좋은 공연을 마련해준 사천시와 사천문화재단, 경상남도, 그리고 극단 큰들에 감사드린다. 

 

2019. 9. 11.

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