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극단 큰들 마당극 보러 가기

사람 세상 큰들,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다

by 이우기, yiwoogi 2018. 9. 2.

창원큰들 13주년 정기공연을 보고

 

△공연을 시작하기 전의 무대는 늘 긴장과 설렘이다. 무대 안도 마찬가지 아닐까.


어머니는 창원에 사는 작은아들에게 전해줄 반찬들을 작은 상자 하나 가득 담아놓았다. 그 곁엔 좀 큰 통에 물김치를 가득 담았다. 묵직하다. 사랑이다. 네 아들 가운데 유일하게 진주에 살지 않는 작은아들이 늘 마음 쓰였던가 보다. 91일 창원에 갈 것인데 무엇이든 형에게 전할 물건이 있으면 미리 준비해 놓으시라고 일주일 전에 말씀드려 놓았었다.

 

설레며 기다리던 91일 오후 3시 갬

 

창원 큰들 13주년 정기공연을 일주일 앞둔 터라 마음이 몹시 설레던 중에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못 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조급증이 생겼다. 그래서 작은형 집에 반찬을 꼭 내가, 이날, 전달해야 한다는 명분을 하나 더 얹은 것이다. 어머니도 좋아하시고 작은형도 좋아하고 나 또한 손해볼 게 전혀 없는 작전 아니었겠나. 큰들을 향한 사랑이라고 해도 좋고 따뜻한 형제애라고 해도 좋겠다. 나에게 91일은 그런 의미였다.

 

아침 1030분 집을 나섰다. 본가에 가서 거실에 챙겨 놓은 반찬 상자와 물김치를 차에 실었다. 비는 오락가락했다. 고속도로를 천천히 달렸다. 바쁠 게 전혀 없는데도 괜히 서두르다가 사고라도 나면 산통 다 깨지니까. 군북나들목 지나자 빗방울은 떨어지지 않았다.

 

형에게 반찬을 전했다. 시계를 보니 점심시간이다. 근처 밥집으로 가서 형제가 마주앉고 아내가 곁에 앉아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오리탕을 비웠다. 오리를 잘게잘게 썰고 무를 어슷썰기한 뒤 매콤하게 끓인 오리탕은 끝내주었다. 반찬 심부름한 동생에 대한 형의 배려가 느껴졌다. 배를 두드리고 일어서니 1시다. 형과 좀더 노닥거릴 수도 있었으나, 나는 발길을 재촉했다. 좀더 일찍 가서 좀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이다.

 

특별한 인연으로 이어진 창원 성산아트홀

 

성산아트홀은 두 번째이다. 첫 번째는 2012년 어느 가을날로 기억한다. 작은형의 작은딸이 국악에 취미가 있었던가 보다.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가. 아무튼 이 녀석이 성산아트홀 소극장에서 발표회를 했다. 그해 여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집안이 적적하고 축 처져 있었던 터라, 우리 가족은 조카의 발표회를 핑계로 창원나들이를 했다. 발표회 잘 보고 기념사진 찍은 뒤 우리는 횟집으로 자리를 옮겨 많이 마셨다. 그런 기억이 있다.

 

창원은 나에게 좀 특별한 도시이다. 태어나서 군대 간 것 말고는 진주를 벗어난 적이 없었는데 200310월부터 20042월까지 다섯 달 동안 창원에서 산 적이 있다. 진주에서 다니던 회사를 명예퇴직하고 창원에서 새 일터를 얻었다. 새 일터는 여러 가지로 꼬이는 일이 많았고 다시 진주로 되돌아오는 데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만약 그때 새 일터가 그럭저럭 잘 굴러가는 상황이었다면, 201891일의 나는 성산아트홀에서 기념비적인 공연을 마주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130명의 시민 풍물단에 이름을 올렸을까. 아니면 창원에서 활동하는 기자가 되어 이번 공연을 취재하러 현장에 나타났을까. 창원에서도 극단 큰들을 알고 후원하고 이런저런 글도 쓰는 그런 사람이 되었을까. 창원에서 새로 얻은 일터에서 여러 가지 일이 꼬이지 않았다면 나와 큰들은 지금 어떤 사이가 되어 있을까. 운명이란 과연 있는 것일까.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에 창원큰들이 일어섰다면 2005년이겠고, 그때 나도 창원에서 살고 있었더라면 우리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운명이란 얄궂기도 하고 처연하기도 하고 맹목적이기도 하다. 

 

‘2018 창원 큰들 13주년 정기공연-130명 풍물놀이91일 오후 3시 창원 성산아트홀 대극장에서 열렸다. 나는 여러 차례, 여러 곳에서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 있다. 그 기다리는 마음을 시(노래 가사)로 만들어 보기도 했다. 누리소통망(SNS) 이곳저곳에 홍보하기도 했다. 지난해 6월 진주에서 큰들 창립 33주년 기념공연을 한 뒤 10월에 창원에서도 기념공연을 하는 것을 알고 꼭 찾아가서 보리라 다짐했다가 무슨 일로 가지 못한 데 대한 한풀이라고나 할까.

 

배우들의 분장실에서 잠시 넋을 놓고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아내와 함께 나란히 걷다가 전민규 예술감독을 먼발치에서 만났다. 공연장 앞에서는 짙은 풀빛 단체복에 하얀 이름표를 단 큰들 단원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반갑다. 안내책자를 보고 있는데 낯익은 단원 겸 배우 겸 대학후배가 우리를 데리러 왔다. 따라간 곳은 배우들의 분장실이다. 공연을 앞둔 배우들의 대기실이자 분장실을 민간인(?)이 들어간다는 건 꿈에도 생각지 못할 일이다. 전민규 감독이 일부러 초청한 것이다.

 

분장을 마치고 왔다 갔다 하는, 너무나 존경하고 사랑하는 배우들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마주할 수 있다는 건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행운이 아니다. 좀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여 몸둘 바를 모르겠더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마주치는 눈길마다 인사를 건네고 나왔다. 혹시나 방해될까 봐 저어하는 내 마음을 알는지. 나오는 길에서는 열심히 연습하고 있는 130명 풍물단도 잠시 구경했다. 잠깐이었지만 이 또한 나에게만 주어지는 행운 같아서 정말 기쁘고 뿌듯했다. 일찍 찾아간 덕분이기도 하고, 그동안 큰들에 대하여 이런저런 글을 써온 덕분이기도 할 것이다. 오래도록 잊지 못할 짧은 순간이다.

 

△배우들 분장실과 개막 전 무대 안쪽 연습 장면을 둘러보았다. 내 이마가 너무 눈부실까봐 흑백으로 처리했다.


이번 정기공연은 마당극 <오작교 아리랑><소리꾼 김용우 초청공연>, 그리고 큰들 단원, 회원, 시민, 일본 로온(勞音) 회원들이 참가하는 <130명 풍물놀이>로 구성됐다. <오작교 아리랑>전통연희로 풀어내는 왁자지껄 남남북녀 혼례 소동이다. 2015년 창작되어 이날 공연까지 합하면 123회 공연한 명작이다. 수많은 명대사와 명장면이 관객을 들었다 놨다 하는 극단 큰들의 대표작이다. 지난해에는 일본 7개 도시 순회공연을 다녀왔다.

 

최고의 풍자와 해학에 관객들은 곧장 무장해제

 

나는 <오작교 아리랑>10번까지 보는 게 목표인데 절반 이상은 달성한 것 같다. 볼 때마다 새롭고 흥미진진하다. 볼 때마다 우습고 눈물겹다. 볼 때마다 배우들이 성장하는 것 같다.

 

대사도 조금씩 달라진다. 아랫마을 남돌이 부모와 윗마을 꽃분이 부모가 만나서 한다는 말이 창원에는 왜 갑니꺼? 창원에서 세계 사격 선수권대회를 한다 쿠던데 거기 갑니꺼?”란다. 창원에서 열리는 세계적 행사를 한번쯤 환기시켜 주는 것이야 그럴 수 있다. 이 대사에는 그것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오작교 아리랑>70년 세월 동안 원수처럼 지내던 윗마을, 아랫마을의 처녀, 총각의 사랑과 결혼 이야기라면 이는 곧 남북분단을 다루는 것이다. 때마침 현정부 출범 이후 해빙분위기가 고조되고 있고, 때마침 창원 세계 사격 선수권대회에 북한대표단 열댓 명도 참가했다잖은가. 그런 뉴스를 한번 떠올려 보라는 귀띔이다.

 

△오작교 아리랑 주요 장면을 멋지게 그렸다. 큰들 단원 무로하라 쿠미 씨 작품이다. 극을 본 사람이라면 감탄할 것이다. 


남돌이 즉, 신랑 하객과 꽃분이 즉, 신부 하객들이 버나 이어달리기 대회를 할 참이다. 이 장면은 <오작교 아리랑>에서 무대 위(또는 마당 가운데) 배우들과 관객들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내가 뽑을명장면 중 하나이다. 전체 관객이 두 편으로 나뉘어 응원전을 펼친다. 모든 대결에는 심판이 있게 마련. 조선시대 사또 복장을 한 심판에게 남돌이 어머니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처럼 하면 안된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양승태가 누구던가. 대법원의 조직 이익을 위하여 박 아무개 전 대통령과 세기의 재판들을 뒷거래하여 언필칭 사법농단을 저지른 사람 아닌가. 신랑측, 신부측이 벌이는 버나 이어달리기 대결의 심판을 양승태처럼 해서는 안된다는 대사에 관객들은 ~” 하는 함성을 터뜨린다. ‘수준 높은 관객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남돌이와 꽃분이의 결혼을 결단코 반대하던 양가 부모들이 우리 겨레의 전통놀이인 버나돌리기를 하다가 결국 화해하게 되고 두 손을 잡는다. 무대 가운데를 사이에 두고 손을 맞잡은 사돈들이 남쪽으로, 북쪽으로 왔다 갔다 한다. 마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427일 판문점에서 했던 것처럼. “이렇게 멀리서 오셨는데, 멀다고 하면 안되갔구나야!”라는 대사도 그래서 등장하는 것이다. 수준 높은 관객은 이런 깨알같은 대사도 놓치는 법이 없다.

 

오골계는 전라도 사투리에서 경상도 사투리로

 

<오작교 아리랑>은 앞부분에 등장하는 오골계가 여러 모로 돋보이는 작품이다. 굳이 말한다면 조연이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주연처럼 보이기도 한다. 당초 오골계 역을 맡았던 배우(이명기)821일 군대 갔다. 이런 이야기는 큰들의 공식 홈페이지나 페이스북을 한번쯤 들락거린 사람이라면 대충 안다. 그 자리를 무대감독 겸 소품제작 담당인 분(박춘우)이 맡았다. 이분은 하동 최참판댁에서 열리는 상설공연 <최참판댁 경사 났네>에서는 일본군으로 등장하는 분이다. 그러니까 무대감독 겸 소품제작 담당 겸 배우이다. 오골계가 등장하자 맨앞에 앉은 관객들이 웃음을 터뜨린다. 너무 오골계처럼 생겨서일까. 툭툭 터지는 경상도 사투리가 정겨워서일까. 사실, 이전의 오골계는 너무나도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썼는데 그의 입대로 경상도 오골계가 당분간 무대를 주름잡게 되었다. 이런 차이를 눈여겨보는 것도 극단 큰들의 마당극을 쫓아다니며 보는 재미다.

 

△맛깔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오골계는 지금쯤 제식훈련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의 빈자리는 느껴지지 않는다, 느껴진다.


잔디마당에서도 아트홀무대에서도 최고로 진화하는 큰들

 

마당극은 말 그대로 무대가 아니라 마당에서 공연하도록 만들어진 극이다. 하다 보면 진주의 경남문화예술회관이나 창원의 성산아트홀 같은 데서도 하게 된다. 이렇게 실내에서 하면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첫 번째는 조명의 위대함이요 두 번째는 음향의 품질이다. 조명 덕분에 무대 위의 배우들 가운데 누구에게 눈길을 줘야 할지 쉽게 따라가는 것은 물론이요 장면의 전환이나 막과 막 사이의 전환도 깔끔하게 이뤄진다. 전쟁을 상징하는 붉은 빛깔 처리는, 야외 마당에서는 만들어 보여주지 못할 것 아닌가.

 

지난해와 올해 두 번 실내, 그것도 엄청나게 큰 대극장에서 <오작교 아리랑>을 관람한 나는 행운아이다. 산청 동의보감촌 잔디마당 300명 남짓 되는 관객들 가운데에서 배우들의 등에 배어나오는 소금땀을 보면서, 몰아쉬는 거친 숨을 함께 호흡하면서 보는 마당극이 주는 재미와 감동이 당연히 첫손이지만, 그와는 분명 다른 재미와 감동이 넉넉히 준비돼 있다. 그래서 한 해에 한두 번쯤은 무대와 조명과 음향이 전혀 다른 큰 무대에서 마당극을 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민중적이라고 할까, 서민적이라고 할까. 우리 겨레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연희 양식인 마당극은 사실 문화예술회관, 아트홀이란 말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시골 장터 마당이나 아파트 주차장, 잔디밭, 대학촌, 광산촌, 농민회관 같은 데가 더 잘 어울린다. 자연스럽게 관객도 서민대중이다. 농민, 어민, 소시민, 노동자, 학생 들이기 십상이다. 권력으로부터 소외되고 자신의 노동으로부터도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나 사연이나 함성을 대변하여 극으로 보여주는 것이 마당극 탄생의 과정이다. 1970~1980년대엔 그랬다.

 

지금은 달라진 시대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곳이 비록 문화예술회관이고 아트홀이라고 하더라도 국민세금 시민혈세로 지은 문화공간일진대 마당극을 하지 못할 이유가 없고, 각종 다기한 소품과 기발한 연출력과 배우들의 출중한 연기력이 결합한다면, 어디에서건 마당을 펼치지 못할 까닭이 없다. 농민, 어민, 소시민, 노동자, 학생이 함께하지 못할 이유는 더욱 없다. 그들이 역사의 주역이고 민주화의 주역인데. 이야기가 샛길로 나간 듯하다.

 

독도야, 간밤에 정말 잘 잤느냐?

 

<오작교 아리랑>이 끝났다. 관객들의 박수소리는 정말 오랫동안 이어졌다소리꾼 김용우의 무대가 이어진다. 지난해 진주공연에 이어 두 번째 큰들과 공연한다고 했다. ‘맑고 단아하면서도 깊은 소리와 독창적인 음악적 색깔로 국악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소리꾼김용우는 비무장지대’, ‘홀로 아리랑’, ‘뱃노래이렇게 세 곡을 불렀다.

 

2016KBS 국악대상을 수상했고 11종의 음반을 출반했다는 그의 이력에 걸맞게 그의 노래 세 곡은 깊은 울림과 감동을 안겨 주었다. 특히 나는 <홀로 아리랑>을 따라 부르며 목이 메었다. 독도. ‘독도야 간밤에 잘 잤느냐라는 가사에서 심장이 멎을 뻔했다. 그렇게 수백 번 불러온 노래였는데도 이날은 어쩐 일인지, 정말 독도가 잘 있는지 바로 확인해 봐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대미를 장식했다, 감동의 쓰나미? 이런 상투적인

 

창원 큰들 13주년 정기공연은 130명 풍물놀이로 대미를 장식했다. ‘대미를 장식했다는 표현은 꽤 상투적이다. 그래서 다르게 써보려고 했다. 그러나 내 머릿속 말광은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20분간 이어진 풍물놀이는 감동의 쓰나미였다. ‘감동의 쓰나미라는 말도 얼마나 상투적인가. 130명이 울려대는 북, , 장구, 꽹과리 들의 함성은 객석 한 가운데에 앉은 나를 압도했다. 눈을 압도하고 가슴을 압도하고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극단 큰들의 정기공연 때마다 이 정도 규모의 풍물놀이는 마련돼 있었고 그래서 한두 번 본 게 아닌데도 그 감동은 늘 새롭고 늘 더 크다.

 

△공연장에 일찌감치 도착한 덕분에 아무도 몰래 연습장면을 찍을 수 있었다. 아마 이때부터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던 듯하다.


솔직히 공연하고 있는 풍물의 곡도 모르고 장단도 모른다. 여러 악기들이 어떻게 섞이고 어떻게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게 되는지 그 이치나 과정이나 연유를 나는 모른다. 분석할 줄 모르고 해석할 줄 모르고 이해할 줄 모른다. 그저 받아들이고 또 받아들일 뿐이다. 그저 그 소리에 녹아들 뿐이고 또 스며들 뿐이다. 그저 그렇게 멍하니 앉아서 무념무상의 상태로 20분을 보내고 있을 뿐이다. 그러자 비로소 머릿속에 무엇인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참말 신기한 일이다.

 

여러 장면이 겹쳐졌다. 아득한 옛날 우리 겨레가 중국 넓은 대륙을 호령하며 달리던 말발굽소리가 들렸다. 백두산 천지에서 시작하여 태백산맥을 거쳐 지리산맥에 이르는 국토의 등줄기의 꿈틀거림이 들렸다.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명분에 의하여 죽고 명분에 의하여 살해되던 자들의 원혼의 통곡과 중얼거림이 들렸다. 일제강점기 조국 광복을 위하여 만주로, 간도로 떠나던 애국독립지사들을 태운 기차의 기관소리가 들렸다. 마침내 되찾은 조국의 거리에서 태극기 휘날리며 내닫던 조선사람들의 함성과 발소리가 들렸다. 자유와 민주로 향하여야 할 대한민국을 독재와 압제로 뒤틀어놓던 자들에 맞서 일어서던 419518610과 그리고 촛불의 일렁거림이 들렸다.

 

그것뿐이었으면 감동은 없었을지 모른다. 격한 울림 뒤에 가느다란 떨림도 있었으니. 풍물놀이에는 서해안 바닷가 조개들의 하품소리도 보였다. 먼길 떠난 아들의 무사안녕을 빌면서 동네 어귀 서낭당에서 두손 모아 비는 어머니들의 기도소리도 보였다. 여념집 담벼락을 기어오르는 능소화 노란 꽃망울 떨어지는 소리도 보였다. 지리산덕유산에서 발원하여 진양호를 거쳐 낙동강으로 흘러가는 남강물의 재잘거림도 보였다. 어느 철길가에 피어나 바람불면 바람에 흔들리고 비오면 비에 젖고 그리하여 하염없이 그리웁고 서러웁게만 보이던 살살이꽃의 길고 긴 노랫소리도 보였다.

 

풍물이 열어젖힌 평화 세상, 대동 세상

 

부산에서 출발한 열차는 대구, 대전, 서울, 개성, 평양, 신의주, 블라디보스토크, 노코보로디노, 이루쿠츠크, 노보시비르스크, 옴스크, 예카테린부르크를 거쳐 모스크바에서 마침내 길을 잃었다. 더 이상 달리지 않아도 되는 하얀 세상, 더 이상 경계가 없는 넓은 세상, 더 이상 싸우지 않아도 되는 평화 세상의 문이 활짝 열려버린 것이다. 둥둥 북소리만이, 둔탁한 타악기 소리만이 이곳이 우리가 바라던 대동 세상임을 알려줄 뿐이었다. 전민규 예술감독은 이번 공연의 주제가 평화라고 했다. <오작교 아리랑>에서 출발한 평화의 분위기는 김용우의 노랫가락을 거쳐 풍물놀이에 이르러 비로소 완성되는 느낌이었다. 그 세상에선 길이 필요치 않았다.

 

풍물은 그렇게 다가왔다. 풍물은 그렇게 물러갔다. 풍물은 그렇게 다시 찾아오고 다시 물러가기를 되풀이하다가 끝내 두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끝이었다. 눈을 떴다.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6살짜리 꼬마아이에서부터 일흔 넘은 어른에 이르기까지 130명 시민들이 몇 달 동안 매주 두 번씩 모여 연습했다 한다. 지난여름 석 달 동안 그 지독한 더위 속에서도 이들은 이렇게나 짧은 20분을 위하여 고된 행군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웃고 있었다. 끝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희열과 최선을 다한 사람만이 체감할 수 있는 행복을 그들은 웃음 하나로 증명해 보여주고 있었다. 눈을 감았다. 눈물이 흘렀다.

 

하얗게 웃는 배우풍물단관객ㆍ스태프 모두 행복

 

창원큰들 13주년 정기공연막이 내렸다. 박수 소리는 오랫동안 이어졌다. 객석은 짧은 시간에 비어졌다. 공연장 밖에서는, 아뿔싸, 난리가 났다. 공연을 한 배우들과 풍물단원들, 그들의 가족들, 지인들이 엉키고 섞여 난장판이 따로 없다. 두 손을 맞잡고 악수 하고 사진 찍고 서로 껴안고, 그런 와중에 눈시울이 붉은 사람도 지나간다. 그 와중에 흰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으며 지나가는 사람도 있다. 그 와중에 보물섬 남해에서 현장학습 오신 분들이 기념촬영하느라 소란하다. 그 와중에 후원회원 가입하느라 줄지어 서서 열심히 이름을 적는 사람도 있다.

 

△공연이 끝난 후 무대의 배우들은 관객들 배웅에 여념이 없다. 배우 아닌 전민규 형과 한 장 찍었다. 형은 늘 저 폼을 잡는다. 


라는 사람은 지금 이야기하는 ‘2018 창원 큰들 13주년 정기공연과 관련하여 전문지식이 거의 없는 사람이다. 마당극이라고 하는 연희방식에 대하여 공부한 적이 없다. 판소리나 무용, 전통악기 같은 것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다른 사람과 조금 차이나는 것은 올해 5월부터 열댓 번 큰들 마당극을 보아왔다는 것과, 그때 느낀 이야기를 날것 그대로 하나둘씩 글로써 풀어보았다는 것뿐이다.

 

그런 나는, 이번 정기공연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사람을 보았다.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보았다. 불과 35명쯤 되는 극단 큰들, 그중에서 연기하는 배우는 여남은 명. 나머지는 스태프다. 이들이 만들어낸 <오작교 아리랑>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명품 마당극이다.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 소통하고 서로 배려하는 사람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창작품이다. 힘들 때 힘들다 말하고 지겨울 때 지겹다 말하고 싫을 때 싫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따뜻하고 부드럽게 껴안을 수 있는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다. <오작교 아리랑>에 등장하는 주인공 남녀와 그들의 부모와 까치와 까마귀와 그리고 오골계를 보면서, 나는 캐릭터로서의 배우뿐만 아니라 실제 그들의 삶을 상상해 본다. 그렇게 살아가고들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사람을 본 것이다.

 

또다른 사람을 보았다. 풍물놀이 패거리들 말이다.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달려온 그들의 땀과 눈물을 보았다. 물집 터진 손바닥을 보았다. 아픈 허리를 보았다. 질끈 동여맨 머리띠 속으로 흐르던 땀방울의 짠맛을 보았다. 그들이 이뤄낸 화음은 악기를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사람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 세상 최고의 오케스트라였다. 풍물의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에게 선사하는 최상의 선물이었다. 사람이 그 한 가운데 서 있었다.

 

문화를 보았다. 우리의 문화를 보았다. 견우와 직녀 전설을 보았다. 무슨 일이건 청와대 게시판에 청원글을 올리는 오늘날 우리의 세태를 보았다.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와 찰진 이북 사투리를 보았다. 말은 곧 문화의 그릇이다. 버나돌리기를 보았다. 우리의 전통 놀이 즉, 전통문화이다. 혼례문화를 보았다. 사라져가는 함진애비를 보았다. 신랑 동상례(극에서는 댕기풀이라고 함)에서 신랑 발을 묶어 매달고는 신부에게 노래를 시키는 문화도 보았다. 회를 먹은 뒤엔 뼈다귀로 매운탕을 끓여 먹는 음식문화를 보았다. 청군 백군 나눠 응원전을 펼치던 운동회 문화도 보았다. <아리랑 목동>과 <아빠의 청춘>이라는 대표적 응원곡도 보았다. 아리랑에 담긴 우리 겨레의 한과 역사를 보았다. 역사에 실린 한은 문화이다. 아리랑을 공유하는 우리는 모두 한겨레이다. 남북이 따로 없다. 문화의 힘은 백두산보다 크고 지리산보다 무겁다.

 

△오작교 아리랑에서 버나놀이는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배우들의 버나 솜씨는 천의무봉이다. 긴장감도 쫄깃쫄깃하다.


웃음을 보았다. 웃음은 웃을 준비를 한 자에게 다가오는 만병통치 명약이다. ‘일소일소 일노일노라고 했다. ‘소문만복래라고 했다. 마당극에서는 웃을 준비를 미처 하지 못한 관객에게 그 준비하는 과정도 일러준다. 무장해제다. 70분 동안 열린 한 편의 마당극에서 관객들은 몇 번 박수를 칠까. 옆에 앉은 이가 웃는지 마는지 일일이 쳐다볼 수 없으니 박수로 가늠해 본다. 10번까지 세다가 일찌감치 관뒀다. 부질없는 짓이다. 웃음은 성산아트홀 대극장 가득 메운 관객들 숫자만큼 모였다가 흩어졌다. 그 사람들 머리 위에 비춰지는 조명등 가닥가닥만큼 부드럽게 흩어졌다. 웃음 보따리가 여기저기 떼굴떼굴 굴러다니고 웃음 물줄기가 요리조리 흘러다녔다.

 

최고를 보았다. <오작교 아리랑>123회째 공연이었다. 지금까지 본 공연 가운데 단연 최고였다. 배우 개인의 연기는 더 오를 데가 없다. 그들의 호흡도 나무랄 데가 없다. 버나놀이도 최고였다. 버나를 잘만 돌리면 싱겁다. 좀 아슬아슬하게 하는 맛이 있다. 천장 높은 무대여서인지 버나를 가장 높이 던져올렸다. 최고라는 것을 입증했다. 풍물놀이도 최고였다. 빈틈이 없었다. 오케스트라 악단이 지휘자를 바라보듯이 모든 풍물단원이 상쇠잡이를 바라보며 일심동체로 울려대는 타악기 소리는 최고였다. 내리쬐는 조명도, 마당극 간간이 들어가는 음향도 어디 하나 실수를 용납하지 않았다. 관객도 최고였다. 공연에 매료돼 순간 이성을 잃은 몇몇 관객이 허락되지 않은 촬영을 시도하다가 성산아트홀 소속 도우미들에게 제지당하던 것도 최고 무대에서만 볼 수 있는 흔찮은 광경이었다.

 

미래를 보았다. 큰들은 산청에 마당극마을을 새롭게 만들고 있다. ‘앞으로 진주 큰들, 창원 큰들, 산청 마당극마을이 서로 손잡고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이규희 대표는 공연 안내 책자에 썼다. 큰들의 미래 청사진을 수줍게 설명해 놓았다. 사실 알고 보면 이렇게 간단히 이야기하고 말 일이 아니다.

 

큰들은 산청군 산청읍 내수리 어디 2만 평의 터에 완전히 새로운 마을을 만들고 있다. 그들의 설명에 따르면 1만 평은 녹지와 숲으로(나는 이게 가장 마음에 든다), 나머지 1만 평은 단원들 살림집과 야외공연장, 연습실, 소품의상실, 사무실, 주차장으로 조성한다. 10년 전부터 추진해온 초대형 사업이다. 은행 담보 대출과 단원들 부모님, 가족들의 도움으로 땅을 사들인 뒤 2015년 농림축산식품부의 신규마을 조성사업공모에 선정되었다고 한다. 농림축산식품부와 산청군이 지난해 7월부터 토목기반공사를 진행하여 이제 건물을 지을 단계에 와 있단다.

 

큰들의 큰 꿈이 영글고 있다. 큰들의 미래가 성큼 다가왔다. 마치 91일 우리가 성큼 다가온 가을을 느끼듯이. 831일과 91일의 기온이 다르게 느껴져 가을이 성큼다가왔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곧 결실의 계절 가을은 아니다. 아직 견뎌야 할 늦더위가 기다리고 있다. 큰들은 공공건물들인 야외공연장, 연습실, 소품의상실, 큰들 20대 청년예술가들을 위한 컨테이너 주택은 은행대출이 아닌 지인들에게 모금하거나 또는 빌려서 지으려고 한단다. “큰들을 사랑해 주시는 후원회원님들과 관객분들, 시민들, 지역주민분들의 도움을 부탁드립니다. 조만간 찾아뵙겠습니다.”라는 말은 큰들 공식 누리집과 페이스북에 올려 놓은 소개말 가운데 일부다.

 

큰들의 또다른 미래도 있다. 큰들은 1020() 마당극 <남명>을 처음 공연한다. 대본은 완성됐고 한창 연습 중이란다. <오작교 아리랑>, <효자전>, <순풍에 돛달고>, <최참판댁 경사 났네>, <이순신>, <진주성 싸울애비> 등의 걸작 위에 또하나의 명작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큰들의 미래는 넓고 환하고 크다. 전국 최고의, 즉 세계 최고의 마당극 전문 극단으로서 긍지와 자부심이 보인다. 최고여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최상이라서 쉬어가는 것이 아닌, 그들의 쉼없는 자기노력, 자기계발을 나는 보고 있다.

 

커다란 미래를 기쁘게 마주한 사람들이 최고의 작품을 만들었다. 최고의 작품에는 웃음이 따른다. 최고를 이룬 사람은 웃을 자격이 있다. 최고를 이루는 요소들은 곧 하나의 문화를 이루게 된다. 문화는 끝없는 우주와 같다. 하나의 문화가 있고 또다른 문화가 있고 그 둘을 합친 문화가 있다. 그런 문화를 이룩한 건 당연히 사람이다. 사람이 사는 곳 큰들에서 새로운 문화가 창조되고 있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 큰들이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고 있다.

 

△올해들어 아내와 함께한 공연만 벌써 다섯 번은 넘는다. 함께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취미이자 문화이다. 


이후 극단 큰들 공연 일정 적어 놓는다.

98() 하동군 평사리 최참판댁 마당극 <최참판댁 경사 났네>

99() 하동군 평사리 최참판댁 마당극 <최참판댁 경사 났네>

913() 창녕문화예술회관 마당극 <효자전>

922() 하동군 평사리 최참판댁 마당극 <최참판댁 경사 났네>

929() 산청군 한방약초축제장 마당극 <효자전>

912~18일에는 독일에서 열리는 <베토벤 교향곡 9> 합창에 참가한다.

 

530분쯤 창원대로를 지나며 작은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은 열심히 작업 중이었다. 창원산업전기 대표이사 사장님은 오늘도, 내일도 열심히 일하신다. “, 그래 잘 봤나? 내일 모레 아부지 제사 때 보자!”는 형의 목소리를 연료로 삼아 진주까지 무사히 잘 돌아왔다. 돼지고기, 소고기 같은 네 발 달린 짐승 고기는 못 드시고 오로지 오리고기와 닭고기만 드실 수 있는 어머니께 드리라며 작은형이 사준 오리탕을 어머니께 갖다드렸다. 모자(母子) 간 사랑의 징검다리, 아니 사랑의 오작교구실을 톡톡히 해낸 하루였다. 그런데 이런이런.

 

2018. 9. 2.

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