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니 새벽 4시 27분이다. 끈적끈적한 공기가 나를 짓누르고 있다. 베개가 눅눅하다. 뒷덜미가 묵직하다. 오줌보도 묵직하다. 입 안은 버석버석한다.
결혼식장이었다. 누가 결혼하는 날이었을까. 형제와 사촌형제들이 거의 모였다. 사촌누나들은 화사한 한복을 입었고 평소 정장을 잘 입지 않는 형들도 매끈한 양복을 입었다. 누가 결혼하는 날이었을까.
한쪽에서 어떤 떠꺼머리 사내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가까이 가자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흐느끼는 듯한 그는 “이 결혼 반대다!”라고 외치고 있었다. 나는 그의 머리통을 세게 때렸다. 욕도 해줬다. ‘여기가 어딘데 니까짓게 감히!’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와 동시에 새하얀 신부옷을 입은 아리따운 신부가 큰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경쾌하고 빠른 박자의 노래였다. 김광석의 ‘일어나’였다. 누군가 피아노를 친다. 검은 연미복을 입었던 것 같다. 하객들이 합창을 했던 것도 같고 아니었던 것도 같다. 떠꺼머리 사내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신부 얼굴도, 피아니스트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잠을 깨는 순간 까먹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형제들도, 사촌형제들도 얼굴 표정이 떠오르지 않는다. 막연하게 그들일 것으로 인식을 해서 그런 줄 알 뿐이지 실제로 형제, 사촌들이었는지는 자신 없다. 얼굴들은 흐릿하고 뿌연 안개로 가려진 듯했다.
물 한 잔 마시고 자리에 누웠다. 선풍기 날개 돌아가는 소리만 가득하다. 나는 거미가 되어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그러다가 까무룩 잠이 들긴 들었나 보다. 다시 깨니 5시 50분이다. 스마트폰 알람이 울리고 있다.
2018. 7. 20.
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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