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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대한 내 생각

필리버스터

by 이우기, yiwoogi 2016. 3. 18.


 

필리버스터(filibuster)라는 말을 올해 처음 들었다. ‘무제한 토론이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더 정확하게는 의사 방해 연설이라고 한다. 사전에서는 다수당의 일방적인 법안 처리를 막기 위해 장시간 발언으로 국회 의사진행을 지연시키는 무제한 토론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국회에서는 필리버스터 관련 법이 박정희 유신정권 때이던 1973년 폐기된 뒤 20125월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에 포함(국회법 개정)돼 부활했다. 이 법의 부활을 주장한 당은 역설적이게도 당시에도 여당이었고 지금도 여당인 새누리당이라고 한다. 1964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시 여당이던 민주공화당이 자유민주당의 김준연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상정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5시간 19분간 연설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한번도 필리버스터가 열린 적이 없었는데, 올해 223일 오후 75분부터 32일 오후 730분까지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국회의원 38명이 9일 동안 토론을 이어갔다. 시간으로는 192시간 27분이다.

 

당시 국회에서는 새누리당이 국회 정보위원회를 단독으로 열고 테러방지법과 사이버테러방지법을 상정했고, 정의화 국회의장이 본회의에서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하였다. 그러면 야당은 왜 테러방지법을 막아서고 있는가? 테러는 당연히 방지해야 하는 것 아닌가? 국민의 안전을 위해 이는 필수적인 일 아닐까? 은수미 의원은 테러행위를 방지하는 것은 항상 인권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에 깊이 있는 검토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정부여당은 직권상정이라는 그런 조치 통해서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테러방지법내에 독소조항이 있음을 언급했다.

 

도대체 어떤 내용이 문제가 되는 것일까? 첫 번째는 영장 없는 감청을 크게 확대하는 테러방지법 부칙 22항이다. 기존의 조문이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상당한 위험이 예상되는 경우에 한하여영장 없는 감청을 허용했던 데 반해, “대테러 활동에 필요한 경우를 더하면서 그 범위가 크게 확대됐다. 우리는 저 문구가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않던가?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국정원에 무소불위의 권한을 주도록 되어 있는 테러방지법 94항이다. 야당이 어떻게든 막으려고 하는 지금의 테러방지법은 국정원이 대태러 활동에 필요한 정보나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대테러 조사 및 테러 위험 인물을 추적(위치출입국통신금융거래 등)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국정원이 정보를 수집분석하고 그 결과를 수사기관에 전달하는 현 체계를 넘어 수사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상 다음 토론방에서 옮겨옴: http://goo.gl/sAQGEz)

 

이 필리버스터 내용, 정확히는 제340회 국회(임시회) 본회의 회의록이 책으로 묶여 나왔다. 책의 부제로는 민주주의, 역사, 인권, 자유라고 달아놨다. 야당 국회의원 38명이 9일 동안 진행한 필리버스터는 우리나라 민주주의와 역사와 인권과 자유에 관한 보고서라고 할 수 있겠다. 역설적으로 민주주의라고 말하기 어려운 정치 형태, 왜곡되고 비뚤어진 역사, 짓밟히고 무시당하는 인권, 도무지 자유라고 말할 수 없는 자유의 세상을 우리가 살고 있다는 뜻 아닌가


1341쪽에 달하는 이 책은 우리나라 현대사라고 할 수도 있겠다. 책에서는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테러방지법안 통과를 둘러싼 놓칠 수 없는 무제한 토론, 대한민국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을 사수하기 위한 투쟁의 근현대사!’ “이토록 재미나고 눈물겨운 회의록은 처음이다!”

 

하지만 필리버스터는 총선을 앞둔 야당의 정치논리에 의하여 도중에 중단되었다. 그리고 테러방지법안은 201633일 법률 제14071호로 통과되었다. 이 법에 대한 표결에는 157명의 국회의원이 참여하여 그중 156명이 찬성하였으며 1(김영환)이 반대하였다. 나는 이 책을 두고두고 읽으며 우리나라 근현대사 공부를 하고 싶어졌다.

 

2016. 3.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