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요리 또는 음식과 관련한 방송 프로그램을 많이 보게 된다. 몇 해 전에는 엠비시(MBC)에서 토요일 오전에 방송하는 ‘찾아라! 맛있는 TV’라는 것을 열심히 봤다. 방송 끝나는 시간이면 곧 점심시간이어서 점심으로 뭘 먹을지에 대한 고민을 덜어주었다. 세상에는 참 맛있는 게 많구나 하는 것을 알았다. 나름대로 고마운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었다.
요즘은 요리 또는 음식 관련 방송이 너무 많아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다. 한두 달 전에는 티브이엔(TV N)에서 ‘집밥 백 선생’이라는 것을 방송했는데 요리와는 담을 쌓고 사는 남자 네 명이 나와서 서투르게 칼질하는 것을 보면서 많이 배웠다. 백종원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들려주는 음식 이야기와 화면은 그 자체로도 흥미로웠다. 평생 라면 하나 끓여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천천히 따라하다 보면 요리에 자신이 생길 만큼 친절하고 쉬웠다. 매주 화요일 저녁에는 웬만하면 일찍 귀가했다. 재방송을 토요일 오전에 한다는 것도 외우고 있었다.
그 백종원이 요즘은 에스비에스(SBS)에 토요일 오후에 나타난다. ‘백종원의 3대 천왕’이라는 프로그램도 아주 재미있다. 주제 음식을 먼저 정하고 전국에서 그 음식을 잘하는 집을 백종원이 찾아가 직접 먹어보면서 음식에 들어간 재료나 요리방법 같은 것을 미리 설명해 준다. 그 중 세 집에서 직접 방송국에 와서 음식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정말 군침 돌게 맛난 음식을 기가 막힌 재료와 방법을 동원하여 만들어낸다. 우리나라 곳곳에 숨은 요리 명인들이 많고, 대를 이어가며 맛과 영양을 지켜가는 집도 많음을 알게 된다.
코미디채널에서 방송하는 ‘맛있는 녀석들’이라는 프로그램도 인기 있다. 유민상, 김준현, 김민경, 문세윤이 나온다. 넷 다 뚱뚱하다. ‘먹어본 자가 맛을 안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방송을 하는데 하루에 두 군데를 다닌다. 가는 곳마다 배가 터지도록 먹어대지만, 밉지는 않다. 어떤 음식이든 먹는 방법에 따라 맛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삼시세끼’라는 방송도 있었는데 주로 가까운 곳에서 쉽게 재료를 구하여 밥 해 먹는 이야기였다. 케이비에스2(KBS2)에서 매일 저녁 방송하는 ‘2-TV 생생정보’에서는 전국 최고의 맛집, 가격파괴 집, 무한리필 집 등을 날마다 소개해 준다. 일일이 다 기억은 하지 못하겠지만, ‘수요 미식회’, ‘냉장고를 부탁해’, ‘식신로드’ 들도 음식, 요리 이야기이다. 이것 말고도 아주 많다.
가히 ‘먹방’(‘먹는 방송’의 줄임말로, 2000년대 후반부터 널리 쓰이는 신조어) 전성시대이다. 먹방을 보면서 몇 가지 느낀 게 있다. 첫째, 정말 우리나라 전국 방방곡곡에 맛있는 음식이 많고 똑같은 재료라고 하더라도 조리방법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낼 수 있구나 싶다. 허영만의 만화 <식객>을 열심히 감동적으로 본 나로서는 반갑고 흐뭇하기 그지없다. 텔레비전에서 소개해 주는 내용을 눈여겨 봐 두었다가 따라해 보기도 한다. 재미있다.
둘째, 방송 출연자들이 맛있게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고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직접 맛있는 요리를 먹는 것도 아닌데 그 향기와 맛이 전해져 오는 느낌이다. 배가 부르다는 느낌이 들다가 방송이 끝나면 배가 툭 꺼지는 느낌이다. 그러니 역으로 식욕을 돋우어 준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런 느낌도 나쁘지 않다. 덕분인지 요즘 몸무게가 2~3kg 늘어나긴 했지만,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다.
셋째, 맛집으로 성공한 집에는 저마다 어떤 비밀이 있다는 점이다. 남들은 아무도 모르는 재료를 개발하는 데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한 사연이 있다. 2대, 3대째 가업으로 이어가면서 작은 반찬 하나를 만드는 데도 혼신의 노력을 다 기울인다는 것은 분명 배울 점이다. 가격파괴, 무한리필을 실현하기 위하여 온 가족이 나서서 힘을 보태는 집도 있다. 싱싱한 재료를 구하기 위하여 새벽부터 시장으로 나가거나 매주 바닷가로, 농촌으로 직접 다녀오는 사장도 많다. 또한 배울 점 아닌가. 준비한 재료가 다 떨어지면 아무리 단골이 찾아와도 문을 닫아버리는 고집도 있다.
넷째, 교통의 발달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발전으로 전국 어디에 있든 음식 솜씨를 검증받은 곳이라면 누구든 쉽게 찾아간다는 점도 눈여겨 볼 점이다. 동네 식당에서 수십 년 단골 고객만 바라보고 있다가는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른다. 오래된 단골집이라도 맛이 변했다고 느끼거나 주인의 웃음에 가식이 있다고 느낀다면 발길을 끊고 마는 세태다. 손님들의 입맛은 정직하다. 변함없이 지속적으로 맛과 서비스를 이어나가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이다. 꼭 음식점만 그런 게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그런 인식이 강하게 퍼져 있다.
다섯째, 요리 또는 음식 프로그램이 던져주는 많은 긍정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마음이 불편한 게 사실이다. 2014년에 우리나라 1인당 국민 소득은 2만 3800달러로 대략 2548만 원 정도이다. 세계 33위였다. 2016년엔 더 올랐겠지. 평균적으로 봤을 때 넉넉하지는 않지만 먹고살 만한 나라가 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런 반면 2016년 1월 청년실업률은 2000년 이후 1월 청년 실업률 중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소식도 있다. 또한 지난해 국세청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949만 명이 창업했고, 793만 명이 폐업해 자영업 생존율이 16.4%에 불과했다는 소식도 있다. 자영업의 창업 대비 폐업률은 85%에 달한다. 10명이 창업하면 9명은 문을 닫는다는 의미다. 이러한 시대에 음식 또는 요리 프로그램이 좀 지나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해외여행을 권유하는 프로그램, 재벌 2세들의 낯 뜨거운 막장 드라마보다야 건전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어쩐지 마음이 불편해지는 건 사실이다. 그만큼 우리나라가 ‘골고루 잘 먹고 잘 살게 되었는지’에 대해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잘 먹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똑같은 음식이라도 싼값에 먹고 싶고, 똑같은 돈을 주더라도 더 그럴싸한 곳에서 먹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모든 국민이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러기 전에 정말 대부분의 국민이 주말에 가족과 함께 그럴싸한 곳에 가서 외식을 할 수 있는지, 1000ℓ에 가까운 냉장고 안에 싱싱한 음식 재료들을 종류별로 가지런히 정리해 놓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얼마든지 요리해 먹을 수 있는지 돌아보고 싶어진다. 그래서, 먹방이라도 좀더 진지하게 할 필요는 없을까, 쇼ㆍ오락보다는 다큐멘터리에 가깝게 만들 필요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본 방송 ‘고독한 미식가’처럼...
2016.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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