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허전할 때 자주 찾는 절이다. 괜스레 어수선하거나 싱숭생숭할 때도 간다. 불안이 스멀스멀 기어다닐 때도 별 준비 없이 그냥 나선다. 거리도 적당하다. 집 주차장에서 25~30분쯤 걸린다. 길도 좋다. 시내를 빠져나가 진양호를 끼고 돌고 국도를 달리다보면, 도중에 마음이 스르르 편안해지고 너그러워진다. 그래서 자주 간다. 그런 절이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은 복이다.
긴 연휴 중간을 분질러 다솔사로 향했다. 부처님 오신 날이 다가오니 연등 하나 걸자는 것이다. 십년 이상 해마다 해오던 일이다. 신도라 할 만큼 독실한 건 아니지만, 굳이 종교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불교라고 말할 정도는 된다. 나는 그냥 풍경소리 독경소리 들으며 경내를 거닐다 온다. 사진도 몇 장 찍는다. 아내는 대웅전, 응진전, 명부전을 돌며 절한다. 불전(佛錢)도 놓는다. 법당 뒤 사리탑을 돈다. 그러고 돌아오면 정신은 맑아지고 마음은 차분해진다.
다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인 범어사의 말사라고 한다. 역사는 신라 지증왕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증왕 4년 연기조사가 개창하면서 영악사라 했고, 선덕여왕 5년 자장이 사우 2동을 짓고, 다시 의상이 문무왕 16년에 영봉사로 고친 것을 신라 말기 도선이 불당 4동을 증축하면서 다솔사라 불렀다고 한다. 고려 공민왕 때 나옹이 중건하고, 조선 때까지 사세를 유지하다 임진왜란 때 불타버렸는데 숙종 때 중건불사가 행해졌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문화재 4점을 보유하고 있다. 18세기 양식의 누각인 대양루, 응진전, 극락전, 딸린 암자인 보안암 석굴이다. 일주문이나 천왕문이 없고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소나무가 많다 하여 다솔사라 했다는 설도 있다. 사찰 뒤편에는 차밭이 조성되어 있다. 일제 강점기에 항일 승려로 이름이 높은 한용운과 최범술이 기거해 유명해졌고, 김동리는 다솔사 야학에서 교사로 일하면서 소설 〈등신불〉을 썼다고 한다.
대웅전 격인 적멸보궁에는 부처가 팔베개를 베고 누워 있다. 편안하기 이를 데 없다. 부처 뒤로 유리창이 있고, 그 너머로 사리탑과 차밭이 보인다. 사리탑을 둘러싼 쇠 울타리에는 황금빛 리본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소원을 비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소원을 적은 리본이 황금빛이어야 했을까 싶다. 흔들리며 내는 소리도 금빛으로 들린다. 다솔사라는 이름과 절이라는 이미지와 잘 안 어울린다는 생각을 한다.
딸린 암자인 보안암은 봉명산 꼭대기에 있다. 미륵암(彌勒庵)이라고도 했으며 창건 연대는 명확하게 전하지 않는다. 신라 때인 것으로 추정한다. 현재 석굴 중앙에는 돌을 쪼아 만든 석가모니의 좌상(坐像)이 안치되어 있고, 좌상 뒤 좌우에는 아주 작은 돌을 쪼아 만든 16구(具)의 나한상(羅漢像)이 배치되어 있다. 세 번 가봤는데, 오늘은 오르지 않았다. 보안암까지 오르면 이마와 등에 땀이 적당히 밴다. 울창한 나무숲속을 거니는 여유로움과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듯한 기분 좋은 착각은 걷는 자의 몫이다. 중턱에 있는 약수터를 찾아가 보는 것도 좋다. 시원한 물이 사시사철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다솔사 선다(禪茶) 축제’가 5월 9-10일 이틀 동안 열리는가 보다. 부처님 오신 날은 5월 25일이다. 이 달 안에 두어 번은 더 가게 생겼다. 갈 때마다 다르게 보이고 갈 때마다 다시 찾고 싶은 절이다.
(내용 중 일부는 ‘브리태니커’, ‘위키백과’를 참고하였습니다.)
2015.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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