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 석류나무 잎사귀는 몇 장이었을까

쥐를 잡도리하는 법, 닭의 목을 자르는 법

by 이우기, yiwoogi 2014. 12. 30.

간질병으로 스무 몇 살 때 불귀의 객이 된 큰형의 친구가 있었다. 함께 뒷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그 형이 게거품을 물고 자지러지면서 넉장거리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나는 어린 나이에 너무 심한 충격을 받아 달아나 버렸었다. 혼비백산이란 이럴 때 쓰는 말 아닌가. 그 형은 실개천 가에서 간질병이 도졌는데 재수 없게 머리를 물 쪽에 두는 바람에 그길로 익사했다고 들었다. 들은 건 우리가 진주로 이사하고 한참 지난 뒤였으니 대략 1980년대 후반이었으리라.

진주로 이사하기 전, 그러니까 큰형이 중학교 1~2학년쯤일 때 그 형 집에 놀러간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좋은 구경거리가 있으니 놀러 오라고 기별을 했었던 것 같다. 가니, 작은 고양이만한 쥐 한 마리가 쥐틀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한 채 발버둥치고 있었다. 그놈은 딴에는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내고 긴 이빨을 보여주며 앙살을 부렸는데, 우리에겐 징그럽고 추잡스럽고 미련한 놈이, 어울리지 않게, 귀여운 장난을 치는 것으로 보일 뿐이었다.

큰형의 친구들은 어찌어찌하여 쥐의 목에 철사를 감았다. 그러고선 쥐 몸에다 휘발유를 부었다. 라이터 연료로 쓰던 휘발유를 넣어 두던 노란색 플라스틱 병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쥐틀 문을 열자 쥐는 살려줘서 고맙단 인사를 할 겨를도 없이 발뺌하였다, 고 생각했을 것이다. 쥐는 철사 길이만큼 빙빙 돌면서 깨춤을 추었다. 우리는 깔깔대며 웃었다. 쥐는 철사에 묶인 목이 아픈지 캑캑거리며 발버둥쳤다. 그때 큰형 친구는 쥐 몸에다 라이터 불을 댕겼다. 불지옥에 빠진 쥐는 죽자 살자 버둥거렸다. 천지사방으로 달아나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난리법석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우리는 더 크게 웃었다. 그런 구경거리가 다시 있을까 싶었다.

몇 분이나 흘렀을까. 시커멓게 타버린 쥐 한 마리가 마당가에 뒹굴었다. 쥐는 그렇게 죽었다. 그 놈은 그동안 뒤주의 쌀을 야금야금 훔쳐 내가고 명절 때는 곱다시 재어 놓은 생선을 물어뜯어 못 쓰게 만들어 버린 죗값을 단단히 치른 것이다. 느낌으로도 고소했고, 솔직히, 살 탄 냄새도 고소했다. 큰형 친구들은 쥐새끼는 이렇게 죽여야만 근처에 숨어 있던 다른 쥐새끼들도 지레 겁먹고 도망가는 법이라고 말해주곤 했다. 도망간 쥐가 어디로 갈 것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런 시절이 있다.

아버지는 닭장에 있는 장닭 가운데 가장 버거운 놈을 점찍었다. 다리가 어떻고 볏이 어떻고 날개 빛깔이 어떻고 하는 설명은 따로 필요하지 않았다. 딱 보면 눈알이 부리부리한 게 여간내기가 아니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수탉이 있게 마련이었다. 아버지는 닭장 문을 기운차게 열고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섰다. 암탉은 알을 낳지도 않았는데 꼬꼬댁 소리치며 뛰쳐나가고 수탉들은 뻣뻣한 날개를 퍼덕이며 주인을 적으로 삼아 난동을 부렸다. 그렇다고 눈 하나 꿈쩍할 아버지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점찍어 둔 놈을 대번에 붙잡았다. 날갯죽지를 꽉 움켜잡고 꼼짝달싹 못하게 제압하는 데는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침을 꼴깍 삼키며, 저 무작스런 달구새끼의 목을 어떻게 딸 것인지 궁금해 했다. 수탉은 부리로 연신 아버지의 팔을 쪼고 긴 발톱을 허공에다 휘저으며 상황을 모면하려고 했지만 그건 당랑거철(螳螂拒轍)이었다. 우리는 아버지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갔다.

장독 옆 수돗가에 다다른 아버지는 날갯죽지를 잡지 않은 왼손으로 닭대가리를 한 바퀴 빙 돌려 원을 만드는가 싶더니 어느새 날이 시퍼렇게 선 조선낫으로 목을 싹둑 베어버렸다. 그 순간은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럴 것으로 미리 짐작하고 눈여겨봤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그 찰나의 섬뜩함과 깔끔함의 미학을 놓쳤을 것이다. 어떤 땐 닭을 도마에 얹어놓고 부엌칼을 위에서 아래로 힘껏 내리치기도 했다. 조금 전까지 어떡하든 달아나 보려고 안간힘을 쓰며 퍼덕이던 닭은 금세 황천길 나그네가 되어 버렸다. 아버지는 축 늘어진 닭을 펄펄 끓는 물에 던져 넣은 뒤 조금 있다가 다시 건져내 털을 뜯곤 했다. 5분 전의 용맹하고 기세등등하던 장닭은 그 사이에 털이 숭숭 뽑힌 먹음직스런 닭고기가 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달구새끼의 모가지를 딸 때는 망설이지도 말고 머뭇거리지도 말고 단숨에 해치워야 한다는 말을 몇 번 들려주었다. 안 그러면 이놈이 살아서 도망가거나 손을 물어뜯기도 하기 때문이란다. 제깐놈이 죽어봐야 저승을 알지 살아서 어찌 저승을 알 것이겠느냐, 그러니 속 시원히 저승 구경을 시켜주는 게 나은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다음 생에선 부디 좋은 목숨을 타고 나라.’는 사치스런 말 따위는 아예 하지 않던 것이었다. 2014. 12.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