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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석류나무 잎사귀는 몇 장이었을까

by 이우기, yiwoogi 2014. 10. 17.

쥐가 내린다.”고 한다. “쥐가 났다.”고도 한다. 허벅지나 장딴지가 느닷없이 당기고 아프고 저린 상태를 말한다. 발가락 다섯 개가 두 개와 세 개로 나뉘어 23으로 쫙 달라붙는 것도 쥐라고 한다. 자다가 그러기도 하고 공 차다가 그러기도 하고 멀쩡히 양반 개고 앉아 있는데도 쥐는 내린다. 그러니까, 다리의 주인은 전혀 예측하거나 감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느닷없이쥐를 만나는 것이다.

자다가 쥐를 만나면 옆에 자는 사람을 불러 깨우기도 한다. 발을 뒤로 힘껏 젖혀 근육을 이완시켜 주어야 한다. 그냥 두면 근육 마비 현상이 허리로, 가슴으로, 머리로 올라올 것만 같다. 그러면 죽고 말지 살 재주가 있겠나. 다행히 정신 멀쩡히 살아 있을 때 쥐를 만나면 스스로 발을 뒤로 젖히기도 하고 콧등에 침을 바르기도 한다. 근육을 주무르며 아이고, 나 죽겠네.” 엄살을 부리기도 한다.

머리에 쥐가 나기도 한다. 할 일은 많고 시간은 없고 일손은 모자라고, 꼭 그런 날이 있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 무엇을 뒤로 미뤄야 할지 모르는 경우다. 이런 날은 평소 너무나 잘 아는 단어도 생각이 안 나고 전화번호도 잊어버리고 친구 이름도 까맣다. 머리에 쥐가 나면, 할 수 있나, 잠시 바람 쐬고 딴전 피우며 머리를 식혀야 한다. 술을 마시든 담배를 피우든 일로부터 잠시라도 벗어나야 한다. “에잇, 신발끈!” 하면서 욕을 해도 효과가 좀 있을 것이다.

쥐가 발가락에 내리든 장딴지에 들러붙든 허벅지에 감기든 머리에 파고들든, 아무튼 라는 이름은 참 잘 지었다 싶다. 쥐새끼가 핏줄 속과 근육 속을 찍찍거리며 마구 헤집고 다니는 것 같다. 쥐가 날카로운 이빨로 근육을 물어뜯는 것 같다. 쥐꼬리로 예민한 부분을 간질이는 것 같다.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 된다. 성인군자도 쥐 앞에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마련이다.

그래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쥐는 그 무엇이 우리에게 보내는 신호 같다. 정신적으로 너무 피곤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이다. 비정상이 정상을 갉아 먹고 있다는 것을 아프게 보여주는 것이다. 11명이 뛰는 축구 경기에서 혼자만 너무 많이 뛰었다는 것을 자신과 감독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평소엔 운동을 전혀 안하다가 그날따라 너무 많이 움직였다는 것을 그래프로 보여주는 징표이다. 모두 아니라고 하는데 혼자만 독주하다가 낭패 볼 것임을 미리 알려주는 경고이다. 그러므로 쥐를 무시하면 안 된다.

5년 동안 쥐에게 시달리면 사람들은, 아무리 바보라도, 대개 각성하게 된다. 천장 보꾹을 아예 뜯어버려야 한다. 그러면 쥐는 천장에서 축구를 못한다. 뒤주는 아예 콘크리트로 처발라 버려야 한다. 그래야 쥐는 나락 한 톨도 훔쳐내 가지 못하게 된다. 고양이를 너덧 마리 키워 아예 쥐새끼가 얼씬도 못하게 해야 한다. 그게 처방이다. 하지만 쥐는 느닷없이 발가락에, 장딴지에, 허벅지에 내린다. 머리에 쥐가 나면, 정말 머리에 쥐가 나는 상황이 된다. 그런데도 우린 재주라고는 꼬끼요우는 것밖에 없는 닭을 키우며 쥐가 사라져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2014.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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