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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에서 퍼나른 글 모음

설날이 다가오면

by 이우기, yiwoogi 2014. 2. 17.

설날이 다가오면 집안 청소부터 했지요.

새옷도 사주고 새신발도 사줬지요.
아버지는 마당가에 낮은 의자를 놓고 입에 담배를 문 채
순서대로 우리를 불러 머리를 깎아줬고요,
어머니는 가마솥에 물 끓여 네 아들을 하나씩 씻기고
우린 바닥은 뜨겁고 위는 추운 가마솥목욕탕에서
순서대로 벌거벗은 채 묵은 때를 벗겼어요.
어른들은 생선은 미리 사서 말려 놓고
쌀, 옥수수를 튀겨 강밥도 만들었고
가래떡 꼬들꼬들 말려 열심히도 썰었죠.
칼 잡은 손아귀가 아려오고 허리도 아플 즈음에야 끝나곤 했죠.
세뱃돈은 10원씩, 운 좋은 때는 50원도 받았어요.
할머니는 배꼽밑에 감춰둔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100원짜리 지폐를 내어줄 때고 있었고요.
또래끼리 모여 동전 따먹기를 하고 연날리기를 하고, 
동네 어른 댁에 세배들 다니다 보면 하루가 갔지요.
생각해보면 그다지 재미있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았는데
설날만 다가오면 괜스레 설레고 들뜨곤 했어요.
흰쌀밥에 돼지고기 한 점이 그리 맛있고
지금은 흔하디흔한 곶감 한 조각이 어찌 그리 맛있던지요.
떡국그릇 바닥에 가라앉은 닭고기 한 도막은 또 어떻고요.

오늘 하루종일 본가에서 돼지고기 삶고 썰고 생선 찌고 
파전 안주 삼아 막걸리 마시고 수육 먹으며 소주 마시고
돼지 삶은 물에 씨래기 넣어 끓인 국에 밥 말아먹고
이것저것 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옛 생각이 간절하네요.
일고여덟 살 무렵이나 열한두 살 먹던 때가 그립네요.

그래도 내일은 설이라 하니 가만가만 삶을 돌아보며
하루를 보내야겠어요, 그럴 나이도 되었으니...

 

2013.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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