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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즐거움

신경득 교수님의 '서사문학연구'

by 이우기, yiwoogi 2009. 10. 29.

 

 

 

경상대학교 신경득 명예교수, ‘서사문학연구’ 펴내

한민족문학 이론 확립을 위한 지칠 줄 모르는 열정 빛나

‘무진기행’의 김승옥에 대한 최초의 비판적 연구

방대하고 다양한 우리나라 서사문학 연구에 새 이정표



경상대학교 신경득(辛卿得·국어국문학과, 문학평론가) 명예교수가 우리나라 서사 문학의 기원과 깊이, 넓이, 그리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방대한 분량의 문학평론집 ‘서사문학연구’(일지사, 742쪽)를 펴냈다.


‘서사문학연구’는 1980년대 후반 깨도문학·푸리문학·추임새문학 등 새로운 ‘한민족문학’ 이론을 주창하여 온 신경득 교수의 일생의 역작이자 신경득 교수의 문학 이론의 ‘실천 비평서’라고 할 만하다. 또 ‘서사문학연구’는 신경득 교수가 정년퇴임을 앞둔 대학교수로서 한민족문학 이론 확립을 위해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얼마나 치밀하게 고뇌하고 얼마나 뜨거운 정열을 쏟아 부었는지 보여주고 있다. ‘서사문학연구’는 1960년대 ‘감성의 혁명’으로 떠받들어졌던 김승옥 문학에 대한 최초의 비판적 연구서이자, 방대하고 다양한 우리나라 서사문학 연구에 새 이정표를 세운 역작(力作)으로 기록될 만하다.


신경득 교수는 ‘서사문학연구’ 총론에서 “‘서사문학연구’는 대체로 고조선 강역이라는 공간 안에서 일어난 신화·설화·한글소설·현대소설 등 서사문학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고 전제하고 있다. 연구 대상의 공간적 범위와 시간적 범위를 제시하고 있는데, 흔히 우리나라의 서사문학이라고 하는 모든 부문을 총망라한다고 봐도 될 듯하다.


신경득 교수는 “이렇게 시간과 공간이 광범위할 경우 서사문학의 벼리를 잡아 꿰뚫기가 힘들며 살아있는 유기적 조직체로 인식하기가 어렵다”며 “따라서, 획일적인 전횡과 몰입을 버리고 부분적인 선택과 집중을 미덕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대상을 명확히 검증하고 섬세하게 분석하면서 화소를 유연하고 융통성 있게 관찰하고자 한다. 연구방법은 다음 몇 가지로 요약된다”면서 연구 방법과 구체적인 범위를 일러준다.

 

첫째, 태양 숭배의 유산이겠지만 배달겨레의 서사문학은 하늘 오르기와 땅 아래로 내려가기라는 일종의 성무의례형식으로 나타나는데 이를 제대로 싸잡는다면 일종의 그물망 구실을 할 터이다. 환웅은 하늘에서 신단수로 내려와 땅 아래로 좌정하고 웅녀는 굴속에 들어가 단골로 재생 부활한다. 동굴에서 햇빛을 보지 못한 채 백일의 수련을 겪는 것은 흔히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내림굿 과정으로 보고되는 바, 무당 후보자가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죽음의 체험을 맛보는 것과 동일하다. 해모수는 유화와 더불어 용수레를 타고 하늘로 등천할 때, 삼족오의 후계자답게 유화의 비녀로 가죽부대를 뚫고 햇살처럼 도망치고 만다. 천신인 해모수가 유화를 버리고 떠나자, 주무 하백은 입무 유화의 입술을 석 자나 늘어뜨려 우발수에 버리는 성무의례를 행한다. 이러한 하늘 오르기와 땅, 또는 물 아래로 내려가기는 백제 무왕이나 신라의 박혁거세와 알령에게도 해당된다. 마고, 나무꾼과 선녀, 우렁각시도 입무의례를 행한다. 조선시대의 한글소설이나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과 ‘무진기행’의 주인공들도 일종의 입문의례를 행한다.


둘째, 어머니 중심 사회의 유산이겠지만 배달겨레의 서사문학은 누이나 아내 지향성을 띠고 있는 각시바치의 내용을 보여주는데 벼리를 제대로 당긴다면 서사문학의 본질이 밝혀질 것이다. 각시의 어원은 ‘가시버시’에서 찾았는데 여기에 ‘ㄱ’을 첨가한 것으로 보았다. 각시는 그대로 활용되고 있으나 벅시는 벅수로 의미가 전이되었다. 접사 ‘바치’는 그 쓰임새가 ‘갖바치’보다는 ‘귀염바치’의 경우로 보아야 한다. 각시바치라는 방어기제는 퇴행과 승화라는 기제와 겹쳐져 나타난다. 환웅·주몽·산상왕·온달, 미실의 남편 세종 등과 서사무가·입말이야기·고대소설·현대소설 등에 광범하게 등장하는 각시바치는 아내나 누이의 도움으로 입신출세하거나 자기정체성을 확보한다. 또한, 각시바치는 선녀나 우렁각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의붓아버지와 어머니가 친아버지를 죽이자 누나의 도움을 받아 그들을 죽이고 세계를 방랑하다가 또 다른 누이를 만나 자기 정체성을 되찾은 주인공인 오레스테스 콤플렉스와 유사한 일면이 있다. ‘서울, 1964년 겨울’의 월부 책장수는 죽은 아내를 따라 자살할 정도의 각시바치이며 ‘무진기행’의 윤희중은 자신의 승진문제를 아내와 장인에게 의지할 정도로 각시바치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셋째, 배달겨레의 서사문학 분석에서 최종적인 미적기준은 주체가 보여주는 행위 양식과 의식 지향성이다. 여기서 미학이란 주된 인물의 행위 양식과 의식 지향성인데 그것은 역사성ㆍ민중성ㆍ계급성ㆍ혁명성 등이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이도흥치(以道興治)·인민안태(人民安泰)·불구내(弗矩內)·사인여천(事人如天) 등의 의식지향성을 보인 단군·주몽·온조·혁거세·최제우 등은 모두 역사적 영웅이 된다. 활인과 활빈을 바탕으로 호민(豪民) 의식 지향성을 보인 홍길동이나 왕을 희롱하여 황금 들보를 팔아 삼남의 빈민을 구제한 전우치는 문학적 영웅이 된다. 또한 배달겨레의 서사문학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은 각시바치로 살아가는 벅시의 부끄러움이다. 고국천왕은, 각시바치인 산상왕과 첩실행을 하다가 죽어서도 산상왕에게 간 우씨왕후와 부끄러워서 싸우게 된다. 3대 각시바치인 주몽〮·온달·무왕의 의식과는 대조적이다. 선녀와 우렁각시의 신랑인 나무꾼과 총각이 죽어서 닭이나 뻐꾸기가 되기도 하고 참빗이 되기도 하는데 이는 부끄러움의 극단적 형상화로 볼 수 있다. ‘홍계월전’의 여보국이나 ‘이학사전’의 장연은 부터살이본 각시바치의 전형으로 부끄러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김승옥 소설의 중핵화소는 ‘부끄러움’, ‘굴욕감’, ‘불쾌감’, ‘무책임’, ‘수치심’ 등이다.


‘서사문학연구’에서는 10개의 화두를 분석 검토하고 있다. 제1장 삼위태백(三危太白) 논고, 제2장 산신으로 좌정한 웅녀, 제3장 단골로 본 주몽신화, 제4장 미륵사상과 백제 무왕, 제5장 신라 초·중기 ‘弗矩內’ 뉘, 제6장 고구려 초기 ‘형수와의 혼인’ 갈등, 제7장 각시바치로 본 ‘온달전’, 제8장 입말 이야기 뒤에 숨은 각시바치, 제9장 한글소설에 나오는 각시바치의 세 가지 모습, 제10장 각시바치로 사는 부끄러움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신경득 교수가 펼쳐 보이고 있는, 방대하다 못해 웅장하기까지 한 ‘서사문학연구’의 거침없는 발걸음은 사실, 김승옥의 소설을 제대로 분석하기 위한 수련의 과정이자 사전(事前) 교육의 일환이기도 하다.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 ‘서울, 1964년 겨울’ 등, 아니 김승옥 자체는 유종호·이어령·천이두 등 1960년대 한국문학 평단으로부터 월계관을 얻어 쓴 바 있다. 그리고 그 후 200여 명의 연구자들이 김승옥에게 한결같이 비판 없는 찬사를 보내고 있다. 신경득 교수는 “왜 그럴까” 의문을 제기하고 그 해답을 찾아나선 것이다.


신경득 교수는 자신이 ‘푸리문학이란 무엇인가’(온누리, 1991), ‘한민족문학 사상론’(살림터, 1996) 등에서 주장해 온 한민족문학 이론의 잣대로 김승옥을 분석한다. 이것은, 황석영을 분석한 ‘사람 살리고 가난 구하는 역성혁명’(살림터, 2005)이나 이효석을 분석한 ‘출생의 비밀, 그루갈이 삶을 위한 씨뿌리기’(살림터, 2006)에서 보여준 ‘한민족문학 실천 비평’의 결정판이라 할 만하다. 전체  742쪽의 평론집 중 181쪽을 김승옥에게 내주고 있는 분량만 보더라도 신경득 교수가 ‘서사문학연구’에서 본격적으로 비평하고자 한 대상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신경득 교수는 김승옥 연구를 향하여 나아가는 제1장부터 제9장까지의 징검다리들을 하나의 온전한 논문으로 완결지어가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서사문학연구’라는 본래 목적도 제대로 달성해 보이는 치밀함과 친절함을 보여준다. 따라서 ‘서사문학연구’는 옴니버스(omnibus)식 평론집이라 할 만하다.


신경득 교수는 김승옥에 대해 ▲참여할 것인가, 도피할 것인가 ▲4·19세대인가, 해외문학파세대인가 ▲감수성인가, 번역투인가 ▲벅시바치인가, 각시바치인가 ▲손을 씻을 것인가, 죄인으로 남을 것인가라는 잣대를 들이댄다.


신경득 교수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김승옥은 작가로서 현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도 않았고 발언하지도 않았다. 4·19에도 참여하지 않았고 4·19를 문학의 주제로 삼지도 않았다. ‘감수성의 혁명’이라고 떠받들어지던 김승옥의 문장은 감수성이 아니라 영어문장의 번역투일 뿐이다. 김승옥 소설의 중핵 화소로 자리잡고 있는 ‘부끄러움’ ‘굴욕감’ ‘무책임’ ‘수치심’ 등의 심리적 기제는 작가의 무의식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아버지 때문이다. 김승옥 문학의 밑바디인 엘렉트라 콤플렉스(Electra Complex), 오레스테스 콤플렉스(Orestes Complex) 등 아버지와 어머니, 누이와의 사이에 얽힌 복합심리 즉, ‘부끄러움’과 ‘죄의식’으로부터 자기 정화를 하게 되고 오랫동안 그의 심층에 무의식으로 자리잡고 있던 아버지와 누이에 대한 손 씻기가 시작된다.


신경득 교수는 문학평론집 ‘푸리문학이란 무엇인가’, ‘한민족문학 사상론’ 등에서 “한 나라 문학은 그 나라의 성정에 맞아야 하고, 그 나라 문학원리로 설명되고 비판되어야 한다. 나와 우리, 민족과 국가를 깨우치는 깨도문학, 민주·민족·인간주의로 무장한 민족 당파성을 깨우치는 푸리문학, 민족 당파성을 밑바닥으로 삼아 민족 공동체적 삶을 위해 싸우도록 부추기는 추임문학”을 강조해 왔다. ‘서사문학연구’는 신경득 교수의 깨도문학, 푸리문학, 추임문학 즉, 한민족문학 이론의 전범(典範)일 터이다.


신경득 교수는 지난 2009년 6월 정년퇴임을 앞두고 마련한 고별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서사문학연구’를 쓰는 이유, 그리고 우리나라 문학 연구자들이 ‘서사문학연구’를 읽어야 하는 이유다.


“군사대국이나 경제대국 못지않게 문화대국이 되어야만 선진국이 될 수 있다는 원칙은 자명하다. 물론 문화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인문학을 바탕으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 민주주의와 인문학을 꽃피운 그리스는 지중해의 중심국가로 성장하여 헬레니즘문화를 이룩하였다. 예링의 말대로 로마는 칼․법․종교로 세계를 세 번이나 통일하는 팍스 로마나를 완성한 것이다. 청교도정신과 민주주의는 범미주의의 바탕이 되었다. 그리하여 정부를 수립하던 어려운 시기에 백범 김구는 문화대국을 주창한 바 있다. 한글의 세계화가 문화대국으로 가는 첩경이다. 셰익스피어와 괴테는 모국어를 갈고 닦아 씀으로써 국민시인이 되었다. 단테가 자국어로 ‘신곡’을 써서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를 열었던 것처럼 이 글에서는 바르고 쉽고 아름다운 모국어를 부려 씀으로써 인문학의 새로운 세계를 열고자 하였다. 인문학의 위기와 몰락을 극복하는 데는 정책적 측면과 연구적 측면이 고려되어야 한다. 여기서는 논자가 지난 4년 동안 연구를 진행하여 완성한 ‘서사문학연구’를 중심으로 하여 인문학의 설자리를 가늠하여 보고 국문학연구의 길 찾기를 시도하고자 한다.”


    

신경득 교수는


1944. 충청북도 증평군 출생

1978. 건국대학교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1984.3.9.~2009.8.31. 경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저서

한국전후소설 연구, 일지사, 1983

푸리문학이란 무엇인가, 온누리, 1991

한민족문학 사상론, 살림터, 1996

조선 종군실화로 본 민간인 학살, 살림터, 2002

사람 살리고 가난 구하는 역성혁명, 살림터, 2005

출생의 비밀, 그루갈이 삶을 위한 씨뿌리기, 살림터, 2006

서사문학연구, 일지사, 2009


시집

소백산맥 아래서, 살림터, 1992

낮은 데를 채우고야 흐르는 물은, 살림터, 1998


수상경력

197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풍속도」 입선

1978년 월간문학 신인문학상 평론 「반항과 좌절의 미학」 당선

1979년 제1회 충북예술상 본상 수상

1997년 남명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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