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 홍길동 선생을 모신다는 도둑들이, 처음에는 좀도둑이었다가 나중에 의식화한 활빈당으로 활동한다는 내용의 김주영 작 '활빈도'(문이당, 전 5권, 1993)는 2009년 지금 읽기에 딱 좋다는 느낌이 든다. 홍명희의 '임꺽정', 황석영의 '장길산'과 맥이 잇닿아 있는 활빈도의 시대적 배경은 고종 시대다. 나라의 기운이 스러져 가는 때 ,위로는 구중궁궐에서 뇌물잔치를 벌이고 아래로는 각 고을의 탐관오리들이 온갖 악정을 서슴지 않을 때, 민중의 구휼을 위해 일어선 활빈당의 활동은 흥미진진하고 조마조마하고 때론 너털웃음을 짓게 한다.
김주영의 소설이 으레 그러하듯 곳곳에 배어 있는 우리 민중들의 애환과 해학과 삶의 지혜는 5권을 읽는 내도록 밤잠을 설치게 한다. 일일이 늘어놓을 수조차 없는 비유와 상징들은 우리 이야기문학의 아름다움과 가멸짐을 여실히 보여준다. 흰소리하지 말라고 할 것을 까치 뱃바닥 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하는 등의 해학과 상징은 임꺽정, 장길산, 활빈도 그리고 객주 등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요즘 소설에선 좀체 만나기 쉽잖다. 요즘 읽은 소설 중에서는 김별아의 ‘논개’에서 살아 꼼지락거리는 우리말을 많이 만난 적이 있다.
의리 있는 도둑들은 거창하게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다는 말을 내뱉을 만큼 용렬하지는 않지만 행동과 말 자체에서 의리의 본질을 보여준다. 여러 주인공들은, 남녀 할것없이 제 몫의 삶을 살아간다. 더 달라고도 하지 않고 덜 받은 채 가만있지도 않는다. 그래서 민중 본래의 씩씩함과 강건함, 그리고 여유로움이 자연스럽게 묻어난다.
수없이 반복되는 지명들의 나열은 지루하다. 지도가 있었으면 할 정도다. 어느 지명에서 어디까지가 몇 십 리인지는 독자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좋겠지만 계속 되풀이되는 '국토지리' 수업은 다소 맥이 빠진다. 활 한 바탕 거리, 향 한 대 태울 참과 같은 거리, 시간 개념은 참 아름답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압력밥솥에 딸랑딸랑 소리 날만한 시간, KTX 서울에서 부산 한번 왔다 갔다 할 시간, 천왕봉에서 장터목 거리만큼, 투수와 포수의 거리 뭐, 이런 정도의 표현이라고나 할까. 작품 속에 흩어져 있는 이런 표현들을 찾아보는 것도 즐거움 중 하나다.
그러나 무엇보다 어려운 나라 경제 때문에 실업자가 양산되고 대학을 나와도 일자리 구하기가 어려운 이러한 시절에, 어디 홍길동은 없나 하는 생각을 가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생각이고, 그렇다면 활빈도는 지금 읽혀도 좋을 소설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고 관아 무기고를 습격하여 화승총을 탈취한다든가, 부잣집 창고를 털어 굶주린 백성들에게 쌀을 됫박씩 나눠주는 활빈도를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겠지만, 어려운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은 없을까 싶다. 동료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리기도 하고, 처자식 먹여 살리기 위해 온갖 고초도 마다 않고, 지엄한 나라의 부름에 화답하기 위해 또한 목숨도 아끼지 않는 ‘공무원’들. 그 반대편에서 우리를 분노케 하는 가짜 민초들과 가짜 공무원들. 온갖 인간 군상들 속에서 오늘 우리가 찾아야 하는 진정한 가치와 잣대는 무엇일지 고민이 깊어진다.
김주영 소설은 늘 재미있지만, 늘 적잖은 오탈자가 또한 읽는 재미를 더해 준다. 최근 읽은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 홍어, 멸치는 좀 덜했지만 활빈도와 천둥소리 등은, 만약 다시 내게 된다면 정독 교열이 필요하리라 본다. 불과 십사오년 전의 소설인데, 그 사이 맞춤법이 죄 바뀐 것도 아닌데, 성의가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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