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전]을 읽는 재미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재미라는 것은 웃음을 안겨주는 것과는 다르다. 재미는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과정과, 잘못 알았던 것을 바로 알게 되는 깨달음과, 잊고 있었던 것을 새롭게 알게 되니 다르게 보이게 되는 것들의 모든 과정을 다 말하는 것이다.
KBS에서 오래 전부터 방영해 왔던 [한국사전]이라는 프로그램은 재미있는 것이었지만 꼬박꼬박 챙겨보기 힘들었었다. 그 방송내용이 첫번째 책으로 나왔을 때도 틀림없이 나중에 시리즈로 한꺼번에 나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과연 KBS와 한겨레출판은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제1권을 먼저 읽었다. 처음 만나는 역사속 인물은 고구려의 유민으로서 중국대륙을 제패한 이정기 장군과 '대장 부리바'로 유명한 코자크족(러시아)을 무찌른 조선 장수 신유 둘이다. 덕혜옹주의 비극적인 삶은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일본의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던 덕혜옹주를 자신의 정치적 이유 때문에 환국에 반대한 이승만이나 거꾸로 자신의 정치적 목적 때문에 급거 귀국시킨 박정희나 참, 나쁘다. 조선의 마지막 프린스 덕혜옹주의 삶과 그녀의 모습을 보면 숙연해진다. 비운의 옹주, 아니 공주에게 명복을 빌어본다. 숙주나물로 유명한 신숙주에 대한 재평가나 김옥균을 살해한 홍종우가 사실은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이라는 사실은 새삼 역사를 보는 재미를 안겨준다.
리진은 나혜석 윤심덕보다 앞선 최초의 근대여성으로 불리지만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은 소설 2편뿐이라고 할 정도로 우리는 잘 몰랐었다. 신경숙과 김탁환의 소설이었던가. 영조, 아들을 죽인 비정의 군주라는 타이틀 속에 감춰져 있는 영조의 당시 정치적 환경은 우리를 정말 쓸쓸하게 한다. 끝내 사도세자를 죽여야만 했던, 당위성은 있었던 것일까.
'이준열사'는 중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으로부터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갔다가 일본이 강제로 우리나라를 집어삼킨 것을 세계 만방에 알리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자 자신의 배를 갈라 창자를 회의장에 뿌렸다"고 듣던 인물이다. 그의 갑작스런 헤이그에서의 죽음은 정말 많은 의문을 안고 있지만 배를 갈라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은 과도한 애국심에 불타던 언론인들의 '왜곡보도'인 것 같다. 그런 점에서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치는 바람에 입이 찢겨 죽었다는 이승복도 자꾸 다시 진실이 알고 싶어진다.
역사는 과거를 덮어가는 과정이 아니라 늘 새로운 사실을 찾아내고 그것의 진실을 파헤쳐 나가는 끊임없는 작업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런 점에서 KBS [한국사전] 제작팀의 노력은 눈부시고 감동적이다. 세계 곳곳에 감춰져 있는 우리 역사의 흔적을 세밀하게 추적하여 카메라를 들이대는 제작팀의 활동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역사를 비로소 역사이게 한다는 것, 그것은 어떤 과정인지를 몸소 보여주는 것 같다.
[한국사전]은 모두 5권으로 나와 있다. 이제 2권을 읽을 차례다. 벌써 나의 눈을 기다리는 역사속 인물들이 애타게 보고싶다. 소현세자빈 강씨에 대해서는 [소설 소현세자]를 보면 더 많은 것들을 알게 될 것 같고, 내시 김처선은 얼마 전 드라마 [왕의 남자](영화가 아니라)에 나온 인물이 아니던가. 정조는 역사책에서는 빠지지 않는 왕이다. 그만큼 그의 삶이 드라마틱했다는 뜻일 것이다.
2009. 1. 14. 수
이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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