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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아들 혼내기

by 이우기, yiwoogi 2005. 11. 15.

아이 키우다 보면 혼낼 일이 한두 번이랴. 말을 잘 들으면 어른이지 아이겠나 하는 게 내 생각이지만 어제는 작정하고 한마디 해줄 마음이었다. 저녁 먹기 전부터 예고를 했다. "밥 먹고, 손발 씻고 꾸지람을 할 테니 알고 있어라"고. 그랬더니 밥 먹을 때부터 긴장이 되는지 통 밥맛이 없는 표정이었다. 안되겠다 싶어 표정을 누그려뜨려 꼬시고 달래 밥을 먹였다.

 

그러고선, "이리와 앉아"라는 말로 본격적인 훈계가 시작됐다. 잘못을 크게 한 것은 아니다. 어린이집에서 매주 금요일 '언어전달'이라는 것을 한다. 선생님이 뭐라뭐라 전달하면 그대로 외웠다가 집에 와서 엄마나 아빠한테 전달하는 것이다. 간단한 문장이므로 전혀 어려울 게 없는 것이다.

 

이를 테면, 백원짜리에는 이순신 장군이 들어있어요 라거나, 삼원색에는 빨강 노랑 파랑이 있어요 이런 식이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쉽게 외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다을이는 이런 것을 이순신 장군은 100원짜리예요라고 말하거나, 빨강 파랑 노랑을 더하면 검은색이 돼요 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 식으로 요 몇 주 사이에 계속 틀리는 게 아닌가. 어찌 생각하면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한번쯤 긴장감을 심어줄 수 있어야겠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반드시 문장 자체를 외우지 않아도 되겠지만 원칙대로 하자면 분명 틀린 게 아닌가.

 

다을이와 같이 원아 수첩을 펼쳐놓고 세어보니 7월부터 시작한 언어전달을 18번 했는데, 7번 맞고 11번을 틀렸다. 나는 아무리 양보해도 최소한 절반은 맞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욕심을 부린다면 13-15번은 맞았으면 하는 게 솔직한 생각이다. 그런데 11번을 틀렸다는 것은 좀 심하다 싶었다.

 

다을이는 금세 눈물을 흘리며 나를 바라본다. 나도 금방 미안하고 불쌍해진다. 그래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 맞혀라 하지 않겠다. 1등 해라 하지 않겠다. 하지만 절반은 맞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설득반 애원반 조로 말하기 시작했다. 결국은 내가 이기고도 졌다. 나중에 한번더 두고 보자고 하며 꾸지람을 마쳤지만, 마음이 개운한 것은 아니다.

 

어떤 때는 하도 틀리니까, 몰래 메모지에 언어전달 내용을 적어오기도 할 정도로 제딴에는 그게 꽤 스트레스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꾸지람 할 것도 아닌데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부모의 욕심인가 싶기도 하고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