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
◐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민주주의를 짓밟고 국민들을 유혈 진압했던 사람이 오늘(23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11대·12대 대통령을 지냈던 전두환 씨가 오늘 아침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전직 대통령이 생을 마감한 오늘, 우리 사회는 추모와 애도보다는 전 씨가 아무런 사죄 없이 떠난 데 대한 원망과 허탈함이 더 큰 게 사실입니다. (2021. 11. 23. 20:06)
한 사람이 죽었다. 사람이라는 말이 아깝다. 그 죽음을 세 문장으로 잘 압축했다. 냉정하고 간결한 기사 문장이 눈길을 끈다.
하지만 나는 이런 문장도 조금 더 깔끔하고 완벽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없을까 생각한다. 병이다. 병이지만, 죽을 병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국민들을 유혈 진압했던’에서 ‘국민들’은 ‘국민’이라고 하면 된다. 국민이라는 말 속에 이미 복수의 뜻이 들었다.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국민들’이라고 할 까닭이 없다.
‘진압했던’은 ‘진압한’이라고 하면 된다. 진압한 사실은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남는다.
위와 같은 까닭으로 ‘대통령을 지냈던’에서 ‘지냈던’도 ‘지낸’이라고 하는 게 맞다. 때려죽일 만큼 그가 미워도 대통령을 한 사실 자체는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 임금, 시장, 총장 등 어느 직책을 맡은 적 있는 사람에게는 ‘과거완료형’을 쓰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우리 말에는 과거완료형 시제가 없다는 게 학교 문법이다.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는 그냥 ‘숨졌습니다’라고 하면 될 것을 왜 이렇게들 쓰는지 모르겠다. 그때 누군가 집 안에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걸까. 며칠 뒤에 눈에 띈 것도 ‘숨진 채 발견됐다’고들 하니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아무튼 이렇게 고쳐 쓰는 게 더 깔끔한 문장, 좀 더 괜찮은 표현이라고 본다. 다른 분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이런 시답잖은 것에 관심을 가질 분이 얼마나 될까 싶지만….
011.
◐ 우리나라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다시 급격히 확산되자 일본 정부도 예의 주시하면서 긴장하는 모습이다. (2021. 11. 25. 15:22)
기사 첫 문장이다. ‘코로나19’라는 말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라는 말로 풀어 쓴 것은 인상적이다. 다음부터는 묶음표 안에 쓴 것처럼 ‘코로나19’로 하겠다는 것도 말했다.
이 문장에서는 ‘모습이다’가 눈에 띈다. ‘모습’은 ①사람의 생긴 모양 ②남의 집안의 대를 이음 ③다른 것을 본뜨거나 본받음이라는 뜻이다. 이 기사에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①, ②, ③이 아닌 것 같다. 억지로 갖다 붙이자면 ①에 가깝겠다.
미승우 선생은 일찍이 ≪새 맞춤법과 교정의 실제≫에서 ‘모습’을 118가지로 바꿔 써야 한다고 말한 적 있다. 위 기사에서는 “~ 긴장하고 있다”라고 하면 맞을 것 같다.
가령 ‘전두환 빈소서 모습 드러낸 박상아…딸들과 조문객 맞이’에서는 ‘얼굴’이라고 하면 되겠다. ‘윤석열 “민주당과는 다른 모습 보여주겠다”’에서는 ‘열정’, ‘각오’라고 해도 되겠다. ‘배려 소통하는 모습…건강하게 자라는 삶’에서는 ‘자세’, ‘태도’라고 해도 되겠다.
상황에 걸맞게 쓸 만한, 수많은 다른 멋진 말을 다 집어삼키는 괴물 ‘모습’을 예의 주시한다. ‘모습’ 나올 때마다 다른, 더 좋은 말로 바꿀 수 없는지, 정말 없는지 10초씩만 생각해야겠다.
012.
◐ 그러나 물밑 화해 움직임이 성과를 거둘 경우 김 전 위원장이 ‘원톱’으로 ‘윤석열 선대위’를 이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2021. 11. 29. 13:13)
어찌어찌하여, 김 아무개 전 위원장이 윤 아무개 선거대책위원회를 이끌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원톱’은 가장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 그냥 ‘선거대책위원장’이라고 하면 된다. 괜한 가지를 쳐서 원톱을 만들고 투톱을 만들 까닭이 없다. ‘위원장’은 한 명이지 그것이 두 명도 되고 세 명도 되는 법은 원래 없다. 그 아래 들러붙는 사람은 부위원장이나 그 아래 직급을 나눠주는 게 맞다. ‘김 전 위원장이 윤 아무개 선대위원장이 될 가능성을’이라고 하면 된다는 말이다.
이 문장에서 더 유심히 살펴야 할 것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라는 말이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말은 가능성이 있다는 말인가 없다는 말인가. 실낱만큼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겠지. 그러면 그 가능성은 얼마만큼일까. 그것도 ‘~ 그러한 상황’이라니. 이런 기사에서 ‘상황’이라는 말은 교묘하게 책임을 모면하려고 할 때 쓰는 수사 아닌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말에서 나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정치권의 상황과 그런 상황을 어떡하든 전달해야 하는 기자의 고뇌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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